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는 수많은 관광지가 있다. 아름다운 곳이 정말 많다. 2박 3일이라는 한정된 시간동안 어느곳을 가야 엄마, 아빠가 좋아할까 고민이 되었다. 나에겐 이번이 여섯번째 제주여행이지만 오름은 한번도 가본적이 없다. 오름사진을 보다가 '이곳이다!' 느낌이 왔다. 여행가기 몇일전 엄마, 아빠는 내게 물었다.
"우리 여행 어디가?"
"먼저 금오름을 가자."
"금오름은 처음 듣는데 괜찮은 곳인가?" 엄마가 말했다.
"응! 효리네 민박에도 나왔던 곳이래. 나도 오름한번 가보고 싶었어서."
"그래, 일단 가보자."
제주의 오름은 이름이 다 멋지다. '새별오름', '용눈이오름', '다랑쉬오름' 등 이름만 들어도 기분이 좋아진다. 이 이름들은 누가 붙인 것일까 갑자기 궁금해졌다. 제주공항에 도착하여 차를타고 창밖을 내다보면서 아빠는 "아직 제주도인지 잘 모르겠는데?" 라며 서울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나는 자신만만하게 "좀 더 기다려보세요."라고 말했다. 엄마는 "뭐가 다르지 않아. 창밖에 돌부터 다르구만." 이라며 아빠의 말에 반박했다.
한 15분 정도 걸었을까. '금오름'이라는 이름만큼이나 멋진 분화구가 눈에 들어왔다. 움푹 패인 분화구 주변으로 군데군데 돌이 있고, 푸르르면서 노르스름한. 영화의 한장면 같은 풍경이 펼쳐졌다. 분화구 안에 말이 있었다면 외국영화같은 느낌이 들었을 것 같다. 가운데에는 물이 작게 고여있었다. 오름이 이렇게 멋진 곳이었구나. 나는 그동안 제주도는 '한라산과 바다' 라고만 생각했는데 금오름을 보는 순간 나에게 제주는 '한라산과 바다와 오름'으로 바뀌었다. 동화속에서나 나올법한 곳에 내가 서있는 기분이었다. 금오름은 아빠의 눈을 사로잡았다. 아빠는 신기해했다. 아빠의 눈이 말하고 있었다. '이게 제주도구나.' 라고.
사람들은 분화구 주변을 조금 걷다가 사진을 찍고 내려갔다. 하지만 우리는 분화구 주변으로 한바퀴를 돌았다. 열정적인 엄마 때문이었다. "왠지 저쪽에서 바라보면 느낌이 다를거 같아." 라고 말하며 동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동쪽에 다다르니 북쪽에서 바라보면 또 다를 것이라며 북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그렇게 분화구를 동서남북에서 바라보게 되었다. 바라보는 방향에 따라 느낌이 다를 것이라는 엄마의 말이 맞았다. 처음 분화구를 바라본 지점에서는 푸르른 오름이었는데 오른쪽으로 갈수록 노란빛을 띄었다. 걷다보니 동굴이 있었는데 이 작은 동굴을 들여다보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싶었지만 호기심 많고 열정적인 우리 엄마는 동굴을 들여다보며 "여기좀 와봐봐! 동굴이야!" 아빠가 동굴에 들어가려면 흙이 옷에 다 묻을거라며 말리지 않았다면 아마 엄마는 네발걸음으로 동굴안에 들어갔을 것이다. 그리고 나도 따라 들어가야 했겠지.
"여기 서봐. 사진 찍어줄게."
엄마, 아빠의 사진을 찍으며 눈물이 나오려는 것을 참고 또 참았다. 자식들 키우느라 두분이서 제주도 한번 같이 못아봤다는 것이 참으로 속상했다. 그런 생각을 못하고 이곳에 올때마다 제주도다! 하며 즐거워했던 내가 참 철이 없었다. 금오름의 그림같은 풍경보다 엄마,아빠와 함께 이곳에 있다는 사실이 더 가슴을 벅차게 했다. 10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나도 부모님과 함께 선 이 오름을 잊지 못할것 같다. 문득 궁금해진다. 엄마아빠는 이곳에서 무슨 생각을 했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