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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랑도리 Apr 04. 2022

정의사회와 모카빵이 있는 풍경




다섯 살은 애매했다. 한두 살 터울이라면 경우에 따라 동생은 아군도, 친구도 될 수 있다. (물론 엄청 희귀한 케이스에 해당한다.) 반대로 나이 차가 까마득하면 애당초 동생 하고는 얽힐 일 자체가 별로 없다. 유치원 꼬마가 고딩 언니한테 종이인형을 들이대며 같이 놀자고 하지는 않을 테니까.


다섯 살은 애매했다. 그때 나는 막 3학년이 되어, 이제부터는 어엿한 10대라는 부심에 쩔어 있었다. 그런 내 눈에 다섯 살 동생은 우리 집 마당을 지키는 개 방울이와, 인지발달 수준에서 별 차별성이 없어 보였다. (실제로도 방울이가 동생보다 연상이었다.) 우리 사이에는 아득한 심연이 가로놓여서 그 위로 이해와 공감의 다리를 놓는 것이 불가능했다. 하지만 동생의 생각은 달랐던 모양이다. 걔는 나를 심심풀이 땅콩 정도로 여겼음이 분명했다. 나만 보면 놀아달라고 징징거렸다.  


성가셔 죽을 지경이었다. 동생은 종일 내게 고무신의 껌처럼 들러붙었다. 떼어 놓는 것도, 같이 노는 것도 힘들었다. 말귀를 못 알아듣는 것은 아닌데 이상하게 말이 안 통했고, 과격한 놀이는 완력에서 차이가 나 함께 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일 나가는 엄마는 아침마다 내게 동생 좀 잘 보살피라고 당부했다. 내 속에서 저항의 도가니가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어째서인가? 동생은 왜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가? 보살피지 않는다고 사람이 쉽게 죽는 것도 아닌데, 왜 이 아이는 그런 상냥한 서비스의 수혜자가 되어야 하나?


입은 댓발 나왔지만, 말은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따져도 달라질 것 없기 때문이다. 실속 없는 공허한 반발은 고이 접어두고, 나는 매일 현실적인 궁리에 골몰했다. 오늘은 또 무슨 수로 저걸 따돌릴까.


동생이 있고 없고는 놀이의 품질을 심각하게 좌우했다. 오후만 되면 동네 공터로 아이들이 하나둘 몰려들었고, 우리는 거기에서 어둑해질 때까지 온갖 놀이를 하며 헤쳐모이기를 반복했다. 다방구, 치기장난, 한발뛰기, 술래잡기, 땅따먹기, 오징어가이생, 사방치기, 딱지치기, 구슬치기,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고무줄놀이... 웬만한 놀이는 어디 가서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지만, 동생이 딸려 있는 관계로 누구도 선뜻 끼워주지 않았다.  


기동성이 생명인 다방구라도 할라치면, 동생은 내가 자기만 두고 도망간다면서 꽥꽥 소리를 질러댔다. 우리 집에서 놀 사람 여기 붙어라! 엄지 손가락을 뾰족이 치켜세우며 멤버를 모집하는 친구에게 내가 일빠로 뛰어가 그 손가락을 움켜쥐어도, ‘동생은 데려오면 안 돼!’라며 친구는 야멸차게 뺀찌를 놓곤 했다. 동생이 한눈을 파는 틈을 타서 골목 안쪽으로 몰래 숨어본 적도 있었는데, 쥐똥만 한 몸뚱아리에서 믿어지지 않을 만큼 큰 소리를 내며 발악을 하는 통에, 몇 초 견디지 못하고 결국 투항하고야 말았다. 정말 한 대 쥐어박고 싶을 따름이었다.


할머니한테 일러바치기는 또 얼마나 잘하는지. 떼어놓는 것은 불가능하니 무시하는 쪽으로 작전으로 바꿨더니 갑자기 집으로 달려가 요란을 떨었다. 할머니, 언니가 나랑 안 놀아줘~~~~ 할머니는 동생의 역성을 든다기보다 이 정신없는 소요사태가 못마땅해서, 그 원흉으로 지목된 나에게 일단 호통을 치고 보는 식이었다.

- 다 큰 게 왜 얼라 하나를 건사하지 못하니!!

 아~~ 정말 동생에게 저놈의 조동아리가 없다면 이 세상이 얼마나 평화로울까.


그렇다고 어른들이 언니 대접을 해줬냐 하면 그건 또 절대 아니었다. 여기서 언니 대접이란 실속도 없이 우쭈쭈 치켜세우는 립서비스를 일컫는 것이 아니라, 물질적인 보상을 의미했다. 좀 더 정확하게는, 맛있는 것을 나눠먹어야 하는 순간에 조금이라도 내 공로를 반영해주었으면 하는 합리적 바람을 말한다. 기업의 성과급도 직원의 능력과 연공서열에 따른 차등이 있는데, 종일 일방적 희생을 강요했으면 그것과 연동된 인센티브 테이블이 준비되어야 한다는 일종의 신의성실 원칙에 입각한 균형감각이었다.      




엄마는 퇴근할 때마다 먹을 것을 사 왔다. 주로 과자나 빵 같은 주전부리였다. 저녁마다 눈이 빠지게 엄마를 기다리는 것은 그리움이 8할이었고, 내 뱃속에 상주하는 먹깨비의 갈망이 그 나머지였다. (사실은 반대일지도!) 엄마 뭐 사 왔어? 엄마가 대문에 들어오자마자 동생은 엄마의 가방부터 뒤졌다. 체면을 차리느라 한 발짝 물러서 있었지만, 내 눈동자만은 동생의 손가락 끝에 매달려 셰퍼드처럼 민첩하게 엄마의 가방을 수색했다.


엄마의 가방에는 과자든 사탕이든 초콜릿이든 항상 똑같은 거 두 개가 담겨 있었다. 엄마는 얘기했다. 뭐든 똑같이 나눠먹는 거야. 자매끼리는 사이좋게 똑같이. 대보름달이든, 돈돈 초콜릿이든, 사루비아 과자든. 똑같이.


과자든 빵이든 내 손에 도달하기만 하면, 그것은 몇 분 이내에 이 세상에서 소멸되었다. 엄마는 늘 ‘반만 먹고 뒀다가 낼 심심할 때 먹으라’고 잔소리를 했지만 그건 어림 반푼 어치도 없는 말이었다. 종일 뭐가 먹고 싶어 거진 빈사 상태에 이르렀던 내 뱃속의 사정을 엄마는 전혀 몰랐던 것이다. 동생의 처지도 비슷했겠지만 그 애는 나보다 어렸기에 그만큼 먹을 것에 대한 전투력이 떨어졌다. 내가 천장으로 목을 꺾고 과자봉지에 가라앉은 마지막 부스러기까지 입안에 털어 넣을 즈음, 동생의 손에는 방금 찰나와도 같은 만남을 끝내고 내게서 영영 떠나가 버린 그것이 한참이나 남아 있기 일쑤였다.  


바로 그 순간 내 안에서는 저항의 불꽃이 피어올랐다. 뭔가 잘못됐어. 도대체 왜, 저 어린것과 내가 똑같이 먹어야 하지? 나는 다섯 살이나 많은데, 몸집도 더 크고, 나이 훨씬 많은데, 어째서 과자만은 똑같아야 해? 이건 아니지 않아?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반감이 온 영혼을 지배하기 시작한다.


내 얼굴에서 복어처럼 조금씩 심통이 부풀어 오르면 동생은 아직 불룩한 바나나킥 봉지를 손에 꼭 움켜쥐고, 경계심 가득한 눈초리로 내 기색을 살폈다. 엄마 무릎을 독차지하고 앉아 앞니로 뻥과자를 갈아먹느라 방바닥 여기저기로 노란 가루를 흩날리면서.


- 나 하나만 줘!


마침내 출정이다. 동생은 세차게 고개를 저으며 엄마 품속으로 과자 봉지를 숨겼다.


- 하나만 줘. 넌 아직 많이 남았잖아. 난 하나도 없어. 혼자 다 먹으면 욕심쟁이야.


나는 양손을 부채처럼 벌려 보이며 내게 과자가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을 시각적으로 증명한다. 그 명징한 행동 앞에 동생은 반박할 말을 찾지 못한 채 그냥 고개만 저을 뿐이었다. 나 역시 물러서지 않았다.


- 너 혼자 그렇게 다 먹으면 못돼 처먹은 거야. 내가 아까 놀아줬잖아. 하나만 줘. 언니는 하나도 없어.


나는 비난에 이어 죄책감까지 자극한다.  


- 너 어제도 언니가 현희네 가려고 했는데, 니가 울어서 못 갔잖아. 언니는 너 때문에 현희네도 못 갔는데, 너 혼자 다 먹으면 욕심쟁이야. 하나만 줘.


파상적으로 몰아붙이는 논리 앞에 결국 굴복하고야 만 동생은 결국 남은 과자 봉지를 개봉하여 잔류분을 나와 똑같이 나누었다. 이로써 동생은 욕심쟁이에서 벗어났고, 나로서는, 낮 동안 내게 혹처럼 매달려 있던 동생이 저녁이면 하나밖에 없는 엄마의 품을 독차지 하고 있는, 이 속 뒤집히는 상황에 대한 분노를 어느 정도 다독일 수 있었다.       


밀봉된 과자류 말고, 엄마는 종종 ‘천 원 어치' 식으로 덜어 파는 뭔가를 사 왔다. 호두과자, 센베이, 붕어빵 같은 것. 엄마가 그 설레는 하얀 봉투를 내밀면 우리는 제일 먼저 바닥에 내용물을 탈탈 쏟은 후, 잽싸게 총량부터 확인했다. 그리고는 큰 소리로 숫자를 세며, 번갈아 제 앞으로 내용물을 가르는 것이다. 분배가 끝나면 우리는 만족스러운 결론에 도달한 협상가처럼 입이 귀까지 찢어져서는 제 몫을 챙겨 흩어졌다. 그래 봤자 몇 분 안 되어 또다시 ‘나 하나만 줘’가 시작될 뿐이었지만.       


그날 엄마의 가방에서 튀어나온 것은 모카빵 한 덩이였다. 엄마는 사이좋게 나눠 먹으라면서 내게 덩어리 빵을 통째로 맡겼다. 동생과 나 사이에는 목침만 한 빵 하나가 놓였다. 나는 부엌에 굴러다니는 플라스틱칼을 가져와 그것을 신중하게 자르기 시작했다. 정확하게 2등분. 똑같이, 공평하게, 사이좋게.  

그런데 갑자기 동생이 소리를 지르며 울기 시작했다. 언니는 욕심쟁이야~~~


- 야, 똑같이 나눴는데 왜 난리야!!


나도 양보하지 않았다.


- 잘 봐, 니꺼랑 내꺼랑 똑같잖아. 아니아니, 오히려 니꺼가 좀 더 크네!!.


동생은 대꾸할 말을 찾는 대신, 울음소리를 두 배로 키웠다. 결국 엄마가 달려왔다. 우리는 제 몫의 빵을 손에 들고, 제각기 억울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사태를 파악한 엄마가 결국 헛웃음을 터뜨렸다.


- 어휴, 모카빵을 이렇게 위아래로 나누는 사람이 어딨어? 소보루는 너만 먹고, 동생은 맨 빵만 주고. 세상에... 이렇게 가로로 썰기도 힘들었겠다.      


정의사회 구현은 원래 힘든 법이다.      



* 표지 - 파리바게트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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