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24절기에 따르면 내일부터 가을이라고 해요. (뭐라고? 이렇게 더운데) 날씨는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없어요. 그래서 저는 매년 여름이 되면 입추보다도 말복을 기다리곤 한답니다. 신기하게도 말복이 지나면 언제나 가을바람이 솔솔 불기 시작하거든요. 그나마 말복 또한 금방 찾아온다고 하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쨌든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여름은 절기 상으로 오늘이 마지막이에요. 고된 더위와 안타까운 소식들을 이겨내고 가을로 접어들 여러분께, 이 글들이 자그마한 보상이 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습니다.
(10가지 이야기를 준비했습니다.)
연응정
-내 약속하겠소. 일백 년이 가기 전에는 다시 오기로.
꿈에서 나는 어떤 정자 앞에 있었다. 옆에서는 어떤 여자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인 채 내 손을 잡고 있었다. 정자의 이름은 '연응정'이었다. 인연은 얽히고설킨다는 뜻이었다.
잠에서 깨어 검색해 보니, 그곳은 여기서 차로 2시간 정도 걸리는 작은 시골마을에 있는 정자였다. 밖은 장맛비가 내리고 있었다. 나가기에 그렇게 적절한 날은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어느새 우산을 챙기고 차로 갔다. 이런 이야기들이 늘 그렇듯, 꿈은 사람을 불가사의한 방향으로 이끌었다. 와이퍼를 켰다.
가을살이
"가을 올 때까지만 살자."
그렇게 그의 아흔여덟 번째 가을이 찾아왔다.
동전 뒤집기
"제가 행복할 수 있는지 알려주세요."
그 끈질긴 요청에 드디어 신이 응답했다. 신은 500원짜리 동전 하나를 손에 올리고, 앞면이 나오면 행복할 수 있을 것이고, 뒷면이 나오면 행복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운명의 동전이 신의 손을 떠났다. 잠시 허공에서 돌던 동전이 이윽고 손등에 떨어졌다. 500이라는 선명한 숫자가 그를 향했다. 그는 잠에서 깼다.
누워 있던 그가 생각했다.
"동전의 어느 쪽이 앞면이었지...?"
그러나 그는 너무도 졸렸다. 꿈의 내용이 기억 속에서 서서히 사라질 때까지, 그는 동전의 어느 면이 앞면인지를 확인하지 않았다. 그리고 결국 자신이 확인한 점괘를 잊어버렸다. 점심이 되어, 그는 다시금 신이 자신에게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는다고 한탄했다.
신은 멀리서 고개를 저었고, 두 번 다시 그의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우리 집
평일 낮에는 회사에서 일하고, 밤에는 고등학생 과외를 하고, 다시 낮에는 회사에서 일을 한다. 금요일 밤에는 기분이 좋았다. 침대에 누워서 무드등을 켜고 모든 것을 잊으려 하며 덕질을 했다. 그리고 토요일 아침이 되고 나는 무의식 중에 입 밖으로 그런 말을 했던 것이다. 집에 가고 싶다. 지금 내가 있는 여기는 집이 아닌가.
"집에 있는데 집에 가고 싶다는 건 무슨 심리일까."
지금은 월요일 저녁이었다. 월요일에 과외를 받는 학생에게 물었다. 월요일은-그녀는 요일마다 가르치는 학생이 달랐기에, 속으로 아이의 이름을 요일로 부르고 있었다-방금 내가 한 말을 문제집 한 귀퉁이에 적었다. 그리고 두 개의 '집'에 밑줄을 긋고 다시 말했다.
"앞에 있는 <집a>는 '작가가 처한 현실', 뒤에 있는 <집b>는 '작가의 이상향'. 표현은 역설법."
"배운 걸 이렇게 써먹네."
장마
"어쩔 수 없이 비를 맞아야 하는 운명이라면, 축축한 장맛비 말고 산뜻한 가랑비를 맞고 싶어."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빗줄기가 더욱 거세졌다.
좋아
"야."
"응?"
"좋아하게 만들려고 노력한 적도 없으면서, 그 사람이 나를 좋아했으면, 하고 생각하지 마."
"생각하는 것도 안 되냐?"
"그래 그럼, 생각은 해. 근데 기대는 하지 마."
"노력이라고 해도 있지. 공부도 봐봐. 열심히만 한다고 성적이 늘진 않잖아."
"나였으면 먼저 공부 잘하는 친구한테 물어볼 거야. 어떻게 노력해야 되는지."
"어떻게 노력해야 되는데."
"음, 옷부터 좀 바꿔. 너 어두운 색 안 어울려."
미궁
-탐정이 포기하면, 사건은 미궁에 빠지니까!
유명한 추리 만화의 한 대사. 딱히 탐정이 아니더라도, 포기하면 미궁에 빠지는 것들은 세상에 넘쳤다. 꿈, 미래 같은 것들. 손에 잡히지 않는 그런 것들. 미궁에 빠진다는 표현이 정말 잘 어울리는 그런 것들.
그러고 보면 힘들 때마다 추리 만화를 보게 되는 이유는, 저 탐정처럼 무언가를 포기하고 싶지 않아서인지도 모르겠다. 오늘도 나는 자기 자신에 대한 진실을 밝히려고 바쁘게 뛰어다녔다. 언젠가 사람들을 모아놓고 그 충격적인 진실을 밝히고 싶다. 나비넥타이 같은 거 없이.
적당
그날 저만치서 엄마가 걸어오는데, 나이가 많이 드셨더라고. 그래서 하루종일 뭔가,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고. 그 말을 건넸을 때 민영이 이야기했다. 자기를 키워준 사람이, 바로 근처에서 나이 들어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축복이라고. 민영의 어머니는 민영이 성인이 되기도 전에 돌아가셨다. 정연은 자신이 부주의했음을 깨닫고 사과했다.
정연은 안타까움과 축복이라는, 서로 상반된 의미를 지닌 듯한 두 단어를 줄곧 곱씹었다. 안타까움을 축복으로 여겨야 할 정도로 민영에게서 소중한 사람을 빼앗아버린 누군가를 그때와 마찬가지로 증오했다. 아무렇게나 태어난 이상, 서로가 되도록 적당한 행복과 적당한 불행을 겪고, 서로를 적당한 수준에서 축하하고, 적당한 수준에서 질투하며 시간을 때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정연이 말했다.
그렇게 살고 있는 사람도, 그렇게 살다가 죽은 사람도 드물어. 마치 당연한 것을 이야기하듯 민영이 이야기했다. 통계 결론과도 비슷한 그 문장은 민영이 여태껏 삶의 한편에 쌓아 올린 수많은 위안의 문장들 중 하나였다.
하늘빛
우물에 갇힌 지 열흘이 되었다. 그는 멍한 눈으로 하늘을 올려다봤다. 다시 밤이 오려는지, 하늘은 옅은 파란색이었다. 허공에서 사다리가 내려왔다. 그는 또 환상을 보는 거라고 생각했다. 사다리를 타고 내려오는 누군가에게 그가 죽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밤이 와요. 모든 게 끝나려나 봐요."
그러자 그 사람이 나를 똑바로 보며 말했다.
"아니에요. 이제 새벽이에요. 곧 모든 게 다시 시작될 거예요."
연응정(속)
그는 강물이 불어났다는 마을 사람들의 말에 일말의 불안감을 느꼈다. 그리고 연응정은, 그 얽히고설킨 인연들이 모두 과거의 일이라고 이야기하는 듯 물에 잠겨 있었고, 지붕만이 아슬아슬하게 수면 위에 드러나 있었다. 성난 물결에 지붕마저도 떠내려가 버릴 것 같았다.
'옛날에는 이 주변이 다 육지였대.' 동해바다를 보러 갔을 때 그 아이가 했던 말이었다. 어쩌다 보니, 지금 그 아이는 여기에 없었다. 어쩌다 보니, 정자는 물에 잠겨버렸다. 어쩌다 보니.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다. 그는 모든 게 끝난 것만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자신의 환경에서 다시금 고개를 돌리고, 왔던 길을 되돌아왔다.
빗줄기는 더욱 거세져서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끝내 그는 돌아갈 길을 찾지 못해 근처에 있던 어느 절에 들어섰다. 불상 앞의 촛불이 어두운 방을 겨우 밝히고 있었다. 손을 모아 서툴게 무언가를 기원하고, 방 한 구석에 몸을 기댔다. 피로가 쏟아졌다.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렸다.
-당신은 어디에 있나요?
"지금, 여기요."
-당신의 마음은 어디에 있나요?
그는 잠시 고민한 후, 살며시 고개를 저었다. 소중한 사람을 잃고 난 뒤로 그의 마음은 언제나 과거에만 머물러 있었다.
-기회는 한 번 뿐이에요. 이곳으로 데려오세요. 지금, 여기로.
이런 이야기들이 늘 그렇듯, 기회는 한 번 뿐이었다. 그는 눈을 감았다. 잠결에 그는 수없이 사람들과 엇갈리는 상상을 했다.
눈을 떴을 때, 그는 물에 잠긴 연응정의 지붕 위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