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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여우 May 11. 2023

어버이날 이런저런

푸른여우, 하루하나 : 5월 상순

  머리말


   "요즘은 날씨가 많이 더워졌네요."

   "날씨 얘기를 하는 거 보니까, 나한테 뭐 숨기는 게 있구나?"

   "...... 네. 실은 이번에 써둔 게 없어서요."

   "공휴일이 그렇게 많았는데? 어린이날에 뭐 했어."

   "어린이날에, 박물관에서 어린이 잡지 전시를 봤어요."

   "어버이날에는?"

   "부모님이랑 같이 점심 먹고, 뭐 그 정도요."

   "흠흠, 좋아. 그러면 벌칙 겸 지금부터 일상을 경험하게 해 줄게."

   "일상이요?"

   "응. 너의 과거일 수도 있고, 너의 미래일 수도 있고, 현재일 수도 있고, 전혀 상관없는 누군가의 일상일 수도 있고. 아참, 주제는 어버이날이야."

   그렇게 주인께서 나의 양 귀에 손을 대시니 주위의 소리가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나는 그 와중에도 눈을 감으라는 주인의 말씀을 입모양으로 알아차려, 곧바로 눈을 감았다.


  이런 삶


   매년 다 같이 할아버지 성묘를 갔을 때 나는 지루해해서는 안 되었는지도 모른다. 오히려 거기에 담긴 사연에 더 많이 주의를 기울여야 했는지도 모른다. 옆에서 막걸리를 따르시는 부모님과 죽음에 대해서 이야기했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부모님은 갑작스럽게 돌아가셨다.

   그건 세상의 이치야, 얄밉게 조물주가 이야기하는 듯했다. 마음은 아프지만 당신은 슬퍼할 시간이 없다. 장례 지도사가 쓴 블로그 소개글에 있던 글귀였다. 나는 그가 친절하게 써준 장례 절차를 따라서 급하게 장례를 치렀다. 그러나 돌아가신 부모님의 마지막을 선택해야 했을 때, 즉, 화장인지 수목장인지, 부모님을 어디에 모실 것인지에 대해 고민해야 했을 때, 나는 미처 살아계실 때 그것을 여쭤보지 못한 것이-설령 그것을 여쭤보는 일이 보통은 불경스러운 일이더라도- 후회스러웠다.

   이런 상황에서도 사람은 선택의 기로에 서야만 했다. 나는 거기에 분노할 힘도 없었다. 그때, 할머니께서는 자식을 떠나보내신 슬픔을 꾹꾹 누르듯 참으시며, 애써 담담한 척, 나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하셨다. 뭘 하든 괜찮을 거야. 나도 아직 못 정했어.


  저런 삶


   아버지는 팔을 다치셨고 우리는 더 이상 가족 여행을 갈 수 없었다. 나는 차 사고를 너무도 많이 보았던 탓에 무서운 마음이 들어 아직도 면허를 따지 못했다. 어느새 아버지께서 환갑의 문턱에 서계셨다. 나는 저번 달에 본가에 들러 소파에서 주무시고 계신 아버지의 모습을 뵌 참이다.

   그런데 요즘 들어 지나간 추억들, 예를 들어 아버지가 모임에 끌고 나가 다 같이 캠핑을 했던 일이나, 사촌들과 함께 외할머니댁에서 뛰어놀던 일들이 자꾸만 생각이 났다. 마치 간직만 하고 있던 일기와 앨범을 자꾸만 꺼내보게 되는 그런 느낌이었다.

   "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죠?"

   그러자 AI가 말했다.

   "네,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려드리겠습니다. 당신께서는 지금 삶의 후반기에 접어들었습니다."

   "삶의 후반기요?"

   "네, 우리는 태어난 후 전반기에 이르기까지 정신적으로 추억을 섭취하게 됩니다. 이때의 당신은 자신이 추억을 섭취하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후반기 생물이 만들어주는 추억을 수동적으로 먹으면서도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하지만 일정한 시기가 되어, 삶의 후반기에 접어들면 당신은 누군가에게 추억을 만들어줄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됩니다. 그러면 신체에 분비되는 호르몬에 의해 심한 그리움에 빠지게 됩니다. 자신이 겪은 것과 비슷한 양질의 추억을 나누려는 본능이 발현되는 것이지요. 우리는 그것을 지속적으로 나눠 가질 때 더 오래 살 수 있습니다."

   나는 얼마 뒤 면허를 땄다. 내가 뒷좌석에서 바라봤던 자동차 운전석에, 이제 아버지가 아니라 내가 앉아 있었고, 머리가 희끗해지기 시작한 아버지는 이제는 뒷좌석에서 나를 보고 계셨다.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간다는 평범한 말에도 나는 쉽게 울컥해진 걸 보니, AI가 말한 대로 호르몬의 영향이 있긴 한가보다. 우리는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달리면서 나는 줄곧 내가 만들어갈 추억에 대해 생각해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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