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1 제주도를 한번도 못가본 나의 아버지

by 퍼플라벤더

얼마전 엄마가 내게 말했다.

아빠가 제주도를 한번도 못가봤다고. 그게 참 짠하다고.

'아빠가 제주도를 한번도 못가봐..?'

나에게 제주도는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는 곳이었다.

제주도를 처음 간 것은 고등학교때 간 수학여행이었다. 학교에서 간다니까 아무생각 없이 갔던 곳이었다. 수학여행 필수코스인 천지연폭포에 갔던 것이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폭포를 보며 '이게 멋있는건가?' 라고 생각했었는데. 자연의 멋을 이해할 수 없었던 나이였던건지.

그 이후 대학생이 되어 친구와 제주도를 갔다. 우리는 면허가 없어 뚜벅이로 다녔기 때문에 이동이 편리한 중문에서 지냈다. 중문 색달해변을 본 그때 알았다. 제주도가 멋진 곳이라는 것을. 햇살에 비친 바다는 반짝였고, 그 바다를 본 나는 알 수 없는 감동을 받았다.

'바다가 햇빛을 받으면 이렇게 아름답구나.' 바다가 처음으로 내 마음속에 들어왔다.


대학졸업 후 혼자 제주도를 가보고 싶어 3박4일간 제주도를 다시 찾았다. 혼자간 제주는 그리 재미가 없었다. 자연은 여전히 아름다웠지만 이 반짝이는 바다를 함께 나눌 사람이 없어서인지 쓸쓸한 기분이 들었다. 다음번에는 누군가와 같이 와야겠다는 마음으로 취업 후 남자친구와 제주를 다시 찾았다. 어디를 갈지 내가 계획을 세웠는데 나중에 여행을 다녀온 뒤 남자친구는 내 빡빡한 일정이 힘들었다고 말했다. 사실 나도 여백없는 여행에 피곤함을 느꼈다. 그때 알게되었다. 진짜 여행은 유명한 관광지를 많이 가보는 것이 아니라 하루 한곳을 가더라도 제대로 느끼면 된다는 것을. 그 이후 직장동료와 함께 제주도를 갔다. 하루에 한두군데를 다니며 제주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느꼈다. 오후 5시반쯤 성산일출봉을 오르는데 노을이 억새와 만나니 금빛물결이 펼쳐졌다. 대학생때 본 햇빛을 만나 반짝였던 바다만큼 붉은 억새의 향연은 내 눈가를 촉촉하게 만들었다. 기쁨도 슬픔도 아닌 자연의 경이로움에 감탄해서 나오는 눈물이었다. 감탄의 눈물. 지금도 성산일출봉을 생각하면 그 순간이 떠오른다. 누군가 내게 제주도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이 어디냐고 묻는다면 망설임 없이 '성산'이라고 답할 것이다.


비행기타고 한시간이면 갈 수 있는 제주도를 한번도 못가봤다는 아빠.

자영업을 하는 아빠는 문을 닫고 제주도를 가는것이 사치라고 여겼던 것일까.

어렸을때는 아빠가 여행을 별로 안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여행을 안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의 무게가 더 컸던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어린시절 일요일마다 아빠는 나와 동생들을 공원에 데려갔다. 어쩌면 그것으로 여행을 대신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50년이 넘는 시간동안 제주도가 어떤 곳인지 모르는 아빠가 짠하면서 슬펐다. 나는 다섯번이나 가본 제주도를 한번도 못가봤다는 것이 죄송스러웠다.

엄마에게 전화했다.

"엄마, 다음주에 아빠랑 같이 제주도가자."

급하게 항공권을 알아보고 숙소를 알아보니 가격이 비쌌다. 그치만 이번에 부모님과 제주도를 안가면 평생 후회할거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엄마, 아빠와 2박3일 여행을 시작하게 되었다. 월요일에 한번도 쉬어본적 없는 아빠에게 이번 제주여행은 엄청난 결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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