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발대가 덤불숲을 가리켰다. 거기에는 잡초만 무성했다. 한 선배가 성큼성큼 풀을 밟고 전진했다. 운동화에 길이 뚫리자 조가비처럼 납작하게 웅크린 초가집이 나타났다. 앞으로 열흘 동안 우리 농활대가 머물 곳이었다.
그곳은 오래된 폐가였다. 집은 발만 크게 굴러도 무너질 것처럼 위태로웠고, 어른 키만 한 잡초가 점령군처럼 방안까지 장악했다. 우리가 움직일 때마다 풀 속에서 왕모기가 솟구쳤다. 귀신보다 벌레를 더 무서워하던 처지라, 대범하게 얼굴로 돌진하는 나방에는 절로 비명이 터져나왔다. 나는 곧 의욕을 상실했다. 지리멸렬한 체력에, 엄살로는 어디 내놔도 남부럽지 않았던 나로서는 아무리 짱구를 굴려 보아도 버텨낼 자신이 없었다.
선배들이 잡초를 베는 동안 정숙과 나는 바닥을 닦았다. 정숙은 농활대의 유일한 여자 동기. 흘끗 보니 그 애도 이미 절반쯤 얼이 빠져 있었다.
- 아무리 생각해도, 나 자신이 없어.
내가 넋두리처럼 중얼거리자, 정숙의 눈이 반짝거렸다. 그녀는 갑자기 목소리를 깔고 속삭였다.
- 야, 내일 새벽에 남들 자는 동안 튀자. 설마 쫓아오기야 하겠어?
Out of box thinking!! 어떻게 버텨야 하나 고뇌하고 있던 나에게 그녀는 아예 기본 전제를 갈아엎는 창의적 대안을 제시한 것이다. 땅굴을 파고 내려가던 기분이 순식간에 유턴을 했다. 이 좁은 집에서 서른 명 넘게 칼잠을 자야 할 형편인데, 우리가 빠져주면 오히려 좋은 것 아니냐며 정숙과 나는 어느새 얍삽한 명분까지 만들어냈다. 까짓것! 하룻밤만 버티면 된다.
- 이제 그만 일어나자.
선배 언니가 잠을 깨웠다. 젠장. 아침이었다. 모두 일 나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이불속을 헤매고 있는 사람은 단 두 명. 정숙과 나였다. 5초 정도 눈을 감았다 뜬 것 같은데, 이미 날이 훤했다.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채 눈만 껌뻑이는 정숙을 보니 절망이 밀려왔다. 오늘은 텄다. 나는 재빨리 태세를 전환했다. 그래, 여기까지 왔는데, 하루 정도는 해보는 거야.
첫날의 미션은 김매기. 작업에 앞서 부녀회장님이 간단한 요령을 일러주었다. 듣고 보니 별것도 아니었다. 해야 할 일은 고작 풀 쪼가리를 뽑는 것이다. 나무를 뽑는 게 아니라 겨우 풀. 심는 것도 아니고 뽑는 것. 어릴 적 벽돌을 빻아 잡초에 버무리며 김치 담그는 척 소꿉놀이를 했던 것이 생각났다. 아련한 향수가 떠오르자 금세 마음이 말랑말랑해졌다.
하지만 현실의 가혹함과 마주하기까지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내 촐싹맞은 안도감을 비웃듯, 들판의 풀들이 단체로 작당을 한 것이다. 질긴 생명력의 전속모델답게 그들의 뿌리는 깊고도 단단했다. 자기들끼리 스크럼을 낀 채 요지부동이거나, 줄기만 내주고 뿌리는 숨어버리기 일쑤였다. 조금씩 고통이 몰려왔다. 잡초와 싸우는 것은 손가락인데, 이상하게도 허리가 끊어질 것 같았다. 정수리에는 자외선 토핑 가득한 7월의 땡볕이 쏟아져내렸고, 목에서 꼬리를 향해 뻗어나간 등뼈 관절은 마디에서 마디로 점층적 고통을 실어 나르고 있었다. 나는 옆 고랑에 늘어져 있는 정숙에게 다가가 어금니를 꽉 물고 속삭였다. 내일도 못 도망가면, 그냥 여기서 같이 죽자.
밤에는 닥지닥지 모여 앉아 독서토론을 했다. 땀냄새 발냄새가 뒤섞인 방으로 마당의 풀모기들이 덮쳤다. 간만에 잔치라도 벌어진 줄 아는지, 동네 모기들이 초청장도 없이 죄다 몰려온 것이다. 코딱지만한 방에서 문까지 꼭 걸어 닫은 채 일인당 모기향 하나씩을 끼고 앉았노라니 열기와 연기에 훈제 통구이가 될 지경이었다. 모기보다 사람이 먼저 죽겠다며 마침내 질식 직전의 누군가 방문을 열었고, 그와 동시에 문밖에 대기하던 십만 모기 군단이 쏟아져 들어왔다. 사람의 살이 드러난 모든 곳에 침이 꽂혔다. 독서토론은 이미 물 건너갔다. 찰싹찰싹 모기 때려잡는 소리가 고요한 시골 마을에 메아리쳤다. 아무리 잡아도 모기는 무한리필 되었다. 죽을 줄 알면서도 절벽을 향해 돌진하는 누떼 같았다. 그 와중에도 의연하게 발언을 이어가는 선배가 있었지만, 이미 그 말을 듣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에프킬라를 미스트처럼 뿌려대며 몇 시간을 버티고 나니, 죽은 모기가 쓰레받기 한가득 수북이 쌓였다.
- 이제 그만 일어나자.
아악! 아침이 또 급습했다. 젠장젠장. 온몸이 두들겨 맞은 것처럼 아팠다. 오늘도 실패다. 다른 이들은 수건을 목에 두르고 개울로 나서는 중이었다. 미치고 팔짝 뛸 노릇. 계획을 엿들은 누군가 우리 밥에 약이라도 탄 것이 아닐까. 눈 뜨자마자 비명을 지르는 나를 보며, 악몽이라도 꿨냐고 밥 당번이 물었다.
아침 반찬은 어묵조림과 김치찌개. 오늘의 당번도 밥을 태웠다. 화력 좋은 장작불로 큰 솥에 밥을 하려니 설익은 밥과 탄 밥이 퇴적암 지층처럼 공존했다. 가뜩이나 양도 부족한데 절반은 시커멓다. 우리는 사이좋은 부족민처럼 모자라는 밥을 눈치껏 나눠먹었다. 십시일반이 아니라, 일반십시랄까. 아무 생각 없던 위장을 괜히 건드려놓아서 먹기 전보다 오히려 더 배가 고팠다.
이번에는 논이었다. 잡초를 속아낸다는 일의 본질은 같았지만, 논에서는 김매기가 아니라 '피뽑기'라 불렀다. 논바닥을 보니 다시 촉새 같은 희망이 솟았다. 보들보들한 논에서는 잡초가 뾱뾱 잘도 뽑힐 것 같았다. 하지만 농사일에 무슨 '고통 총량의 법칙'이라도 존재하는지, 또 다른 문제가 금세 마각을 드러내었다. 마른땅에서는 그나마 엉덩이라도 붙일 수 있었는데, 진흙 논에서는 네발짐승처럼 몸을 꺾은 채로 종일 버텨야 했던 것이다. 곧 그분이 오셨다. 접힌 허리를 펼 때마다 아그그 소리가 절로 터졌다. 점심 먹으러 오라는 밥 당번의 외침에는 너무 기뻐서 눈물까지 찔끔 쏟아질 지경이었다.
농활의 제1원칙은 민폐 금지. 굴러다니는 참외 하나도 얻어먹어서는 안 된다. 자기 먹을 쌀은 각자 싸왔고, 부식비 만 오천 원은 갹출이었다. 만오천원으로 30끼를 해결할 수 있나? 우리 중 이런 식의 경제적 안목을 지닌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역시나 며칠 만에 예산이 바닥났다. 처음에는 오뎅, 참치, 계란, 소시지처럼 그럴듯한 것들이 상에 올랐지만, 초심을 잃은 식당처럼 순식간에 메뉴가 부실해졌다. 김치볶음으로 삼시 세 끼를 해결하기도 하고, 날 김에 밥을 싸서 간장에 찍어 먹기도 했다. 그나마도 없으면 그냥 맨 밥을 고추장에 비벼 삼켰다. 해본 적 없는 육체노동 때문에 ‘시장이 반찬’이라는 점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살면서 이렇게 배가 고팠던 적이 있었나... 뭐랄까, 출출하다거나 헛헛하다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극악스러운 허기였다. 혈액에서 빠르게 포도당을 태워버리는 고강도 노동 때문에 뱃가죽은 등에 달라붙었고, 일어설 때마다 허공에 별이 보였다. 거기에 더하여 어떤 화학적 갈망이 머릿속에 똬리를 틀었다. 먹고 싶다, 먹고 싶다. 아... 그리운 인공의 맛. 나무나 풀에서 얻은 것 말고, 공장에서 만들어진 그 무엇.
- 너는 집에 가면 제일 먼저 뭘 먹고 싶어?
내 질문에 정숙의 눈빛이 촉촉해졌다. 과자, 라면, 아이스크림, 햄버거... 우리는 번갈아 가며 그 황홀한 이름을 입에 올렸다. 잠깐 생각만 했는데도 대번에 침이 고였다. 장대비 쏟아지는 논바닥을 보며 정숙은 내게 끓고 있는 라면 냄비같지 않냐고 정신줄을 놓고 히죽거렸다.
탈주의 욕망은 진즉에 버렸다. 아무리 결심을 해도 결계에 묶인 듯 눈을 뜨면 도로 그 자리였다. 처음에는 이를 갈며 다음날을 기약했지만, 일정이 중반을 넘어서자 상황이 애매해졌다. 버틴 날이 남은 날을 훌쩍 넘겨버린 것이다. 며칠만 더 참으면 되는데, 이제 와 비겁자의 오명을 뒤집어쓰는 것은 생각만으로도 억울했다. 멀쩡했던 시절이 기억이 안 날 정도로 어느덧 요통과 친숙해진 것도 한 번 해보자는 쪽으로 무게를 실어주었다.
연달아 두 끼를 고추장에 비벼먹은 그날 저녁, 밥상에 못 보던 반찬이 등장했다. 위풍당당하게 밥상의 중앙을 차지한 그것의 정체를 몰라 우리는 다같이 어리둥절했다. 이걸 뭐라고 불러야 하나. 그건 순수한 양파볶음이었다. 양파는 감자, 어묵, 소시지가 주인공인 드라마에서 주로 비중 있는 조연을 담당하는 존재였다. 그래서 누가 알맹이만 쏙 건져먹고 남긴 것처럼 양파만으로 만든 반찬을 뭐라고 불러야 할지 난감했던 것이다.
낮에 이장님이 양파 자루를 숙소에 내려놓고 가셨단다. 어차피 상품성이 없어 처분할 거라면서, 안 먹으면 버리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게 웬 떡이냐고 밥 당번은 신이 났다. 팬에 기름을 붓고 다시다와 진간장에 볶았다면서, 신메뉴를 선보이는 요리사처럼 당번의 목소리에 기대가 가득했다.
모두 눈이 반짝거렸다. 냄새만으로도 이미 합격이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나는 갓 지은 쌀밥을 크게 한 숟가락 퍼서는 그 위에 기름기 자르르 흐르는 양파볶음을 한점 얹었다. 아아... 잊을 수 없는 그 맛. 달착지근하면서도 알 수 없는 불맛이 가득했다. 이탈리안 레스토랑에 어울리는 이국적 향미였다.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졌다. 어째서지? 왜 맛있지? 양파가 원래 이런 맛인가? 다들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밥도둑이 따로 없었다.
그날 이후 밥상에는 행복의 웃음이 넘실거렸다. 양파볶음은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았다. 똑같은 것을 먹으면서도 이렇게 줄기차게 맛있기는 처음이었다. 질리기는 커녕 매번 아쉬워 입맛을 다셨다. 여러 명이 들러붙어 눈물 콧물을 쏟으며 껍질을 까도, 서른 명 먹성을 이기지 못해 양파볶음은 늘 부족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속으로 이를 갈았다. 이까짓 양파가 뭐라고! 두고 보자. 집에 가면 백일 동안 양파볶음만 해 먹을 테다.
혜성처럼 등장한 양파볶음 덕분에 만땅으로 주유한 자동차처럼 농활대는 활기로 흥성거렸다. 든든하게 밥을 먹으니 강도 높은 농사 일도 너끈했다. 며칠 전까지 앓는 소리를 하던 동기 중 하나는 고등학교 적성검사에서 농부가 나온 적 있다면서 지금 보니 일리 있는 말이었다고 깨방정을 떨었다. 정숙과 나도 언제부터인지 궁시렁거리는 일을 그만두었다.
뿔테 안경으로 신분을 감췄던 클락이 결정적인 순간에 팬티와 망토를 꺼내 입고 슈퍼맨으로 돌변하듯, 어느 집 찬장에나 흔하게 뒹구는 그 소박한 채소는 가여운 시민이 아사의 위험에 임박하자, 불현듯 그 초월적인 위력을 발휘했다. 까도 까도 새로운 양파라더니 과연 변신의 귀재다웠다.
영원할 것 같았던 농활이 끝나고, 마침내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복합적인 감격에 오래도록 가슴이 울렁거렸다. 순식간에 10년쯤 성숙해 버린 느낌. 침대에 누워 한참이나 천장을 바라보았다. 곤충과 공유하지 않는 온전한 허공이라니. 믿겨지지 않는 현실에 가슴 뻐근한 행복이 밀려왔다. 모기에 물린 흉터로 달마시안처럼 변해버린 팔뚝만이 그날이 꿈이 아니었음을 증명했다.
결심과 달리 그날 이후 나는 한 번도 양파볶음을 만들어 본 적이 없다. 더 호화로운 반찬이 많아서는 아니다. 어쩐지 그러면 안 될 것 같아서였다. 하얀 쌀밥 위로 다소곳하게 올라앉았던 그 고운 연갈색의 요리가 남겨준 감동이 너무 생생해서 어떤 덧칠도, 어떤 재현도 내키지 않았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