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악산 둘레길을 걸으니 배고파졌다. 오늘 하루만 만오천걸음을 넘게 걸었으니 배고플만하다. 제주에 오기 몇일전부터 알아본 맛집으로 향했다. 생선구이와 간장게장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예전에 제주여행을 왔을때 먹을곳을 정해놓지 않아 아무데나 들어갔는데 거기서 먹은 전복뚝배기와 성게비빔밥이 맛이 없어 실망했던 기억이 있다. 메뉴까지 기억이 나는걸 보면 그 순간이 아직도 내 머릿속에 강렬하게 남아있는 것이다. 그 이후 여행을 가면 먹을 곳은 꼭 찾아보고 검증이 된 곳으로만 가게 된다. 인터넷에 검색했을때 7시가 마지막주문 이라고 해서 혹시 문이 닫혀있지는 않을까 하는 마음에 6시쯤 전화를 걸었다. 통화중인걸보니 아직 영업을 하나보다 싶었는데 도착하니 6시반, 문은 닫혀있고 유리창으로 보이는 가게안은 깜깜했다. 분명 오늘 영업을 하는 날인데 재료가 일찍 소진되었는지 문이 닫혀있었다. 우리는 잔뜩 배고픈 상태였는데 이 근처 어느 식당을 갈지, 그 식당이 영업은 할지, 맛은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엄마, 아빠가 생선구이와 간장게장을 먹으며 그 맛에 기뻐하는 모습을 상상했는데, 문이 닫혀있으니 절망스러웠다. 역시 난 계획형 인간이 아닌가봐. 라며 스스로를 자책하며 다른 식당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제주도에 있는 맛집들을 알아보면서 괜찮다고 생각했으나 갈만한 곳은 아닐거라 생각했던 곳이 이 근처에 있었다. 가게에 전화를 걸으니 영업을 한단다. 알아보다보니 저녁 7시가 되어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제주도 식당들은 일찍 문닫는 곳이 많기 때문에 맛있길 바라며, 부모님 입맛에 잘 맞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식당에 들어섰다. 세트메뉴가 눈에 띄었다. 뭘 시켜먹을지 고민하던중 인상좋으신 사장님께서 고등어구이 2인, 제육볶음 2인이 나오는 메뉴를 주문하여 고등어구이와 제육볶음을 다 맛보라고 추천해주셨다.
알록달록한 나물이 8가지나 나왔다. 비빔밥의 맛을 완성시켜주는 계란후라이가 얹어져 있어 좋았다. 일단 비쥬얼은 합격이었다. 젓가락으로 고등어구이 한점을 집어 입에 넣었다. 고등어가 엄청나게 부드러웠다. 넣자마자 입에서 녹는 것 같았다. 제육볶음은 짜지도 달지도 않으면서 자꾸 손이 가는 맛이었다. 말그대로 건강식인데 맛있는집! 우리가 원래 가려던 식당보다 가격도 저렴했다. 밑반찬중 처음 먹어보는 음식이 있었는데 곶감무침이었다. 처음에는 이게 무슨 나물이지? 처음먹어보는 맛이었는데 사장님께 여쭤보니 곶감이라고 했다. 곶감반찬은 처음 먹어봤는데 달달하면서 짭쪼름한 중독성있는 맛이었다. 위 사진은 앉아서 찍으려는 나에게 사장님께서 "식탁 가운데에서 서서 찍으면 사진이 잘나와요." 라고 말씀해주셨다. 그렇게 찍은 사진이다. 사장님 조언대로 찍으니 사진이 내가 찍으려고 했던 구도보다 훨씬 잘나왔다. 원래 가기로한 식당은 못갔지만 엄마, 아빠는 이곳이 정말 맛있다며 다음번에 또 오고 싶다고 했다. 나도 맛있어서 말도 안하고 계속 먹기만 했다. 정말 만족스러웠다. 음식에서 정성이 느껴졌고, 제주의 인심이 느껴졌다. 식사를 다 하고 나가려는데 사장님께서 감귤초콜렛을 여러개 주셨다. 감귤칩에 초콜렛을 입힌거였는데 엄마는 정말 맛있다며 이거 서울갈때 사가고 싶다고 말할정도였다. 실제로 나는 두박스나 사와서 먹었다. 지금은 다 먹었는데 또 생각나는 맛이다.
오늘의 경험처럼 삶도 내가 계획한대로 되지 않는다. 계획도 잘 안세우는 편이긴 하지만 내가 원하는대로 되지 않았을 때가 많았다. 내 뜻대로 되지 않아도 환경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그러면 그런대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항상 만족스럽지 않은 환경에서도 좋은 것을 보려고 노력했다. 그래서인지 나와 가까운 사람들은 나를 '긍정왕'이라고 불렀다. 원래 천성이 긍정적이라기 보다는 긍정적으로 살려고 노력했다. 이제부터는 좋은면을 바라보는 것도 좋지만 더 나아가 내 자신에게 '생각한대로 되지 않아도 괜찮아. 잘 안돼도 괜찮아. 좌절해도 괜찮아.' 라고 말해주고 싶다. 때로는 더 좋은 길이 열리기도 하니까. 계획했던 대로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더 좋은길이 펼쳐졌을 때가 더 기억에 오래 남는 법이다. 마치 기대 안하고 들어갔던 식당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나왔을때 그 가게를 잊을 수 없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