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rst. 시집? or 취집?
대한민국 5명 중 1명은 서울에 사는 지금. 서울 25개 자치구의 집값은 말 그대로 '미쳤다'.
태어나보니 서울, 친척들도 서울, 친구들도 단연 서울이었던 토박이인 나는 뉴스로만 접했지 체감을 못 했었지만. 슬슬 독립을 하고 결혼을 하는 주변이 되어가니 현실에 눈을 떠본다.
한 동네에서 나고 자라 엄마들끼리 단짝이었던 내 초등학교 친구.
그녀는 이사 한 번 가지 않은 채 동네를 지키고 있다. 그런 그녀도 이 동네가 지겨울 터. 사실 동네는 핑계이고 이제 퇴근하고 부모님의 잔소리를 듣는 일에 면역이 다한 탓이겠지. 그런 그녀가 집을 알아보는데 세상에 월세가 100만 원이란다. 제 아무리 대기업에 연봉 협상까지 잘 해냈다지만, 점점 오르는 세금을 고스란히 감당해야 할 월급쟁이 직장인이 현금으로만 매달 100만 원을 내기는 쉽지 않다. 우리가 지금 버는 돈은 사실 무수입으로 30년을 버티기 위한 보험 아닌가.
혼자 살아본 적 없는, 게다가 강력 범죄가 전국적으로 낮은 동네에서만 살아 본 여자가 혼자 살 집을 구하는 데에는 제약이 많다. 치안은 물론이요, 너무 외진 데는 무섭고, 직장은 가까워야 하지만, 남자친구와의 거리도 고려 안 할 수가 없다. 이런저런 조건을 따져대니 오빠가 하는 말.
"그냥 시집이나 가라 그래".
코로나라는 전무후무한 전염병이 세상을 바꿔놓기는 했다.
온라인 속 수업은 공부를 손 놓게 했고, 기업은 비싼 도심의 사무실을 각자의 집으로 옮겨버렸다. 밖으로 나가질 못하니 배달을 제외한 외식업은 줄줄이 문을 닫았고, 잘 나가던 항공사는 승무원들을 자르기 시작했으며, 여기저기 희망퇴직 또한 많아졌다. 불안한 경기 덕에 사회적 능력이 애매한 여자들은 결혼을 선택했다. 실제로 코로나 시기에 결혼 연령이 낮아졌다지? 우린 그것을 "취집"이라 부른다.
취집 간 친구를 소개해본다.
전문대를 졸업해 취직한 직장은 '밥벌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A는 주재원으로 필리핀에 가야 하는 남자와 결혼했다. 결혼과 동시에 이주했고, 물가와 인건비가 저렴한 덕에 하우스키퍼를 두고 산단다. 연고도 없고 언어도 안 돼서 그냥 휴양지에 온 듯 쉬다가 남편이랑 노는 게 전부라고. 편함이 행복이 되는 날은 오래가지 않았고, 외로움에 한국에 있는 친구들에게 연락을 돌려대지만 어디 여유롭게 전화나 받아 줄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런 그녀에게 남편은 보상으로 1년에 한 번 명품 가방을 사준다는데. 그게 과연 부러울 일인가?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대학을 겨우 마친 B.
성형도 하고 학원도 다니며 소위 남자들이 좋아하는 직업을 가졌다. 취업에 성공하자 쏟아지는 소개팅을 받으며 그녀는 남편감을 골랐다. 외모? 성격? 글쎄. 그녀에게 최우선적인 조건은 직업이었다. 집안에 돈이 많거나, 전문직이거나, 최소 대기업. 그렇게 시작하니 단연 이상한 놈들도 꼬이는 법. 결혼 전까지 매해 들었던 그녀의 연애사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그런 그녀가 부잣집 도련님을 만났다. 집안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미국에서 대학나온 그녀의 남편. 결혼 준비는 신데렐라가 따로 없었다. 시어머니는 그녀의 수수한 차림에 백화점 명품 브랜드에 지갑을 열었고, 복잡한 게 싫어 쉽고 저렴한 토탈샵을 예약했던 그녀의 손을 붙잡고 호텔로 끌고 가 결국 5성급 호텔 결혼식을 만들었다. 신혼집도 시부모님 지원, 신혼여행은 유럽이었으며, 프랑스 파리 깜봉 샤넬 본점에서 1000만 원짜리 백도 하나 사 왔다. 그런 그녀가 결혼한 지 2년. 맞벌이에도 불구하고 2주에 한 번씩 시부모님을 찾아뵙고 식사를 해야 하며, 명절에 친정은 가본 적이 없고, 시부모님 생신이라도 있는 달에는 온 가족 해외여행까지 기획해야 한다. 눈이 반짝이던 결혼 전과 달리 요즘 만난 그녀가 입에 달고 사는 말,
"이젠 더러워서 안 받고 싶어". 꽤나 지친 모양이다.
능력 있는 남자와 아름다운 여자가 짝을 이뤄 결혼하는 것. 그 밸런스의 역사는 가히 오래되었고, 비단 대한민국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오히려 서양권에서는 돈 많은 백발의 남자가 딸 뻘의 여자를 끼고 다니면 비난보다는 트로피가 될 때도 있으니까.
성인이 되고 나이가 들어도 나를 책임져 줄 남이 있다는 것? 부모여도 신기할 따름이지만 그 또한 복이고 능력일 터. 그러나 과연 한 남자의 여자로만 살아가는 것이 '괜찮은'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시집보다 취집을 원하는 친구들이 있다. 그런 친구들 또한 응원한다. 다만, '지지'보다 '응원'인 이유는, 그 삶도 결코 쉽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에.
나 자신에게도, 주체적인 삶을 꾸려갈 기회를 주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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