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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랑도리 Sep 02. 2022

연필을 깎는 밤





미니멀리즘을 표방하지 않아도, 이미 삶은 더할 나위 없이 단출했다. 뒤숭숭했던 1979년이 저물고, 이제 막 새로운 10년이 시작되려던 참이었다. 그때 우리는 공평하게 가난했다. 동네를 관통하는 흙길 양쪽으로 좁은 골목이 생선가시처럼 뻗었고, 그 후미진 골목마다 친구들의 집이 개미굴마냥 웅크리고 있었다. 어느 집에 놀러 가도 풍경은 비슷했다. 견물생심이라는 말은 얼마나 쓰라린가. 본 것이 없으니 탐나는 것도 없었다.    

  

나는 그다지 까탈스럽지 않은 아이였다. 다섯 살 어린 동생은 아침마다 치마를 입혀달라며 엄마를 볶았다. 뒷머리는 양갈래로 묶어라, 앞머리에는 꽃핀을 꽂으라, 쥐방울만 한 것이 요구사항도 많았다. 나는 아무거나 입고 다녔다. 작거나 헐어서 착용이 불가능하지만 않다면 뭘 입든 상관없었다.


2학년 때였나. 아홉 살의 나는 학교에 가려고 대문 밖에 나서다가, 불현듯 충격적 깨달음에 도달한다.


- 아! 옷이 너무 더럽구나.


내 옷을 그렇게 자세히 관찰한 것은 그날이 처음이었다. 허리 단추가 날아간 바지는 지퍼의 저항력으로 흘러내리는 것을 막는 중이었고, 겨자색 티셔츠에는 땀과 흙과 때가 뒤섞여 가슴과 배를 가로지르는 세계지도가 장대했다. (직장 동료 중에 지도가 그려진 가방을 좋아했던 이가 있었다. 황토색 바탕에 고지도(古地圖) 문양이 시그니처인 고급 가방이었다. 그녀의 어깨에서 달랑거리는 그 가방을 볼 때마다 나는 종종 겨자색 티셔츠의 때 국물이 떠오르곤 했다. 지도 가방을 사랑했던 그녀에게는 비밀.)


그 아침에 느꼈던 갈등이 아직 선명하다. 이걸 입고 학교에 가도 되나? 내 대뇌변연계에서 슬슬 수치심이라는 고급 감정이 발아하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어차피 여벌 옷은 없었다. 늦은 밤 파김치가 되어 돌아오는 엄마에게 가장 힘겨운 노동은 빨래였다. 세탁 바구니에 쌓인 옷들을 엄마가 언제 해결할지도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그날 난 심란했던 그 옷을 입고 학교에 갔다.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옷 사달라는 말은 꺼내본 적도 없었다. 잠깐 주춤했지만 부끄러움 따위는 태생적 무던함으로 극복이 가능했다. 그 정도였다. 법정 스님도 울고 갈 나의 무소유 내공이.


그랬던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가공할 물욕에 사로잡히는 사건이 벌어진다. 고요하다 못해 지루하기까지 했던 호수에 바위돌 하나가 떨어진 것이다. 갖고 싶다. 너란 녀석! 내 안에 잠자던 욕망의 화신이 손가락을 꺾으며 둠칫 둠칫 몸을 풀었다. 탐욕의 마귀가 지목한 것은 바로 연필깎이였다.


내 연필은 늘 할아버지가 깎아 주었다. 학교에서 돌아와 뭉뚝해진 연필을 내놓으면, 할아버지는 까만 플라스틱 속에 칼날이 들어가는 접이식 문방칼로 연필 깎았다. 신문지 위로 돌돌 말린 나무 조각이 떨어지고, 사각사각 흑연이 갈리는 모습을 보면 알 수 없는 긴장감이 맴돌았다. 날을 가진 모든 사물은 금기의 대상이었기에, 고작 연필을 깎고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매번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2학년 가을, 뒷자리 민석이 주변 애들을 불러 모았다. 부모님이 닭집을 해서 자기는 매일 닭고기를 먹을 수 있다고, 점심시간마다 자랑을 하던 녀석이었다. 전생에 덕을 얼마나 쌓아야 닭집 아이로 태어날 수 있을까! 부러워서 얄밉던 놈이었다. 평소에도 뻐기는 것을 즐기던 고 녀석이, 그날은 도시락 뚜껑을 열 때보다 더 흥분한 표정으로 자석 필통을 개봉했다. 거기 동그랗고 매끄러운 연필이 가지런히 담겨 있었다.


- 우와~~ 이게 뭐야?


모였던 아이들 입에서 일제히 탄성이 터졌다. 샤파! 그 놀라운 마술을 부린 것은 샤파였다. 이름도 쌈빡했다. 샤파가 다녀간 연필에는 칼날이 남긴 굴곡이 없었고, 그 심은 바늘처럼 뾰족했다. 눈 어두운 할아버지의 솜씨는 비할 바가 못 되었다.


나는 그 경이로운 신문물에 홀딱 반해버렸다. 도대체 저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기에 손잡이만 몇 번 돌렸을 뿐인데 둔탁했던 막대기가 이토록 아름다운 원뿔로 변신하는 것인가. 호기심은 호감이 되고, 마침내 욕망으로 부풀어 올랐다. 샤파에 영혼을 빼앗긴 자는 나뿐이 아니어서,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들은 너도나도 샤파의 은혜를 받은 연필을 가지고 다녔다. 그때의 샤파는 아이폰 저리가라 할 정도로 희대의 발명품이었다.  


나는 조바심이 나서 미칠 것 같았다. 샤파를 갖고 싶어 몸살이 났다. 엄마와의 길고도 지루한 싸움이 시작되었다. 난데없는 지출결의서에 군말 없이 사인을 하기에는 송곳 하나 꽂을 여유도 없는 살림살이였다. 하지만 알 게 뭐람. 떼쓰기는 어린이의 천부인권인 것을.


나는 소심하게 운을 띄웠다.

- 엄마, 연필깎이 알아?


뜬금없는 질문에 방심한 엄마가 천진하게 미끼를 문다.

- 그게 뭔데?


설명이 끝나면 엄마도 나처럼 샤파의 필요성에 공감하기를 기도하며, 나는 베테랑 쇼호스트처럼 간교한 말투로 속삭였다. 공부 잘하려면 꼭 필요한 학용품이야. 그리고 전쟁의 서막을 알리는 마지막 한 마디. 

- 그러니까 나도 연필깎이 사줘.


엄마의 반응이 시원치 않다.

- 얼만데?

- 7천 원이래.

갑자기 엄마가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척을 한다.


나는 조금 더 공손한 목소리로 앞선 문장의 종결어미를 의문형으로 바꾼다.

- 사주면 안 돼?


역시 별 말이 없다. 이번에는 협상에 돌입한다.

- 내가 어떻게 하면 사줄 거야?


마침내 엄마가 대꾸한다.

- 니 에미를 팔아서 사렴.


이렇게 말이 안 통하는 사람을 대체 어디에 판단 말인가. 내가 연필깎이를 소유할 가능성은 없다는 원천봉쇄성 발언이었다. 나는 최후의 수단에 돌입한다. 찝찝하긴 하지만 부모의 죄책감을 자극하는 것이다.

- 다른 애들은 다 있는데, 나만 없단 말이야.

상처받은 표정은 필수.      


이런 식의 도발은 시큰둥하던 엄마의 관심을 내게로 가져오는 데는 효과적이었지만, 그만큼 리스크도 컸다. 운 나쁘면 엄마의 발작 버튼이 제대로 눌렸기 때문이다. 젊고 가난했던 엄마는 과로와 수면부족으로 만성 피로에 시달리고 있었는데, 거기에 더하여 절망과 비관의 도화선까지 자극되면, 그야말로 휘발유 통 위에서 불꽃놀이를 하는 격이었다.


연필은 할아버지가 얼마든지 깎아주는데 쓸데없이 그렇게 큰돈을 뭐하러 쓰냐고, 엄마는 펄쩍 뛰었다. 연필깎이 없다고 공부를 못하는 것도 아니고, 죽는 것도 아닌데 누가 그렇게 쓸모없는 데 돈을 쓰느냐며 상냥했던 엄마가 호통까지 쳤다. 샤파에 대한 나의 열망은 이미 사물의 실용적 가치를 저만치 초월한 곳에 있었지만, 엄마에게 그 실존적 갈망을 피력하기에는 아직 표현력이 딸렸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기민하게 엄마의 안색을 살피다가 오늘따가 기분이 괜찮아 보이는 날을 골라 비슷한 실랑이를 도돌이표처럼 반복하는 것 뿐이었다. 하지만 달라질 것은 없었다. 엄마의 기분이 좋다고 해서, 엄마의 주머니 사정도 흔쾌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었다. 남은 것은 한 가지 진실. 세상의 모든 어린이를, 연필깎이를 갖은 자와 갖고 싶어 사망 직전인 자로 양분했을 때 나는 명백한 후자에 속한다는 사실이었다. 


인간의 삶은 소유할 수 없는 것들을 욕망하다가 가슴에 사막을 만드는 것. 태양을 향해 도약하다가 날개가 녹아버린 이카루스의 절망을 아홉 살의 내게 처음으로 안겨준 것은 바로 샤파였다.   

 

러나 마음의 평화를 회복하고 싶어도, 주변 환경이 나를 가만히 두지 않았다. 잔잔한 마음의 해변먹구름을 몰고 오는 것은 역시 상대적 박탈감. 하필 제일 친한 친구가 손유정이었다.


손유정은 내 뒷자리 친구였다. 유정은 저택들이 즐비한 윗동네에 살았다. 손유정의 엄마는 1주일에 한 번씩 장미가 빽빽이 꽂힌 바구니를 담임에게 보냈다. 꽃바구니가 도착할 때마다 담임의 입이 귀까지 찢어졌다. 선생님은 꽃을 유달리 좋아하는구나. 바구니 속에 꽃만 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아직 모를 나이였다.


담임은 다음 주에 예정된 유정의 생일파티를 준비하느라 분주했다. 초정장도 담임이 직접 만들어서 몇 명 아이들에게만 주었다. 다른 애들도 생일이 있을 텐데 왜 유정의 생일에만 호들갑인지 궁금했지만, 차별적 정황에 의문을 제기할 만큼 영리하고 냉소적인 어린이가 아니었기에, 유정의 생일이 가까워질수록 내 마음도 담임처럼 두근거렸다.


유정은 전갈처럼 촘촘한 디스코 머리를 하고, 매일 공주 드레스를 입고 학교에 왔다. 웃을 때마다 눈이 반달처럼 변해서 강아지처럼 귀여웠다. 레이스 치마를 팔랑거리며, 유정은 세계지도 티셔츠를 입은 나와 손을 잡고 다녔다. 우리는 쉬는 시간마다 머리를 박고 지우개 따먹기를 했고, 화장실에 갈 때는 안 마려운 사람도 같이 가주는 의리를 지켰다. 파티 전 날 유정이 내게 물었다. 내일 올 거지? 초청장을 받지는 않았지만, 나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당일. 유정의 집에 도착하니 담임을 포함한 학교 선생님들 무리가 이미 긴 테이블을 차지하고 왁자지껄했다. 어쩐지 애들보다 어른이 더 신나 보였다. 유정의 집은 거대한 저택이었다. 우리 같은 코흘리개들은 ‘빈부의 격차’ 따위의 어려운 말은 몰랐다. 신나게 먹고, 해맑게 놀았다. 굳이 골목까지 나가지 않아도 잔디밭에서 얼마든지 뛸 수 있으니 좋았고, 여의도 광장에 가야나 구경할 수 있는 롤러스케이트를 대리석 회랑에서 타는 맛도 짜릿했다.


내가 꽂힌 것은 따로 있었다. 유정의 책상에 놓인 핑크빛 샤파. 눈이 번쩍했다. 유정과 비슷한 옷을 입고 다니던 여자애 몇 명이 망사 커튼이 드리워진 침대에 누워 공주 놀이를 하는 동안, 나는 가방에서 필통을 꺼내어 연필을 깎았다. 아아... 이런 느낌이구나.  손잡이를 돌리자, 들쭉날쭉했던 연필들이 순식간에 가지런해졌다. 더 큰 충격은 다른 곳에서 왔다. 술래를 피해 옆방 문을 열었다가, 나는 거기서 또 다른 샤파와 마주쳤다. 하늘색. 거기는 오빠 방이었다. 어째서 한 지붕 아래 샤파가 두 개나 있나. 연필 깎으러 몇 발자국 걷는 것이 그렇게 힘든 일인가!! 아무리 졸라도 도저히 닿을 수 없었던 그것이 여기서는 밥그릇이나 화분처럼 무심하게 존재했다. 선물 하나 없이 파티에 와놓고도 전혀 기죽지 않았던 나의 무대뽀 멘털에 슬며시 우울이 깃들었다.      


집요하고 처절한 분투는 그해 겨울에 끝이 났다. 엄마가 하지 못한 그 일을 마침내 산타클로스가 해낸 것이다. 크리스마스 아침, 잠에서 깨니 머리맡에 그것이 있었다. 세모난 샤파가 나에게 왔다. 아톰을 닮은 우주 에이스가 주먹을 쥐고 하늘을 날았다. 내 기분도 하늘을 뚫고 우주까지 솟았다. 마침내 해피 엔딩. 아홉 살 인생 가장 완벽한 날이었다.  


그 연필깎이는 나의 초중고 학창 시절을 거치고 석사논문을 마무리할 때까지 조금도 성능이 떨어지지 않았다. 껍데기는 낡아도 칼날만은 여전해서, 나이를 먹을수록 심지가 굳건해지는 지사의 풍모마저 느껴졌다. 초심을 잃어버린 사람이 있다면 정말이지 샤파처럼 살라고 조언을 해도 될 지경이었다.


연필보다 샤프를, 샤프보다 펜을 더 많이 쓰는 시기에도, 나는 간간히 연필을 깎았다.  마음이 복잡할 때나, 주체할 수 없는 증오가 혼돈의 카오스로 휘몰아치는 날에는, 노란 줄무늬 연습장을 앞에 펴고 연필깎이를 꺼냈다. 글 쓰는 삶을 살고 싶다고, 열리지 않는 문밖을 서성이던 수많은 밤, 나는 부드러운 더존 연필 한 다스를 사서 천천히 샤파의 손잡이를 돌렸다.

노트 위에서 연필심 사각대는 소리만 선명한 밤, 끄적였던 잡념들이 지우개와 몸을 섞어 사라지면, 더한 어리석음의 자취들이 종이 위로 쏟아졌다.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며 서서히 스며드는 나타와 안정. 뭉뚝해진 상념들.

그리고, 마침내 다시 모든 것이 처음처럼 날렵해지는 그 황홀한 순간.


서른이 넘은 어느 날 엄마는 나한테 묻지도 않고 내 샤파를 형편이 어려운 다른 집 꼬마에게 줘 버렸다.  


- 너는 이제 다 커서 필요 없지 않아? 안 쓰고 굴러다니는 거 필요한 사람한테 주면 좋지 뭘 그러니.


황당해서 말문이 막혔다. 가난한 엄마의 가슴에 대못을 박으며 전 존재를 걸고 항거했던 그 격렬한 실랑이가 엄마는 전혀 기억나지 않는 모양이었다. 왜 묻지도 않고 남의 물건에 손을 댔냐며 아무리 지랄발광을 해도 소용없다. 떠나간 샤파는 돌아오지 않았다.      


아직도 나는 연필깎이를 사랑한다. 돌잡이로 연필을 잡았다던데. 이산가족을 그리워하는 마음과 비슷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충동구매도 선수다. 가끔 좋아하는 사람에게 이유 없이 연필깎이를 선물한다. 세상 사람들은 누구나 연필깎이를 갖고 싶어 한다고 믿고 있다. 역시나 받은 이는 잠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다가, 금세 얼굴이 환해진다. 와~~ 연필깎이네! 뒤끝도 길다. 지금 우리 집에는 방마다 연필깎이가 있다. 연필깎이 보유량으로 따지면 나는 이미 손유정을 능가했다. 그날의 박탈감도 이젠 안녕~


"함께 했다면 이미 불혹을 넘겼을 나의 샤파.

그와 새로운 인연을 맺은 어느 집 꼬마도 (어쩌면 그 꼬마의 아이들까지)

어린 날 나의 가장 큰 보물을 부디 귀하게 여겨 주길.

그리고,

연필을 좋아하고, 글과 친한 사람으로 내내 행복하기를."


오랜만에 노트를 펴고 한 줄 끄적거려 보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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