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정원에서 배운 그림책의 시간

곁을 지킨다는 것

by 별서점 주인장

설렘을 안고 전시장에 들어섰다.

타샤 튜더의 삶을 담은 정원 전시였다.


거꾸로 흐르는 시간 속에서

그녀의 정원은

시간마저 천천히 걷게 하는 공간이었다.

나는 타인의 삶을 보러 갔지만,

돌아오는 길에는 자꾸만 나를 들여다보게 되었다.


타샤를 처음 알게 된 건

아이들 학교 텃밭을 돌보던 한 학부모를 통해서였다.


한여름, 흙냄새가 짙게 올라오던 날.

물을 주고 잡초를 뽑다가 더위를 먹었다.

속이 울렁이고 눈앞이 아득해졌다.


그런데 그분은 아이들이 하교한 뒤에도 남아

텃밭을 정리하고 있었다.

도서관 옆 뜰에는 셰익스피어의 작품에 등장하는 허브와 꽃을 심어 두었고,

아이들이 이름을 불러볼 수 있도록 작은 팻말을 달아두었다.


블루베리 나무 아래에서는 참새들이 재잘거렸고,

씨앗을 다 먹어버릴까 봐 모이를 따로 뿌려두었다.


“힘들지 않으세요?”


그녀는 잠시 웃으며 말했다.

힘들지만, 아이들을 생각하면 견딜 수 있다고.

그리고 덧붙였다.

타샤 튜더의 삶을 떠올리며 버틴다고.


그때 나는 처음으로

한 사람의 이름을 마음속에 심었다.


타샤 튜더(Tasha Tudor, 1915–2008)는

미국의 동화작가, 그림책 작가, 삽화가이다.


그녀는 20세기를 살았지만

19세기의 시간을 선택한 사람이었다.


직물을 짜 옷을 만들고,

전기가 닿지 않는 집에서 양초를 밝히고,

계절에 맞춰 씨를 뿌리고 수확하며

아이들과 동물들 사이에서 그림을 그렸다.


그녀는 백 권이 넘는 책에 그림을 남겼고

두 번의 칼데콧상을 받았다.

그러나 내가 오래 바라본 것은

상패도 기록도 아니었다.


흔들의자에 앉아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는 장면,

부엌에서 밀가루를 묻힌 채 웃고 있는 얼굴,

그 틈에서 조용히 완성되는 한 장의 그림.


그녀는 성공을 쌓았다기보다

하루를 지켜낸 사람이었다.


나는 그 점이 오래 남았다.


나는 바쁜 엄마 밑에서 자랐다.

엄마는 돈을 벌어 집안을 일으켰고

우리를 세상으로부터 지켜냈다.


그 사실을 모르는 아이는 아니었지만

엄마의 빈자리는 늘 그리움으로 남았다.


어린 시절 나는 다짐했었다.

나는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고.


그러나 이제는 안다.

그 또한 엄마가 할 수 있었던

가장 치열한 사랑이었음을.


코로나 시기,

남편의 사업이 기울었다.

우리는 집을 팔아 시간을 샀다.


아이들과 함께 있는 시간은 길어졌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늘 조용한 불안이 앉아 있었다.


그래도 나는

그 시간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아이들이 자라는 속도를

눈으로 보고 싶었다.


지금 나는 다시 선택 앞에 서 있다.

맞벌이와 생계,

그리고 오래 미루어 두었던 꿈.


그림책을 만들겠다는 마음은

나를 설레게도 하지만

같은 크기로 두렵게 한다.


지금 시작해도 될까.

지켜낼 수 있을까.


타샤, Tasha Tudor.

그녀의 삶은 결국 한 장의 그림이 되었다.


나는 그녀처럼 살 수는 없겠지만

그녀처럼,

아이들 곁에서 그림을 그리고 싶다.


멀리서 바라보는 엄마가 아니라

아이들 숨결이 닿는 자리에서

함께 자라는 사람으로.


아이도, 부모도

자라는 동안 끊임없이 흔들린다.

불안을 없앨 수는 없지만

곁에 머물 수는 있다.


지금 내 곁에는 웃음이 있다.

거실 테이블에 둘러앉아

아이들과 남편이 함께 웃는 저녁.


그 시간 속에서

가족이 함께 숨 고르기를 하며

부드러운 하루를 지켜낼 수 있다면.


넘어지고 부딪히며

다시 균형을 찾아가는 시간.


타샤와 나의 엄마가

하루를 지켜냈듯


나도 나의 하루를 지켜내며

그 시간을

마음의 그림으로 남기고 싶다.


화려하지 않아도 좋다.

조금 느려도 괜찮다.


아이들 곁에서

함께 숨 쉬는 사람.


나는 그런 엄마 그림책 작가를 꿈꾼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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