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오름을 갔다가 용머리해안을 가고 싶었지만 오늘은 파도가 높아 용머리해안 입장이 통제되었다. 우리는 송악산을 가기로 했다. 전에 제주에 왔을때 송악산 둘레길에 와봤었는데 꽤 괜찮았다는 느낌이 남아있어 이곳으로 정했다. 전에 왔을때는 15분 정도 걷다가 돌아갔었지만 역시나 열정적인 엄마덕에 이번에는 제1코스, 제2코스를 지나 제3코스까지 걸어 다시 출발지점까지 송악산 둘레길 한바퀴를 돌았다. 제1코스에서 본 송악산, 제2코스에서 본 송악산, 제3코스에서 본 송악산의 느낌은 다 달랐다. 금오름 4분면을 걸었을때 다른 느낌을 받은 것처럼 송악산 둘레길도 "여긴 제1코스야.", "여긴 제2코스야.", "여긴 제3코스야." 라고 자신만이 갖고 있는 특별한 것을 내게 말해주고 싶었던 것처럼 코스마다 고유의 매력을 내뿜었다.
바다와 맞닿은 바위는 정말 멋있었다. 누가 그려서, 누가 조각해서는 절대 만들 수 없는 자연스러운 멋. 멋부리지 않아도 멋있는 그런 느낌이었다. 가장 멋있는 바위는 많은 파도를 만나고, 거친 바람을 맞는다. 파도와 바람을 이겨내며 다른 바위들이 따라올 수 없는 멋을 지니게 된다. 거친 파도와 바람을 마주하지 않았다면 이런 모습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누가 나에게 어떤 사람이냐고 물었을때 '잔잔한 바다' 같은 사람이라고 말했다. 정말 잔잔한 바다처럼 슬픔없이 감정의 기복이 없이 살아와서가 아니라 잔잔한 바다처럼 아픔없이 가늘고 길게 살고싶어서였다. 남들에게 그렇게 보여지고 싶어서였는지도 모른다. 바다와 가장 맞닿는 곳에 있는 돌처럼 살기 싫었다. 고통이 오면 피하고 싶었고, 외면하고 싶었다. 삶에는 기쁨만 있는 것이 아니라 슬픔도, 아픔도 있는 것인데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내 삶에는 기쁨과 즐거움만 있길 바랬다. 사람은 고통과 슬픔을 마주할때 더 성장하고, 삶에서 열매가 맺어진다는 것을 서른살이 되어서야 깨닫는다. 성격검사를 했을때 나는 '고통을 회피하는 사람' 이었다. 고통을 직면하는 것을 어려워하여 안좋은 기억을 좋은 기억으로 왜곡시키고 즐거움을 찾아다니는 사람. 맞는 말이었다. 그래서 '행복'이라는 것에 집착하게 되었다. '더 행복하게 살거야. 더 행복해져야지.' 내가 좋아하는 것은 열심히 하지만 좋아하지 않는 것은 쳐다보지도 않았던. 호불호가 강한 사람이었다. 이렇게 된데에는 어떤 결핍이 있었을 것이다. 어린시절 혹은 성장과정에서 알게모르게 경험한 것들이 내가 행복을 쫓아 살도록 만든 것이다. 그래서 어떤 것이든 행복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거친파도는 잔잔한 파도가 흉내낼 수 없는 웅장함이 있다. 고통과 시련을 안고가는 힘. 나는 오늘 그 파도가 되어보리라고 결심했다. 시련이 왔을때 도망치지 않고 맞서기로 했다. 때로는 삶이 요동쳐도 괜찮다고. 계속 힘들거 같지만 어느순간 괜찮아질때가 온다고. 힘차게 걸어가다보면 언제 힘들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거라고. 내게 그렇게 말해주고 싶다.
떄로는 거친 파도를 만나는 바위가 되어보자. 파도가 나를 집어삼킬것 같이 무서워도 파도에 떠내려가지 않을까 두려움이 밀려와도 네가 만난 파도만큼, 네가 이겨낸 순간들이 모여 더 단단한 너를 마주하게 될 것이다. 어느순간 아무도 따라할 수 없는 너만의 고유한 매력을 내뿜는 가장 멋진 돌이 되어있을 것이다. 남에게 보여지는 잔잔함보다 내가 스스로 느끼는 위대함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송악산 둘레길이 내게 알려주었다. 아니, 이곳에서 그런 말을 듣고싶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