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엔 그녀들이 있다

by 고작가

식당에 들어가 메뉴판을 보고 있으면 서빙하는 분들이 반갑게 맞으며 물을 건네준다. “날씨도 추운데, 설렁탕 맛있어요” 능숙하지만 우리와는 약간 다른 말투, 소위 ‘연변 말투’지만 우리에겐 이제 꽤 익숙한 말투다.


언제부턴가 서울시내 식당 어디서나 조선족 분들을 만나는 건 흔한 일상이 되었다. 우리 가게에도 3년째 같이 일하고 있는 Y 이모가 있다. 요즘은 식당에서 일하는 분들을 '이모'라고 부르지 않기도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이모'라는 호칭으로 불리고 있다. 연변에서 살던 그녀는 1992년 21살 어린 나이에 남편과 함께 한국으로 왔다고 한다. 처음 2년동안 식당에서 일을 했지만, 어린 나이에 낯선 곳에서의 고된 일이 너무 힘들어서 다시 연변으로 돌아갔다고. 그렇게 다시 돌아간 연변에서 아들을 낳고 행복한 나날을 보내다가 다시 한국으로 들어오게 된 사건이 있었다고 한다.


이모의 남편은 연변에서 여행사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2008년도에 1박 2일 프로그램에서 백두산을 촬영하고 간 이후, 조선족들이 운영하던 여행사의 영업이 어렵게 됐다고 한다. 나도 그 장면을 기억한다. 강호동 씨와 다른 멤버들이 백두산 천지에 태극기를 꽂고 만세를 외치던 장면. 우리에겐 뭉클했던 그 장면이, 백두산 절반을 소유하고 있는 중국 정부에게는 눈엣가시처럼 보였나 보다. 그 일을 계기로 하루 아침에 생업을 잃게 된 이모네는 어린 아들을 할머니에게 맡기고, 다시 한국으로 나오게 됐다.


2009년, 한국에 다시 온 뒤로 지금까지 이모네 부부는 가끔 비자 연장을 위해 잠시 중국에 갔다 오는 것 외엔 줄곧 한국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다. 남편은 지방의 막걸리 공장에서 기술자로 10년 넘게 일하고 계시고, 이모 역시 서울에서 식당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주말부부로 지내고 있다. 한 번씩 중국에 두고 온 대학생 아들과 영상통화를 하는 이모를 보면 내 마음도 좋지 않다. 긴 세월 돈을 벌기 위해 낯선 곳에서 일하느라 아들이 커가는 모습을 보지 못한 게 가장 큰 한이 된다고 덤덤히 말은 했지만 그때마다 눈시울이 붉어지는 얼굴을 보았기 때문이다.


흔히 조선족은 자신들을 '교포'라 칭한다. 중국 국적을 가지고 있지만, 오래 전 한민족이 중국으로 이주하여 정착하게 된 것이니 교포라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조선족 대부분은 중국에서도, 한국에서도, 이방인 취급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한국에서 중식당을 운영하거나, 중국인 가이드를 하는 사람들은 대개 화교들이 많다. 그들의 거주지는 한국이다. 반면 조선족은 한국에 정착하기보단 일을 하다가 중국으로 돌아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화교는 우리 민족이 아닌 순수한 중국인, 외국인이고, 조선족은 중국 국적이긴 하지만 우리 민족인데, 안타깝게도 이 차이를 아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지 않다.


식당을 20년 정도 운영하면서 많은 교포들과 일을 해 봤다. 그때마다 가게 일을 내 일처럼 해주는 그 분들을 외국인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 분들의 할머니, 할아버지는 고향이 경상도, 전라도인 한민족이고, 그 분들 안에 쌀밥에 된장찌개와 김치를 즐겨먹는 한국인의 피가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도 식당의 그녀들은 열심히 한국에서 그녀들의 삶을 살아내고 있다. 우리가 그들에게 배타적이지 않은 마음을 가지고 대할 때, 그들도 이곳에서 자신들이 이방인이 아님을 느끼지 않을까? 혹시 식당에서 우리와는 조금 다른 말투를 가진, 하지만 우리 이웃인 그분들을 만난다면 따뜻한 말 한 마디를 건네는 상냥함을 나눠주심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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