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리와 꼬랑지는 살리고 옆머리만 과감하게 쳐낸 댄디한 헤어스타일에, 상사인 쏜튼 국장과 톰과 제리만큼이나 찰떡궁합을 과시하던 맥가이버. 보는 사람은 숨 넘어가는 긴박한 순간에도 예의와 유머를 잃지 않는 품격의 첩보원. 전형적 조각미남은 아니지만, 사람 좋아 보이는 눈웃음이 매력적인 배우 리처드 딘 앤더슨.
케이블 TV도 없던 시절이라 행여 본방을 놓치는 불상사가 발생하지 않도록, 주말이면 오전부터 시계를 흘끗거렸다. 맥가이버는 잡동사니와 쓰레기만 뒹구는 폐허에서 함정에 빠질 때가 많았는데, 거기가 바로 영화의 하이라이트였다. 빰빰빰빰 빰빰빰빰 빠 빰빠빠, 조립 본능을 자극하는 테마송이 시작되면, 그는 주머니 속에서 스위스 아미 나이프와 절연 테이프를 꺼냈다. 그것만 있으면 납땜 하나 없이도, 꼬마 폭탄에서 거대미사일까지 즉석 제작이 가능했다. 행여 나처럼 무식한 시청자가 의구심이라도 품을세라, 맥가이버는 뒤통수에 총알이 날아오는 응급상황에서도 고객의 눈높이에 맞춘 친절한 설명을 잊지 않았다.
결정적 순간마다 가위나 칼, 드라이버 같은 것이 뿅 튀어나오는 그 기특한 잭나이프에 매료되어, 그때 우리는 너도나도 가방에 made in china 맥가이버 칼을 하나씩 넣고 다녔다. 친구들과 모여 새우깡이라도 먹을라치면, 여태껏 손으로 잘만 뜯던 과자 봉지를 굳이 맥가이버 칼을 꺼내어 찢곤 했다. (손으로 뜯는 것보다 칼로 찢는 것이 더 힘들 정도로 칼날이 후졌다는 것이 함정.) 맥가이버를 보고 난 저녁에는 지금까지 무심히 대했던 설탕, 소금, 하이타이 같은 일상의 가루들이 거주민의 방심 속에 상극의 액체와 만나 집안을 통째로 날릴지도 모른다는 합리적 의심에 사로잡혔다.
몸값이 육백만 불이나 된다는 스티브, 손바닥만 귀바퀴에 모으면 천리 밖에서 개미가 킬킬거리는 소리도 들을 수 있는 소머즈, 비키니 위에 왕관을 쓰는 돌발적 패션센스의 소유자 원더우먼도 대단했지만, 그들은 태생부터 비범한 초인이었던지라 이웃집 오빠 같은 맥가이버의 소탈한 매력에는 비할 바가 못 되었다.
그 유쾌한 사내를 죽이지 못해 몸살을 앓는 자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머독이었다.
머독은 맥가이버와 맞서는 대표 악당이었다. 극악스러운 사이코패스였지만, 50분 안에 기승전결을 거쳐 해피엔딩에 도달해야 하는 빡빡한 미드의 스케줄 때문에 관객에게 공포심을 자아내기도 전에 매번 신속하게 제거되었다. 머독의 최후는 늘 처참했다. 건물에 깔리거나, 다이너마이트와 함께 터지거나, 절벽에서 추락하거나, 헬리콥터에서 폭파되거나 하는 식이었다.
하.지.만. 머독은 죽지 않았다.
얼마 후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천연덕스럽게 등장해서 맥가이버와 시청자 모두를 충격에 빠뜨렸다. 정말 찰고무신처럼 질긴 생명력이었다. 설마 이번에는 죽었겠지. 순진한 시청자들은 블럭버스터 급의 재난을 겪고도 외상후스트레스장애는 커녕, 한결 파이팅 넘치는 모습으로 부활하는 그의 강인한 정신력에 매번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래서 우리는 뭔가에 집요하게 구는 친구가 있으면 ‘너 머독이냐’라고 농담을 하기도 했다.
엄마의 돼지뼈 콩비지는 내게 머독과도 같은 요리였다. 끝인 줄 알았는데, 번번이 부활했다. 힘들어서 더는 하지 않겠노라고 철석같이 약속을 해놓고 엄마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판을 벌였다. 엄마가 내게 전화를 걸어, 조만간 콩비지를 만들어야겠다고 선언을 하면 절로 가슴이 철렁했다. 그건 곧 내 평온한 일상에 균열이 발생할 것이라는 예고였다.
돼지뼈 콩비지는 간단한 요리가 아니다. 임재범이 우리 엄마와 함께 콩비지를 만들고 나면 ‘그건 아마도 전쟁 같은 콩비지’라고 포효했을 것이다. 전쟁은 장보기 단계에서부터 시작이었다. 일흔도 넘은 노인이 질 좋은 돼지뼈를 찾겠다고, 온 동네 정육점을 전전하는 것은 상상만 해도 마음이 불편했다. 돼지뼈가 거기서 거기지, 이게 그럴 가치가 있는 일인가! 묵직한 돼지뼈를 돌돌이 장바구니에 싣고 엄마가 우리 집 현관에 들어서면 보자마자 절로 한숨이 터졌다.
엄마는 콩도 가까운 마트에서 사는 법이 없었다. 내 눈에는 비슷해 보이는데 굳이 인천 곡물시장이나, 제기동 경동시장처럼 먼 곳을 순회하며 최상품을 골라 배낭에 지고 왔다. 찌개 하나 먹자고 그 고생을 하다니, 허리에 무리가 가는 일은 하지 말라는 의사의 경고를 개똥으로 여기는 그 태도에 부아가 치밀 때도 많았다. 정 먹고 싶으면 어디 가서 한 그릇 사드시라고 해도, 내가 엄마 말을 죽어라고 안 듣듯, 엄마도 내 말은 듣지 않았다.
장보기가 끝났다고 금방 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돼지뼈는 하루 전날부터 물에 담가 핏물을 뺐다. 핏기 도는 돼지뼈는 나와 친해지기 힘든 식재료였다. 피만 보면 자지러지는 쫄보인 데다가, 돼지고기에 대해서라면... 회식자리에서 삼겹살의 비계를 잘라내다가, 동료들에게 단체로 손가락질을 받는 조잡스러운 식성의 소유자가 나였기 때문이다. 콩도 호락호락하지 않기는 매한가지다. 씻고, 돌을 거르고, 역시나 하루 이상 물에 담가 놓아야 겨우 믹서로 갈 수 있었다.
재주는 없으면서 성격만 급한 관계로, 나는 조리 시간이 한 시간을 넘어가는 음식은 가급적 만들지 않는 편이다. 난도 높은 요리는 언감생심 꿈도 꾸지 않을 만큼 주제파악이 확실했고, 다단계 조작이 필수적인 음식은 과감하게 중간단계를 생략해서, 시간과 맛을 맞바꾸는 실속을 챙겼다. 원인을 알 수 없는 허탈한 끝맛은 MSG를 한번 꼬집어 넣으면 감쪽같이 충만해지기에 전혀 문제 될 것이 없었다.
엄마는 콩비지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면 제일 먼저 나의 일정부터 확인했다. 언제가 괜찮냐고, 내 시간에 모든 것을 맞추겠다고. 좋은 소리를 듣지도 못하면서 시집 간 딸자식을 굳이 호출하는 이유는 믹서기 때문이었다.
내 역할은 콩을 가는 것이었다. 콩비지 전용 믹서기는 몇 달에 한 번씩 쓰는 탓에 엄마는 매번 작동법을 잊어버렸다. 홍길동처럼 동서를 넘나들며 장을 보던 기개와 달리, 엄마는 기계에 대해서만은 다소 주눅이 드는 경향이 있었다. 성가셔 죽겠다는 표정을 굳이 감추지 않은 채 내가 한쪽에서 뚱하게 콩을 갈면, 엄마는 그런 내 표정은 본 척도 하지 않고 신나게 돼지뼈를 건져 씻었다.
위기는 곳곳에 숨어 있었다. 커다란 곰솥이 불 위에 올라가는 순간 또 다른 환란의 막이 올랐다. 돼지뼈와 갈아놓은 콩을 섞고 한없이 끓이기만 하면 되는데, 그게 생각만큼 쉽지 않다는 것이 문제였다. 비지가 끓고 있는 모든 시간 동안, 사람이 곁에 붙어 쉬지 않고 저어 주어야 했던 것이다. 조금만 방심해도 솥바닥에서 콩이 타버리고, 바닥이 심하게 타면 멀쩡한 위쪽에까지 탄내가 번져 자칫하다가는 죽 쒀서 쓰레기통만 배 불리는 황망한 일을 겪을 수도 있었다.
복잡한 요철이 손깍지처럼 얽힌 돼지뼈들을 밀어내며, 1미터도 넘는 나무주걱으로 솥바닥을 긁는 일은 고강도의 완력과 근력을 요구했다. 시골 마당이면 아궁이를 내려보며 조금 편하게 주걱을 휘저을 수 있으련만, 싱크대에 올라앉은 대형 솥은 단신인 엄마가 속을 살피기도 힘들 만큼 키가 커서, 주걱을 들고 두 팔을 하늘로 뻗은 엄마는 벌을 서는 학생처럼 매번 아슬아슬했다.
콩 갈기를 끝내고 내 임무는 완수했다며 내빼려다가도, 짧은 팔다리로 솥과 씨름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는 순간 어쩔 수 없이 되돌아가 주걱을 빼앗기 일쑤였다. 겨우 들어갔던 입이 도로 나왔다. 아, 진짜. 누가 먹는다고 이 고생을! 너무 싸가지 없는 말이라, 작은 소리로 구시렁거리는데, 귀 어두운 엄마가 단호한 목소리로 대꾸한다.
- 여기에 좋은 건 다 들었다. 식물성 단백질, 동물성 단백질. 거기에 콜라겐과 칼슘까지. 잔말 말고 작은 애 부지런히 먹여라.
며칠 전 둘째가 무릎 통증으로 진료를 받았다. 진단은 성장통. 그 소리를 들은 날부터 엄마는 돼지뼈를 물색하고, 콩 쇼핑을 나선 것이었다. 생각해보니, 엄마의 콩비지를 부르는 것은 언제나 우리들이었다. 야근이 몰아치던 시즌, 퇴근 후 씻지도 않고 소파에 널브러져 있던 나,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 감기로 며칠 내내 콜록거리던 큰 아들, 주말에 야구장 다녀온 것도 모르고 어쩐지 얼굴이 시커먼 게 까칠하다며 엄마의 동정심을 유발했던 남편. 그리고 이제 엄마의 가장 큰 보물, 성장통에 밤잠을 설치는 막내까지.
자식들의 세상살이가 퍽퍽하다고 느껴질 때마다, 엄마가 떠올리는 가장 좋은 음식은 돼지뼈를 푹 고은 콩비지였다. 영양제 몇 알로도, 고기반찬 한 그릇으로도 해소될 것 같지 않은 안쓰러움. 콩비지는 엄마의 정성과 염원을 한 데 넣고 우려낸 탕약 같은 음식이었다.
엄마에게는 아무리 말려도 듣지 않는 장르가 있는데, 요리에 대한 고집이 그런 것이었다. 익숙했던 모든 일들이 조금씩 버거워지는 노년의 엄마. 이제 손 많이 가는 음식은 그만 만들자고 해도 소용없다. 심지어 맛없다고, 안 먹을 거라고 어깃장을 놓아도 흥칫뿡 귓등으로 듣는다. 음식을 맛으로만 먹니?
충전과 방전이 시계추처럼 반복되는 것이 인생이지만, 정각마다 창문 밖으로 튀어나오던 뻐꾸기가 불현듯 침묵하는 그런 날이 있다. 몸과 마음이 동시에 번아웃 되어 버린 순간.
말도 안 했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그때마다 엄마는 돼지뼈와 노란 콩을 싸들고, 우리 집 현관을 들어서곤 한다. 왁자지껄한 다툼이 지나가고, 어느새 부엌에서는 한동안 잊었던 그것이 커다란 솥을 차지하고 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