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명랑도리 May 06. 2022

난 사랑해요, 이 세상 슬픔까지도




그가 나타나면 공터의 꼬마들은 일제히 제 집으로 내달렸다.


- 엄마 뻥튀기 왔어!


여기저기 대문이 열리고, 아이들 등쌀에 밀린 주부들이 쌀, 보리, 콩, 옥수수가 담긴 바가지를 들고 나왔다. 주인의 도움 없이도, 손님들은 알아서 척척 가져온 것을 철제 캔에 쏟고는, 먼저 온 순서대로 줄을 세웠다.

 

그날은 온통 축제였다. 지루하게 돌아가던 무쇠 화로 끄트머리에 마침내 커다란 자루가 붙으면, 서성이아이들도 얼음땡 놀이처럼 동작을 멈췄다.


- 뻥이요!!!


귀를 막은 애들이 덩달아 꺅~ 비명을 질렀다. 가공할 굉음과 함께 늘어졌던 자루는 빵빵해지고,몽환적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났다. 따분한 공터에 마법이 펼쳐진 듯, 그 순간은 언제나 신나고, 신기하고, 재미났다.  


김장비닐에 담긴 뻥튀기는 빈백 소파처럼 마루 한 켠에 자리 잡았다. 이제 한동안은 든든하다. 식구들은 입이 심심할 때마다 양푼에 뻥튀기를 담아 일없이 먹었다. 입이 심심하지 않을 때가 없는 나 때문에, 풍채 좋은 뻥튀기 자루는 빠른 속도로 야위어갔다.      


그때는 왜 종일 뭐가 먹고 싶었을까. 삼시세끼 저지방, 저단백을 실천하는 식단이었기에 고봉밥을 먹어도 금세 배가 꺼졌다. 일 나가는 엄마는 아침마다 백 원을 주었다. 그 동전은 언제나 호주머니에 찰나로 머물렀다가, 최종 종착지인 경북상회로 떠나갔다. 공터 앞 경북상회는 골목 아이들의 욕망이 수렴되는 만물상이자 푸드코트였다. 가게 안에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탕과자들이 계단논처럼 층을 이루고 진열되었다. 그것들은 계층의 사다리처럼 하층에서 상층으로 올라갈수록 몸값이 뛰었다.


꼬맹이들의 눈높이에 딱 맞춘 최하층은 작고 싼 것들의 땅이었다. 까슬까슬한 각설탕이 묻은 빨노초 네거리 캔디, 언뜻 면봉으로 착각하게 생긴 아폴로, 강낭콩을 닮은 동부과자, ‘멕시칸 치클처럼 부드럽게 말해요’ 윤형주의 징글을 동요처럼 따라 부르던 롯데껌 삼총사, 껌을 사면 만화를 굿즈로 끼워주던 만화풍선껌, m&m‘s의 시조새 격인 돈돈 쵸코렡, 비좁은 바닥을 버리고 벽을 따라 진열된 줄줄이 사탕, 비린 맛이 감도는 밀가루 어포, 제조과정에서 식용색소를 아끼지 않은 총천연색의 청량과자들.


그 위로는 아래층에 비해 비교적 버젓한 과자들이 쌓였다. 별사탕이 들어 있던 뽀빠이, 카레맛 비29, 엄마가 올백을 맞으라고 자주 사주던 박하맛 과자 올백, 벚꽃 모양의 딱따구리, 껍데기에 명작 만화 주인공이 그려있던 삼양 꿀짱구, 한 봉지면 종일 두고 먹을 수 있는 가성비 끝판왕 바니 드롭프스, 노란 비닐에 가지런히 담긴 티나 크랙카, 검정깨가 박혀 어쩐지 내 입맛에는 맞지 않았던 사루비아고소미. 


팬트하우스와도 같은 진열대의 맨 윗간에는 고급 과자들이 우아하게 각을 잡고 도열했다. 아이들 손이 닿지 않는 높이였지만 어차피 꼬맹이들의 경제력으로는 그림의 떡인지라 상관없었다. 코팅이라도 한 것처럼 표면에 자르르 광택이 흐르던 빠다코코낫 비스켓, 도대체 다보탑이나 석가탑이 과자랑 무슨 관계인지 먹을 때마다 갸우뚱하게 만들었던 초이스 비스켓, 유럽풍의 이름으로 위화감을 조성하던 사브레고프레, 과자 주제에 혁신적인 파맛을 풍겨 매너리즘에 빠진 미각에 충격을 선사한 야채 크래커, 담임선생님 책상마다 하나씩 놓여 있던 사랑방선물 캔디... 이것들은 백 원으로는 살 수 없는 것들이어서 내 관심의 사정거리 밖에 존재했다.       


그리고 가나 쵸코렡. 


고고한 품위와 압도적인 가격으로 고객의 구매 욕망을 한풀 꺾어놓는 것이 명품의 특징이라면, 가나 쵸코렡은 단연 제과계의 명품이라 할 만했다. 두세 번 베어 물면 없어질 그 작고 얇은 조각이, 값은 무려 200원이나 되었다. 더 비싼 것들도 있었지만, 이렇게 노골적으로 ‘양보다 질’의 소비철학을 표방하는 것으로는 초콜릿을 능가할 놈이 드물었다. 일당 백 원을 받는  내가  초콜릿을 맛보려면, 군것질 없는 금욕의 시간을 24시간도 넘게 감내해야 한다는 견적이 나왔다. 그 값이면 커다란 과자를 두 봉지나 살 수 있었다. 향기도, 달콤함도, 혓바닥 위에서 녹아내리는 그 충격적인 미감도 다른 곳에서 경험할 수 없는 대체 불가의 쾌락인 것은 맞지만, 본디 원하는 것을 다 갖을 수는 없는 것이 인생 아닌가. 사랑이든, 사람이든, 초콜릿이든.        


하지만 매달 25일이면, 그것이 나에게 왔다.


아빠는 월급날이면 꼭 가나 쵸코렡을 사 왔다. 한두 개도 아니고 무려 한 박스. 부엌에 소고기 한 근을 들이고는, 우리 자매를 부른 뒤 겉 주머니 속에서 갈색 상자를 꺼냈다. 아빠의 월급으로 열한 명 식구들이 한 달을 살아야 해서, 할머니는 이 난데없는 지출을 매번 못마땅하게 여겼다.


열 개도 넘는 초콜릿을 장판 위에 주르르 펼쳐놓으면, 광에 연탄을, 독에 쌀을 채운 주부처럼 가슴이 벅찼다. 맛도 맛이지만, 이렇게 고급진 사물이 고스란히 내 소유라는 사실 때문에 황송함과 황홀감이 뒤섞인 급성 우쭐이 심장을 북처럼 두들기는 것이었다.   


아빠는 왜 하필 초콜릿이었을까. 가성비라는 말은 몰랐지만, 어쩐지 분수에 맞지 않는 짓을 저지른 사람처럼 뒤통수가 따끔따끔했다. 양 많은 과자로 바꾸면 뻥튀기처럼 오래 두고 먹을 수도 있었을 텐데... 엄마도 아빠에게 비슷한 소리를 하며, 우리에게는 이빨 썪으니 조금씩 아껴 먹으라 잔소리를 했다. 하지만 그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고혹적 향기와 치명적인 달콤함을 남긴 채 초콜릿은 순식간에 입 속에서 사라지곤 했다. 아무리 초연하려 해도, 정신을 차리고 보면 어느새 찢어진 은박지만 나뒹구는 것이다.   


의지박약한 자아에 맞설 전략도 짜 보았다. 초콜릿을 쓰디쓴 약이라고 상상하는 것이다. 미리 작은 조각으로 또각또각 잘라두고는, 정해진 시간에만 알약처럼 먹기로 한다. 아침, 점심, 저녁 식후 세 번. 정량 복용 지침만 준수한다면 그 달콤한 행복을 오래도록 이어갈 수 있겠지.

하지만 소용없었다. 초콜릿을 약이라 생각하니 절로 몸이 아팠다. 머리가 아프니 한 조각, 배가 아파서 한 조각, 손가락이 까져서, 다리가 쑤셔서, 코가 막혀서 또 한 조각. 없는 병을 창조해 가며 결국 초콜릿은 비슷한 속도로 내게서 떠나갔다. 별 것 아닌 일에도 금세 눈물부터 쏟아지는 나이였는데, 한 조각을 삼키면 신통하게도 정말 기분이 좋아지는 것이었다.


정이 많고 마음이 여린 엄마는 저녁에 일터에서 돌아와서는 오래도록 동생과 나를 쓰다듬어 주었다. 낮 동안 주지 못한 사랑을 한꺼번에 쏟아내려는 듯 가끔은 동생에게 뺨을 부비며 이유 없이 눈물까지 훌쩍거렸다. 아빠는 별로 말이 없었다. 어쩌다 술 한 잔 걸치고 들어온 날 나와 동생을 번쩍 들어 올리고 비행기를 태워주는 것이 다였다. 말뚝처럼 키가 컸던 아빠가 양손으로 우리를 들고 허공에 흔들면 롤러코스트를 탄 것처럼 극강의 서스펜스를 만끽할 수 있었다. 천장이 바닥처럼 손에 닿을 때마다 다른 세상에 떨어진 듯 웃음에 버무린 비명이 저절로 터졌다.      


몇 년 전 부모교육 세미나에서 인상 깊은 말을 들었다. 어린이에게 사랑은 산소와 같다고. 산소가 부족하면 숨을 헐떡이다 결국 죽음에 도달하듯, 어른에게서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한 아이들은 진짜로 몸이 아프고, 마음이 병든다고.  


강사의 말에 어린 날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모든 말을 야멸차고 맵게 뱉어냈던 할머니의 눈치를 보느라 종일 마음을 졸였던 그때의 나.  

풀기 죽은 초목에 쏟아진 소나기처럼 나의 엄마는 저녁마다 하루치의 사랑을 몰아서 주었다. 그리고 아빠의 어떤 마음은 빈곤한 호주머니에서 꾀할 수 있는 최상의 달콤함으로 한 달에 한 번씩 나에게 왔다. 아빠가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한껏 뜸을 들이다가, 마침내 외투 속에서 짠! 하고 초콜릿 상자를 꺼내면 모아둔 서러움도 말끔하게 사라지고, 어제보다 조금은 더 행복한 것 같았다.

덕분에 우리 자매는 끝내 시들지 않고 씩씩하게 자라났다.   


화면 속 이미연의 미소가 초콜릿처럼 보드랍다.

이 세상 슬픔까지도 너끈히 사랑할 수 있다는 듯.      





이전 12화 굿바이 미스터 블랙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