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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룬드 May 27. 2021

강릉에 집을 짓자 1.

땅 구하기

아등바등 산다는 말과 직결되는 이미지가 있다. 도시 어디에서나 마주할 수 있는 성냥갑 아파트들의 모습. 밖에서 보면 다 똑같이 생긴 모습일 뿐인데도, 어느덧 사람들은 아파트의 위치와 평수로 본인의 유년시절 꿈을 갈음한다.


강릉에 내려오면서 가장 먼저 거부하고자 했던 것이 바로 아파트에서의 삶이었다. 가지고 있는 자본은 한 푼도 없었지만, 어떻게든 사택에 살며 버티다 돈이 모이게 되면 집을 지으리라 생각했다. 잔디가 깔린 마당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을 행복하게 바라보며 커피 한 잔(사실 맥주가 맞다. 심의 상...) 마시는 모습을 상상하곤 했다.


하지만 돈이 모이는 속도에는 한계가 있는 터라, 구체적인 계획을 짜는 것을 미루고 있었는데, 살고 있던 사택의 방음 문제가 심각하여 급하게 다른 아파트를 구해 이사를 가게 되었다. 와중에 주택이나 토지를 알아보지 않은 것도 아니나, 가족을 꾸린 지 1년 남짓된 입장에서 규격 외의 부동산을 알아보려니 어려움이 컸다. 당시 토지를 계약할 뻔도 했으나 무산되기도 하였고, 부모님이 아파트에 들어가는 조건으로 금액을 일부 부담해주시기도 했다.


현재의 아파트에 거주한 지 3년이 되어 가던 작년 초, 은행 잔고가 드디어 플러스가 되었고, 동시에 코로나 19 유행으로 서울 나들이도 가지 못하게 되어 별로 할 일이 없던 필자는 다시금 건축을 계획하기 시작했다. 일단은 건축 관련 책을 사고, 부동산 신문 웹페이지를 즐겨찾기에 띄워 매일 모니터링하며 지냈는데, 그러면서 토지가 몇 개월 안에는 금방 구해질 것이라 기대하였다.


집은 혼자만 사는 공간이 아니다. 수평적으로는 가족이, 거시적으로는 30년 뒤의 내가 사는 곳이다. 그렇기에 집 지을 부지를 선정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일이다. 필자와 아내는 어느 곳에 땅을 구할지 여러 번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기본적인 원칙을 공유한 후 조건에 맞게 물색된 토지에 대하여 다시 이야기를 나누는 식으로 진행하는 것은 어느 정도는 당연한 일이었을 터이다.

시가지 한가운데에 구할까

필자의 조건은 다음과 같았다.

1. 강릉역과 가까운 곳:

    아마 지하철 역세권을 선호하던 버릇이었던 듯하다. 동시에 시내권일 수밖에 없는 노릇이 된다.

2. 구시가지 근교:

    대도시의 구시가지와는 다른 특유의 호젓한 느낌이 있다. 역시 시내권일 수밖에 없다.

3. 300-500평방미터의 면적:

    너무 작으면 마당이 없을 터이고, 너무 넓으면 관리가 안될 거라 생각했다.

4. 비교적 높은 지대

    가끔 물난리가 나는 영동 특성상 홍수에 안전한 지역이어야 한다.


아내의 조건은 다음과 같았다.

1. 시내 도보권.

2. 도서관 도보권.

3. 초-중학교까지 걸어갈 수 있는 곳.

동해안 옆에 구할까

우리 모두 바닷가에 대한 로망이 적어 다행이었다. 사실 지역주민들의 입장 역시 비슷한데, 동해안 대부분은 이미 관광지가 들어선 터라 가격이 몹시 비싸고, 주요 편의시설이나 학교와의 거리도 있는 편이다. 습한 해풍으로 집이 끈적해진다는 이야기도 있어 주요 택지나 아파트 단지는 약간 내륙 쪽에 존재한다.


이미 지역 부동산 가격이 많이 상승한 터라 아내에게 이런 이야기를 많이 했었다.

"이주할 주 알았으면 전공의 때 빚이라도 내서 초당동 땅을 사놓았어야 했다. 아무도 쳐다보지 않던 한가한 동네였는데."

물론 강릉 주민들 대부분이 하는 이야기이다. 워낙 최근 유명해진 관광지이다 보니 이래저래 아쉬움이 많이 남는 모양이다.


여하튼 몇 개월 정도 매일매일 모니터링하다 보니 선호하는 지역이 몇 군데 생겼는데, 문제는 이들 지역에 올라오는 토지나 구옥 매물 자체가 한 달에 두세건 나올까 말까 하는 정도로 적었다. 성격이 급하다 보니 매물이 뜨면 어떻게든 위치를 특정해서 견학을 하고는 마음이 동해 아내에게 쪼르르 달려가 '이 땅이 우리 땅인 듯하다.'라고 말하면 비교적 현실적인 입장의 아내가 필자를 말리고 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호젓한 교외에 지을까

팁 1. 강릉지역 부동산 사이트

각 부동산들이 올리는 거래 사이트가 다르기 때문에 매물을 놓치고 싶지 않으면 모두 모니터링해야 한다.

강릉교차로 - http://www.gnkcr.com/ 매물이 가장 많다. 필터 적용도 URL 상에 가능.

한방 - http://www.karhanbang.com/main/ URL 필터 적용 가능

강릉부동산신문 - http://gnbdsmk.com/mobile/map 매번 가격 및 필터 슬라이드 조정 필요. 최초 업로드 날짜가 갱신되지 않아 오래된 매물에 현혹될 일은 없다.

이외 강릉 벼룩시장, 알림방도 드문드문 보았다. 이 사이트들은 사이트 구성이 노후되어 줄글이나 신문 PDF로 하나하나 다 읽어봐야 하여 매일 보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팁 2. 매물 위치 특정

이 지역만 그러는지는 모르겠지만 부동산 토지 및 주택 매물은 웬만하면 주소를 특정해서 올라오지 않고, 전화를 해도 '직접 내방해야 알려주겠다.'는 경우가 많다. 아마 경쟁 부동산 업체가 등기 조회 등을 통해 토지주에게 연락하여 가로채는 경우가 있어 그런 듯한데, 이 토지가 괜찮을지 가늠만 해보려는 입장에서는 굉장히 불편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해도 대략적인 위치와 토지 종류 및 면적(이것도 살짝 틀어놓는 경우가 많다.), 외관을 올려두긴 하기 때문에 필자는 어떻게든 위 정보만으로 위치를 특정하려고 노력했다. 처음에는 카카오맵 지적도 및 로드뷰를 보고 면적계산을 해가며 삽질을 거듭했지만, 나중에 누군가 밸류맵이라는 사이트를 알려주어 비교적 수월하게 찾아냈던 것 같다. 이 사이트는 카카오맵 API를 쓰는 듯한데, 그럴듯해 보이는 토지를 우클릭하면 바로 등기면적과 토지 종류가 팝업되어 일이 많이 간단해진다.


주택이 밀집하고 행정구역이 넓은 교동, 포남동 등에서 면적이 작은 토지(200평방미터 남짓)를 위 방식으로 특정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어차피 비슷한 조건의 주택 매물은 많이 나와 있으니 그런 집도 확인할 겸 부동산에 직접 찾아가는 방식이 여러모로 나을 것이다.


팁 3. 흥정

KTX 개통 및 평창올림픽 이후 지역 부동산 시세가 지속적으로 올라, 흥정이 불가한 경우가 많았다.

가장 흔한 경우는 '이 가격 아니면 절대 안 파니 연락하지 말라.'였고, 실제로도 그랬다. 거래가 틀어진 집들은 나중에는 10% 더 올린 가격으로 내놓았다. 접촉 중 가격을 올리거나 갑자기 거래를 거부한 경우도 있었다. 어린이집 부모들의 이야기로는 부동산 시세 확인해볼까 하여 내놓는 경우도 꽤 많다고 한다. 주인이 별로 팔 생각이 없는 땅을 중개인이 냅다 매물로 올려버린 경우도 많다. (우리는 결국 그런 땅을 매입했다.)

물론 우리가 주로 알아본 땅이 시내권이라 그러할 터이고, 각각의 케이스에 따라 다르겠지만, 수십 군데의 부동산에 문의하러 다녀본 바 필자는 결국 이 동네는 파는 사람이 갑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여하튼 땅을 구하고 계약하기까지 1년이 좀 넘는 시간이 흘렀다. 예산도 거의 150%까지 올린 후에 괜찮은 땅들이 나왔던 듯하다. 그동안 기억나는 매물들을 써보겠다.


1. 시장 근방 300 평방미터 토지 및 구옥

여름쯤에 접촉했던 곳이다. 위치가 시내권에 있고 구시가지인 데다가 바로 앞은 시장이며 작은도서관 건너편에다 길 건너에는 초중학교가 위치해 있었다. 한살림도 몹시 가까웠다.

다만 옆집 담으로 인하여 지적도 상의 면적과 실제 면적에 차이가 있었고, 이를 복구하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이었으며 부동산에 찾아가 보니 크지도 않은 집에 5세대 넘게 입주해 있다고 했다. 아마 노인분들이 입주해 있던 것으로 보인다. 부동산도 몰랐다고 했다. 애초에 그런 집을 가지고 토지 카테고리에 매물을 올린 부동산의 잘못(구옥이 낀 땅을 저렇게 올리는 경우가 많다.)인데, 토지를 매입하려는 입장에서 퇴거 확약서를 요청하자 집주인은 팔지 않겠다 하고 끝났다. 자리가 참 좋아서 이후에도 간혹 아쉬움이 들었던 곳.


2. 올림픽파크 400 평방미터 토지

알아볼 초중반에 가장 우선순위에 두었던 곳은 위 조건과는 달리 평창올림픽공원 너머의 경포대 방향 땅이었다. 원래는 농지였던 동네라, 땅 단위가 모두 크고, 그럼에도 올림픽 이후 가격이 크게 올라 조금 알아보다 나왔던 땅인데, 조건에 부합하고 양지바른 땅이 하나 나와서 설레어하며 탐방을 다녀왔던 곳이다.


두 번째 탐방을 아내를 데리고 방문했을 때 옆집에서 사람이 한 분 나오시길래, 결례를 무릅쓰고 물어봤더니 두 달 전에 팔린 땅이라고 했다. 알고 보니 부동산에서 사이트에 올려놓고 방치(그래도 자동갱신은 꼬박꼬박 해놓아 목록 최상단에 떴다.)한 땅이었던 것. 이후에는 항상 700원 내고 최근 거래가 되었는지 등기부등본 조회를 하는 습관이 생겼다.


3. 초등학교 건너편 땅과 그 옆집

약 400 평방미터 가까운 토지였다. 이 땅은 코로나 전에도 시내쪽으로 마실 나가면 보이던 빈 땅이었는데, 양지바른 데다 정면에 학교가 있고 하여 이런 곳에 집을 지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을 오다가다 나누었던 곳이다. 1번 집과 가까운 입지라 거의 비슷한 장점을 공유했다. 근방 부동산에 이 땅에 대해 한번 문의했더니, 팔지 않는다고 했다 하였다.


이후 매물 목록에 떴길래 조회 후 해당 부동산을 방문하여 연락을 하였으나 전화, 문자 등에도 토지주와 연락이 닿지 않았다. 이후 주말 간 답도 오지 않았다 한다. 부동산은 더 이상 해줄 게 없는 눈치였다. 개인적으로 번호를 구해 연락을 하니 토지주 형을 통해 연락이 왔는데, 올라온 가격에 평당 50만 원을 더 붙여 팔겠다고 하였다. 그 정도 여유자금도 없었을뿐더러 상대방의 매너에 기분이 상해 거래를 중단하였다.


그 옆집은 거의 비슷한 크기의 땅이었다. 다른 부동산에 매물이 나왔길래 연락을 넣었는데, 이사 갈 큰 평수의 아파트를 구한 후 팔겠다 했다고 한다. 위의 땅을 보여줄 겸 와이프를 데리고 갔던 때(근방에 동시에 3곳의 매물이 있었다.)에 마침 집에서 나오는 분들이 계셔 결례를 무릅쓰고 인사를 드렸다. 추후 방문을 다시 했을 때는 집 안에 들여주셨는데, 아주 옛날부터 있던 가옥으로 마당을 아주 잘 꾸며 놓은 집으로, 마당에 대한 자부심이 있으신 듯했다. 원하시면 마당을 바꾸지 않고 유지하며 내키실 때마다 놀러 오시게 하겠다고 이야기를 드린 후 명함을 드렸던 땅이다. 이후 연락은 오지 않았지만 들어가실 아파트는 잘 구하셨길 바란다.



그리하여 1년이 넘는 노력 끝에 땅을 매입하였다. 위 토지들 뿐만이 아니라 여러 일이 있었던 터라 전반적으로 지역 부동산업계에 불신이 쌓여 연락, 계약 및 등기 절차를 모두 셀프로 처리하고 마무리하였다.


다음은 설계사 선정과 설계 작업이다. 선정에 대해서는 별로 고민할 게 없었다. 작년 어린이집을 졸업한 부부 건축사께 토지 매입 단계 시부터 자문을 구했었다. 추가 대출이 완료된 지난 주말 설계 계약을 하고 계약금을 입금하였다.


지금 시작해도 내년 입주까지는 1년이 넘게 걸릴 것이라고 한다. 다음 글은 설계 진행을 하며 생기는 일들로 쓰게 될 것이다. 아무쪼록 무탈히 진행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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