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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랑도리 Apr 14. 2022

나의 오랜 이북식 만두

  



만두는 이를테면 오페라의 서곡 같은 것이었다. 야구장의 시구. 영화관의 대한늬우스.

평안도가 고향인 할머니는 설이 다가오면 제일 먼저 만두 만들 채비를 했다. 할머니가 광에 처박혀 있던 왕 다라이와 홍두깨를 꺼내 마당 수돗가에서 헹구고 있으면, 달력 없이도 바로 알 수 있었다. 아, 낼모레가 설이구나.


설 전전날. 만두소를 만든다.

재료들이 마루에 집합했다. 두부, 숙주, 당면, 대파, 돈육. 거기에 하얗게 행군 김장김치.

고모들이 도마를 앞에 끼고 신명나게 난도질을 하고 나면, 할머니가 최종 마무리 작업에 돌입했다. 넣고 뺄 것을 조율하는 것이다. 두부가 너무 많으면 만두에서 두부 맛 밖에 안 났고, 숙주가 넘치면 속이 질척해서 빚기가 어려웠다. 고기는 많을수록 좋겠지만 그건 하나마나한 바람일 뿐, 할머니는 언제나 ‘이건 엄연한 고기만두’라는 명분을 유지할 정도로만 고기를 준비했다.


가장 골치 아픈 재료는 당면. 잘게 자르지 못한 당면은 여차하면 밖으로 삐져나와, 만두피뿐만 아니라 빚는 사람의 신경까지 펑크를 냈다. 초벌 다지기를 해둔 당면을 손으로 뒤적거리면서 긴 가닥을 가위로 조각내는 일은 언제나 내 몫이었다. 양푼에 코를 박고 정신없이 가위질을 하다 보면 어느새 손가락에 동그란 물집이 잡히기 일쑤였다.


설 전날. 만두를 빚는다.

커다란 나무 밀판과 홍두깨가 대기한다. 할머니가 홍두깨로 반죽을 밀어 지름 1미터 정도의 대형 원단을 만들면, 고모가 사발로 만두피를 찍어냈다. (몇 년 뒤 슈퍼마켓에 만두피라는 혁신적 발명품이 등장하자, 우리 가족 모두 큰 충격에 빠졌다. 도대체 현대의 과학기술은 어디까지 발전할 셈인가!!)


일손은 충분했다. 엄마와 나 말고도 고모가 넷이었다. 산처럼 보이던 만두소는 빛의 속도로 만두피 속으로 분배되었다. 할머니는 만들어놓은 생만두를 종일 들통에 쪄냈고, 고모들은 손으로는 만두를 생산하면서 동시에 입으로는 비슷한 속도로 찐만두를 소비했다. 그날은 아마 간을 본다며 집어 먹은 찐만두가 일인당 백개도 넘을 것이다.      


설은 만두처럼 맛난 음식을 원 없이 먹을 수 있는 날이었다. 살짝 김이 빠진 찐만두를 고춧가루 섞인 초간장에 찍어 먹으면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았다. 내일까지 쉬지않고 먹으라고 해도 얼마든지 가능할 것 같았다. 다음날 아침 떡과 섞어 만둣국을 끓이면 그건 그것대로 다른 음식이었다. 점심에는 군만두였다. 만두피가 파사삭 부스러지게 튀긴 군만두는 원재료가 같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색다른 존재로 돌변했다. 기름에 튀기면 구두 밑창도 맛있다던데, 하물며 구두 밑창보다 천 배쯤 맛있는 만두가 기름과 만났으니 말해 무엇하겠는가.


할머니는 만두에 대해서만은 희한하게도 인심이 넉넉했다. 그녀는 당시 내가 아는 현생인류 중 인색하기로 세계 1위였다. 손이 작아 먹을 것은 아주아주 조금씩만 만들었고, 10원짜리 한 도 허투루 쓰는 법이 없었다. 채소든, 생선이든 혹시 싸우는 건가 싶을 정도로 격한 흥정을 벌인 후에야 입이 부루퉁해진 장사꾼에게서 파격적인 값에 물건을 뺐어오곤 했다.

절약보다는 어떤 절박에 가까운 할머니의 그 몸부림이, 타지에 뿌리내린 실향민의 생존법이었다는 사실을 이해하기에 그때 나는 너무 어렸었다.      




어느 날인가 마당에서 놀고 있는데, 안방에서 갑자기 큰 소리가 났다. 비명 같기도, 절규 같기도 한.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무서운 소리였다. 나는 놀라서 달려갔다. 거기, 할머니가 울고 있었다.

할머니는 주먹으로 제 가슴을 내리치며 오열했다. 텔레비전이 웅웅거렸다. 화면 속에서는 아나운서의 비장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장장 138일간 이어졌던 KBS 이산가족 찾기 방송은 오늘로 마무리하겠습니다.


할머니는 다시 한번 주먹으로 가슴을 쳤다.  

- 아이고 언니, 언니, 언니.... 저렇게들 만나는데, 다들 저렇게 만나는데... 언니, 언니...


충격이었다. 할머니가 울다니. 걸핏하면 괴팍하게 소리부터 지르는 할머니가 어린애처럼 소리 내어 울다니. 어린애처럼 언니를 찾다니.  


넉 달 동안 할머니는 짬이 날 때마다 TV 앞에 앉았었다.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 구슬픈 오픈 송이 지나고 나면 스케치북에 삐뚤빼뚤한 글씨를 적은 사람들이 종일 비슷한 소리를 하며 울먹였다. 여간 지루한 것이 아니었다. 만화를 기다리는 나는 눈치를 보며 할머니한테 물었다. 이거 왜 보는 거야? 심드렁한 목소리로 할머니가 대답했다. 일사후퇴 때 언니를 잃었다고. 일사후퇴는 국사책에나 등장하는 사건인데 할머니는 엊그제 일처럼 얘기했다. 그러고 나서도 별 말이 없었다. 집안일로 종종걸음 치다가도 불현듯 넋을 잃은 듯 텔레비전 앞에서 맥을 놓을 뿐. 마침내 약속된 시간이 끝났고, 할머니의 간절함은 절망으로 막을 내렸다.


동기를 눈앞에서 잃는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그녀의 슬픔이 넘실넘실 내게로 밀려와 나도 덩달아 눈물이 고였다. 언니... 사나운 할머니에게도 그 다정한 이름으로 부르던 사람이 있었다는 것과, 시간이 흘러도 그런 식의 아픔치유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나는 할머니의 눈물로 인해 불현듯 깨달았다.

그날 나는 처음으로 할머니가 무섭지 않았다.


이산과 실향. 어떤 단어는 글자로 만나도 곧장 소리가 되고 장면이 된다. 이북에 절반의 기원을 두고 있는 나에게, 이 말들이 그러했다. 이산, 헤어져 흩어지고, 실향, 고향을 잃음. 그날 할머니의 표정 속에는 사전적 풀이로 닿을 수 없는 그 전격적인 고통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회복 불가능한 상실.

살아도 살아도 감가상각 되지 않는 그리움.


나는 비로소 궁금해졌다. 명절마다 만두를 빚으며, 할머니는 누구를 생각했을까. 만두소를 가운데 두고 둥글게 모여 앉은 네 딸들이 종일 소곤거리고 키득거리고 깔깔거릴 때, 할머니에게도 비슷한 추억이 떠올랐을 것이다. 어머니가, 아버지가, 언니가 건넨 그 순간의 말들, 그날의 맛들.      




내 엄마는 경기도에서 시집을 와 이북식 만두를 50년도 넘게 빚었다. 할머니의 레시피는 엄마에게 전수되었다. 이제 고모들은 명절이 되어도 부모가 떠나간 친정을 더 이상 찾지 않는다. 각자의 손주를 기다리며 제 집에서 자기만의 만두를 준비할 것이다. 찾아오는 손님이 없어도 엄마는 설이면 여전히 만두를 빚는다. 힘드니 하지 말라고 말려도 소용없다.


엄마의 만두에는 내가 모르는 그녀만의 추억이 서려있을 것이다.           





* 이미지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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