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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여우 Aug 16. 2023

꿈에서 일어난 살인사건

푸른여우, 하루하나 번외편 / 8월 15일

   1.

   꿈에서 나는 탐정이었고, 어느 취조실에 있었다. 추리만화를 너무 많이 본 탓이었다. 옆에는 현실에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형사님이 친근하게 말을 걸었다. 형사님은 나에게 귓속말로 말씀하셨다.

   "저 세 명 중에 범인이 있는 건 분명 확실해. 하지만 피해자는 죽기 전 마지막으로, 범인이 우리나라 사람이 아니라고 했단 말이지. 근데 세 명 다 우리나라 주민등록증을 가지고 있고, 해외 출입 기록도 확인할 수 없었어. 지문을 확인해보려 했지만, 공교롭게도 세 명 다 공장에서 화학성분에 오래 노출된 탓에 지문이 지워져서 확인이 불가능한 상황이야. 그렇다고 저 사람들을 언제까지고 붙잡아둘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뭔가 단서가 없을까요."

   나는 갑작스레 취조를 받게 되어 당황한 듯한 세 사람의 모습을 물끄러미 보았다. 형사님이 답답한 듯 머리를 쥐어 싸매고 이내 말하셨다.

   "아으, 머리가 안 돌아간다. 일단 밥이라도 먹고 생각해 보자고. 여러분, 중국집 시키려고 하는데 드시고 싶으신 거 말씀해 주셔요. 아, 비싼 건 안 되니까 짜장면이나 짬뽕으로. 아셨죠?"

   그러자 제일 왼쪽에 앉아 있던 박민철이 말했다.

   "이거 원, 오래 앉아 있었더니 속이 느끼해 죽겠군. 나는 짬뽕으로 하겠소."

   그리고 옆에 있던 서영인이 말했다.

   "저는 어제 짬뽕을 먹어서요. 오늘은 뭐, 짜장면으로 해야겠네요."

   마지막으로 오른쪽에 앉아 있던 박하나가 말했다.

   "전 짜장면으로 할게요. 맑은 국물은 별로 안 좋아하거든요."

   그렇게 형사님은 내 것까지 주문을 받으신 후 잠시 밖으로 나가셨다. 나는 무언가 위화감을 느끼고 그 자리에서 그들이 했던 말을 다시 되짚어보았다. 그리고 범인이 누구인지 알아챘다.


   2.

   "방금 저녁으로 중화요리를 시키려 했을 때 나눴던 대화를 떠올려봐요. 형사님이 '짜장면이나 짬뽕으로 통일하라'라고 말을 했고, 먼저 박민철 씨가 느끼한 속을 달래야겠다며 자신은 짬뽕으로 하겠다고 했어요. 그다음 서영인 씨는 어제 짬뽕을 먹었으니 오늘은 짜장면으로 하겠다고 했죠. 그리고 박하나 씨, 당신은 이렇게 말했어요. '전 짜장면으로 할게요. 맑은 국물은 별로 안 좋아해서요.'라고."

   "그래. 그게 뭐 어쨌다는 거지?"

   "저는 그 말을 듣고, 당신이 한국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게 무슨 소리야?"

   "한국에서는 짬뽕이라고 하면, 보통 빨간색을 떠올리니까요."

   "뭐?"

   "당신은 순간적으로 본토에서 먹은 하얀 짬뽕을 떠올렸기 때문에 '맑은 국물'이라는 표현을 쓴 거예요. 그러니까 저는, 당신이 실은 일본인이거나, 적어도 일본에서 오래 생활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표현을 썼을 거라고 추리해 낸 거죠."

    "그, 그건, 우리 집은 항상 흰 짬뽕만 시켜 먹었으니까. 부모님이 매운 걸 못 드셔서. 고작 그런 걸로 나를 범인으로 몰아세우는 건 너무 성급하지 않아?"

    그때, 주문했던 음식들이 도착했다. 미리 부탁했던 대로, 배달부는 철가방 안에 있던 음식들을 일부만 꺼내주고 그대로 있었다. 박하나 씨는 생소한 표정으로 철가방에서 나오는 음식들을 눈으로 좇았다. 자신이 그 음식들을 오늘 처음 본다는 사실을 들키지 않으려 애썼다.

    "그럼 한번 가리켜주실까요. 어떤 게 짜장면인지."

    총 세 그릇의 음식이 책상 위에 늘어서 있었다.

    "지금 누굴 바보로 알아? 이 두 개가 짜장면이잖아!"

   그는 자신만만하게 손으로 두 개의 그릇을 가리켰다. 박민철 씨가 주문했던 빨간 짬뽕을 건너뛰고, 나와 형사님이 주문했던 두 그릇의 볶음짬뽕을 정확하게 가리키며.

    "이걸로 더욱 확실해졌군요. 당신은 한국 토박이가 아니에요."

    "뭐?"

    "진짜 짜장면은, 바로 이거예요."

    나는 철가방 안쪽에 있던 짜장면 두 그릇을, 마저 그의 앞에 놓았다. 그는 처음 보는 음식들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이제 정체를 밝혀 주시죠. 박하나 씨."

    나중에 알고 보니, 박하나 씨는 밀항해서 들어 온 지명수배자로, 한국에서 자살한 무연고자의 주민등록증을 우연히 얻게 되어 사진을 따라 얼굴을 성형하고 살고 있었다는 모양이다. 한국어가 유창한 이유는 어머니가 한국 분이셨기 때문이고, 부모님이 매운 걸 못 드셨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나는 잠에서 깨서 추리만화 좀 그만 봐야겠다고 자기 자신을 반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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