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식집에서 만드는 한식 도시락

by 고작가

2020년 4월. 이제는 평일 점심시간에 빈 테이블이 더 많다. 코로나19는 사스, 메르스와는 다른 감염병이라는 걸 온몸으로 느끼고 있다. 배달의 민족에 가입도 하고, 포장 메뉴도 늘려 봤지만 ‘일식’이라는 메뉴 특성상 포장 판매가 쉽지 않다. ‘어떻게 해야 하지?’ 하루 12시간 넘게 가게에 머물면서 이 생각, 저 생각 가게 매출을 올릴 수 있는 방법을 끊임없이 고민해 보지만 뾰족한 수가 떠오르질 않는다.


문득 사직동에서 한식뷔페를 운영하고 있는 P형님이 떠올랐다. 10년 넘게 한 자리에서 7,000원짜리 한식뷔페를 운영해 온 P형. 코로나가 터지고 3개월 넘게 개점휴업 상태인 가게를 접는 대신, 한식 도시락으로 업종변경을 했다. 여러 개의 배달 앱에 가입하고, 기존 손님들에게 업종변경했다는 소식을 알리고, 다른 도시락집 보다 반찬 구성을 다양하게 꾸몄다. 아직 초기 단계라 만족스럽진 않아도 빈 가게를 지키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는 P형의 목소리에서 오랜만에 생기가 돌았다.


우리 가게도 한번씩 단체주문이 들어오면 일식 도시락을 만들어 판 적은 있지만, 단가가 20,000원 이상이라 배달 메뉴로는 쉽지 않을 것 같았다. '도시락, 도시락.... 그래, 깔끔하고 가성비 좋은 한식 도시락을 만들어 보자. 다행히 주방엔 솜씨 좋은 음식 장인들이 계시니까 한번 해보자. 앉아서 굶어 죽나, 싸우다 죽나. 어차피 장사가 안돼서 굶어 죽게 생겼으니, 무엇이라도 해야 했다!'


주변 도시락 전문점의 인기 메뉴를 골고루 시켜놓고 가게 식구들과 시식평을 해 봤다. 전반적으로 음식 맛이 너무 달다. 메인 반찬 대부분이 마트에서 파는 기성품 맛이다. 김치도 공장 김치고, 반찬도 나물보다는 다른 밑반찬이 대부분이다. 음식에 신경 쓰면 승산이 있을 것 같단 자신감이 생겼다. 그날 저녁부터 주방 식구들과 도시락 구성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메인 반찬은 소불고기와 오징어 볶음 중 택 1. 김치를 포함한 4가지 반찬과 샐러드. 초밥과 사시미, 생선구이와 장어구이를 추가할 수 있게 기본 구성을 짰다. 가격은 만원부터 삼만원까지.


메뉴를 구성하는 것까지는 막힘없이 왔지만 기존 메뉴가 아니다 보니, 미리 주문을 하지 않고 짜장면 시키듯 한두 개 주문해서는 정해진 시간 내에 음식을 뺄 수가 없었다. 이대로 포기해야 하나 답답한 마음에 기존 예약 명부에 있던 전화번호로 한식 도시락 샘플 사진과 가격표를 전송했다. '최소 주문 5개, 10개 이상 배달 가능.' 하루에 20건, 일주일 정도 단체 문자를 보내자 주문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대부분 10개 미만으로 근처 병원이나 사무실에서 우리 가게를 오던 손님들이 주문하기 시작했고, 입소문이 나면서 한식 도시락 주문이 차츰 늘게 되었다. 눈물이 났다. 단순히 매출을 올려서가 아니었다. 침울하기만 했던 가게 분위기가 조금은 나아졌고, 도시락이라도 팔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겨서인지 주방 식구들도 오랜만에 활기차게 움직였다.


맞다. 안 된다고 하늘만 쳐다보고 있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무엇이든 해 봐야 한다. 그 후로 나는 틈나는 대로 가성비 좋은 세트 메뉴도 만들어 보고, 새로운 반찬도 선보였지만, 매출을 크게 올리진 못했다. 하지만 더 깊은 바닥으로 떨어지지 않기 위해 오늘도 끊임없이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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