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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랑도리 Apr 26. 2022

이 구역의 미친 면은 나야!





할아버지는 어찌 보면 욜로의 조상이었다. 미혼의 여식이 넷이었고, 괴팍한 노모와 물정 모르는 아내까지 딸렸건만, 가장에게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전혀 모르는 듯했다. 갓 성인이 된 아들에게 가족부양의 무게를 재빨리 상속하고는, 자신은 깃털처럼 자유로운 ‘노터치’의 삶을 살았다. 나도 너희한테 상관 안 할 테니, 너희도 내 일에 참견하지 마.


식구들과 겸상을 하지 않았고, 치약이나 비누 같은 생필품은 좋은 것을 따로 경대에 넣어두고 자기만 썼다. 희한한 결벽과 루틴이 일상 곳곳에 포진되어 있어, 누구든지 그걸 건드리면 역정을 냈다. 남편이 꼴 보기 싫을 때마다 할머니는 험한 욕을 중얼거렸지만, 그저 그뿐, 겉으로는 손 빠르고 유능한 비서처럼 종일 할아버지의 비위를 맞췄다.


집에 한 대 밖에 없는 텔레비전도 할아버지 차지였다. 그는 박치기왕 김일, 꿀밤 때리는 여건부가 나오는 프로레슬링이나 복싱선수 장정구의 WBC 방어전을 즐겨 보았다. 자기가 좋아하는 방송이 끝나면, 미니 장롱처럼 생긴 텔레비전의 문을 야무지게 닫았다. 그의 아들과 딸, 그러니까 나의 아버지와 고모들은 이기적인 아비에게 냉담했기에, 아무도 그 방 근처를 얼씬하지 않았다. 오직 나만 어린이라는 유리한 신분을 앞세워 텔레비전 주위를 알짱거렸다. 마징가 Z, 마루치 아라치, 정의의 소년 캐산, 은하철도999, 그레이트 마징가, 짱가, 이겨라 승리호, 태풍 소년 같은 만화영화가 방송될 시간이면 나는 미리부터 안방에 자리를 잡고는 완강한 본방사수의 집념을 피력했다. 그럴 때면 할아버지도 군말 없이 텔레비전 문을 열어주었다.


할아버지는 필체가 좋았다. 봄이면 이웃들이 입춘첩을 받고자 할아버지를 찾았다. 그들이 다녀가고 나면 할아버지가 먹을 갈아 쓴 ‘立春大吉 建陽多慶’이 동네 여기저기에 나붙었다. 골목에서 뒹굴던 나는 大와 多밖에 모르면서도 친구들을 몰고 다니며, 다른 집 대문에 붙은 할아버지의 글씨를 읽어 주었다.

-  저거 우리 할아버지가 쓴 거야. 웃으면 복이 온다는 뜻이지. (어쩐지 입에 착 달라붙는 말이었다.)

내가 아는 척을 하면 친구들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침마다 그는 포마드로 머리를 빗어 넘기고는 칼주름 잡힌 양복차림으로 집을 나섰다. 인근 복덕방이나 대서소에서 문서를 대필해 주고, 글씨를 판 돈으로 매일 소주와 라면을 샀다. 자신이 번 돈은 오직 자기만을 위해 썼기에, 가난이 공기처럼 자연스러운 다른 식구들 사이에서 할아버지는 홀로 섬처럼 여유로웠다.   


저녁 6시, 요비링이 울렸다. (우리 집에서는 초인종이라는 말을 쓰지 않았다.) 나는 날쌔게 달려가 문을 열었다. 저녁마다 할아버지를 목 빠지게 기다리는 것은 라면 때문이었다. 할아버지는 매일 소주 한 병과 농심라면 하나를 들고 귀가했다. 한 번 정하면 여간해서는 바꾸는 법이 없는 할아버지의 루틴에 어느 날부터 농심라면이 한 자리를 차지한 것이다. 할머니가 팔각 소반에 라면 냄비를 들이면, 나는 초조하게 안방 문 앞을 서성거렸다. 곧 그가 나를 부른다.  


- 그릇 하나 가져 오라우.


할아버지는 나에게 꼭 한 젓가락을 덜어주고 나서야 식사를 시작했다. 어쩌면 그가 처음으로 라면을 맛 본 그날 내가 그 습관의 을 심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매일 저녁 얻어먹는 한 젓가락의 라면은 어린 나에게 채워지지 않는 갈망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려주었다. 어떻게 이런 맛이 있을까. 이건 할머니가 만든 어떤 음식과도 달랐다. 아무리 아껴먹으려 해도, 면발은  매번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식탐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 날에는, 혹시 부스러기라도 남지 않았을까, 절박한 마음으로 빈 봉지를 뒤적거렸다. 봉지 위에는 볏단을 짊어진 두 사내가 마주 섰다. 보름달이 휘영청하다. 그 위에 휘갈겨진 글씨, 農心 라면.


라면은 획기적인 음식이었다. 획기적으로 짧은 시간에 한 그릇의 일품요리가 완성되었고,  들어간 것이라고는 가루 한 줌밖에 없는데 마법처럼 경이로운 맛이 탄생했다. 고기를 넣지 않았음에도 국물에는 기름기가 돌았으며, 도무지 원재료를 유추할 수 없는 감칠맛이 났다. 히피펌을 닮은 꼬불꼬불한 면발은 또 어떻고! 멸치국물에 잠긴 시무룩한 소면을 멸시하며, 이 구역의 미친 은 나라고 포효하는 듯했다. 텔레비전에서는 코미디언 구봉서와 곽규석이 라면을 앞에 두고 매번 실랑이를 했다. '형님 먼저, 아우 먼저'를 핑퐁처럼 주고받으며, 서로 먹으라고 그릇을 밀어냈다. 그럴 거면 그냥 나나 달라고, 광고를 볼 때마다 브라운관 속으로 뛰어들고 싶었다.  


우리 집에서 매일 라면을 먹는 사람은 할아버지뿐이었다. 한 젓가락이 아니라, 딴 사람에게 한 젓가락도 주지 않고 한 그릇의 라면을 독차지할 수만 있다면, 며칠 굶어도 상관없을 것 같았다.


그 간절한 갈망이 채워진 곳은 외갓집이었다.     




방학이면 나는 늘 외갓집에 보내졌다. 외갓집의 앞집은 할아버지의 형님인 큰할아버지의 집이었다. 큰집은 쇠락한 외갓집보다 열 배쯤 번듯했다. 아귀가 맞는 문이 없고 모든 공간이 관절염을 앓는 노인처럼 삐걱이던 외갓집에 비해, 집은 멀리서도 눈에 띄는 신식 집이었다. 으리번쩍한 본채 옆에는 깨끗한 슬라브식 옥상을 얹은 별채가 나란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이 극심한 형제간의 빈부격차는 어처구니없는 상속 방침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큰놈에게 몰빵하기. 논밭, 선산, 가옥 등 웬만한 재산은 몽땅 장남 차지였다. 큰할아버지의 재산은 그의 외동아들을 거쳐 별다른 이변이 없는 한 장손인 창이 오빠가 물려받을 예정이었다.  


창이 오빠, 즉 나의 6촌 오빠는 내리사랑이 세제곱으로 증식된 귀하디귀하디귀한 자손이었다. 한 시간 걸음의 읍내에 살던 오빠가 본가로 내려오면, 밥상에는 금세 고기반찬이 올랐고, 사랑방 구석에는 찹쌀떡이나 강정 같은 간식들이 구비되었다. 나는 그런 이유로 오빠가 집에 오는 날을 기다렸다. 오빠가 온 날에는 큰할머니가 만들어둔 떡에서 말 그대로 콩고물이 떨어지기도 했던 것이다.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는 시골, 오빠는 뭐좀 말썽부릴 일이 없나 죙일 그것만 연구하는 사람 같았다. 온갖 물건들이 깨지고 박살났다. 이상한 것은 어른들이었다. 오빠가 무슨 짓을 해도 야단치지 않았다. 가끔 혼내는 시늉을 할 때도 있었지만, 자세히 관찰하면 그저 볼륨만 조금 높아졌을 뿐, 내뱉는 말에 어떤 노여움도 묻어있지 않았다. 채찍처럼 날카로운 비난에 익숙했던 나는 창이 오빠가 누리는 그 면책특권이 몹시도 못마땅했다.


한 번은 쥬단학 아줌마한테 새로 할머니의 밀크로션을 우물가에서 일부러 쏟아버린 적도 있었다. 로션을 절반쯤 버리고 병에 물을 채워 흔든 다음, 오빠는 낄낄거리며 얘기했다. 어때? 감쪽같지? 할머니가 로션인 줄 알고 거꾸로 병을 흔들었다가, 갑자기 하얀 물이 쏟아지면 얼마나 놀라겠느냐며, 오빠는 상상만 해도 재밌다는 듯 연신 키득거렸다. 해맑게 웃는 오빠의 면상을 보니 엄마가 떠올랐다. 저러다 손바닥에 멍이 들면 어쩌나 싶을 정도로, 빈 로션병을 오래오래 두들겨 쓰던 나의 엄마.


나는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넌 이제 죽었다. 아무리 오빠라지만 이런 천인공노할 일을 저지르고도 설마 무사하지는 못할 테지! 하지만 내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다음날 로션병에서 물이 쏟아지자 할머니가 펄쩍 놀란 것은 오빠의 예언과 일치했지만, 나의 소망처럼 오빠가 두들겨 맞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할머니는 그저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웃고만 있었다. 어느새 커서 이런 장난도 친다면서, 오히려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지는 것이었다. 기대와 다른 사건의 전개에 나는 큰 충격을 먹었다. 여기는 우리 집과 다르구나. 오빠는 나와 다르구나.


그날도 그랬다. 마당에서 친구와 둘이 딱치를 치던 오빠가 갑자기 배가 고프다고 했다. 나는 오빠들이 노는 것을 구경하면서 옆에서 강아지와 장난을 치는 중이었다. 배 고프면 토마토 먹어. (텃밭에 토마토가 한창이었다.) 내가 친절한 누이처럼 조언을 했지만, 오빠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친구에게 우물물을 떠 오라고 시킨 다음 오빠는 마당에 걸린 아궁이에 장작을 지폈다. 그리고는 사랑방에서 커다란 상자를 들고 나타났다. 거기 라면이 있었다.


그렇게 많은 라면은 처음 보았다. 매일 한 젓가락의 관용을 기다리던 나와 달리, 그는 한 박스나 되는 라면을 누구의 허락도 구하지 않고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었다. 처음으로 오빠가 부러웠다. 이것이 바로 상속자의 포스! 어차피 결국 다 오빠 것이다. 먹을래? 비굴하게 눈치만 보는 내게 그가 물었다. 그걸 질문이라고 하시나. 폭탄처럼 면과 수프를 투하하며, 우리는 본격적으로 만찬을 시작했다.


장작이 화력을 올릴수록 흥분도 점점 고조되었다. 설설 끓는 물이 화살같이 라면을 익히면, 우리도 질세라 총알처럼 라면을 마셨다. 면이 부족하면 봉지를 뜯었고, 국물이 모자라면 물을 부었다. 장작불 연기 때문에 눈물 콧물이 섞인 국물을 들이켰지만 상관 없었다.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았다. 라면은 얼마든지 있었다. 오늘만큼은 희망고문에 절규하는 위장의 아우성을 외면할 필요가 없었다. 아직 아니야, 정신 차렷! 스멀스멀 밀려드는 포만감을 경계하며 마지막까지 나는 젓가락에 힘을 주었다.


마침내 우리가 솥에서 멀찌감치 떨어졌을 때, 마당에는 열 개의 빈 봉지가 뒹굴고 있었다.      


끼니때 맞춰 밭에서 돌아온 할머니가 황급히 부엌으로 종종걸음을 쳤다. 애들 굶길까 봐 내달려온 듯 할머니는 연신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금세 밥 차려 줄 테니 조금만 기다려라.


아아... 내 뱃속에는 멸치 한 마리도 들어갈 틈이 없었다.

구봉서와 곽규석이 라면을 밀어내던 심정을 어쩐지 알 것도 같았다.




*이미지 - 네이버 블로그, happyhappycl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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