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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rmon Jul 08. 2023

십이 년 만에 돌아온 편리왕의 극세사 퀼트 뮤직

[리뷰] 킹스 오브 컨비니언스의 [Peace Or Love]

국내에서 '편리왕'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던 노르웨이의 포크 듀오인 킹스 오브 컨비니언스(Kings of Convenience)가 돌아왔다. 편할 때 자유롭게 모여서 음악한다는 밴드명은 힐링 음악을 만드는 데 있어서 제격처럼 들리지 않는가? 마지막 앨범이었던 <Declaration of Dependence>(2009) 이후 십이 년 만이라는 걸 감안하면 <Peace Or Love>의 아늑한 미니멀리즘 스타일은 음악 트렌드에 비추어볼 때 반갑게만 느껴진다. 국내 커피 광고에 삽입되어 북유럽 대표 음악가로 알려질 수 있었던 Cayman islands’나 'Mrs. Cold'는 산들바람의 여유와 어쿠스틱 감성을 간직한 채 하나의 추억처럼 살아 숨 쉰다.


킹스 오브 컨비니언스는 진척되지 않는 일을 억지로 붙잡으며 욕심내지 않는다. 뵈는 현실적으로 사랑 혹은 평화를 얻을 가능성이 모두 얻을 가능성보다 높다며 전자를 기대한다면 덜 실망할 것이라고 말한다. 얼랜드 오여(Erlend Øye)와 아이릭 글람벡 뵈(Eirik Glambek Bøe)는 생업, 사이드 프로젝트ㅡ뵈는 베르겐에서 건축 디자인을 공부하며 아이 셋을 돌봤고, 오여는 화이티스트 보이 얼라이브(The Whitest Boy Alive) 멤버이며 중간에 가족이 세상을 떠났다ㅡ와 긴 녹음일정에도 불구하고 조급해하지 않았다. 힘들 때면 제쳐 두고 남미에서 휴식기를 보냈다. 이들은 번아웃에 빠지지 않게 붙들어 준 레슬리 파이스트(Resli Paist)와 컬래버를 복기하고, 프로듀서인 다비데 베르톨리니(Davide Bertolini)가 마법 같은 순간을 찾으라는 조언을 새겨 들었다.

Credit: Salvo Alibrio

산티아고나 시칠리아 등 곳곳에서 녹음한 덕분인지 이국적인 풍미가 뻗친다. 아프레지오와 퍼거시브가 반복되는 기타와 비올라 디 감바로 연출하는 'Catholic Country'는 파이스트와 다시 한번 호흡을 맞추며 보사노바 스타일로 전개하고, 'Fever'의 긴 반주에 엮어낸 전자드럼은 마드리드의 휴양지에 온 것처럼 고즈넉한 분위기를 선사한다. "열, 너에게 열이 나 / 크리스마스에 파격적인 옷을 입고 / 너의 스쿠터를 타고 주위를 돌아다녀." 공상으로 떠나는 듯한 'Ask For Help'는 그다지 우울하지 않은 톤으로 잔잔하게 휩쓴다. 비올라와 마림바의 어레인지가 특징인 'Rocky Trail'은 2003년부터 함께한 토비아스(Tobias)의 아이디어로 완성된 여행지의 잔물결이다.


나일론과 스틸 기타만을 가지고 소박하게 연주하는 편리왕들이 변화를 꾀했다기엔 부족한 감이 있지만 어디 하나 모나지 않은 가사가 눈에 띈다. 'Rumours'에서는 업라이트 베이스(Upright Bass)에 더불어 위로의 말을 속삭인다. "사람들은 당신의 상처를 다시 벌리고 / 세상으로부터 눈을 돌리게 만들고 싶어 하죠 / 그들의 꼭꼭 숨긴 범행으로부터 / 당신을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 당장 들리지 않는다는 걸 알지만요."  따스한 햇볕처럼 비치는 'Love Is A Lonely Thing'은 인도네시아 혼성 밴드 화이트슈즈 앤 더 커플스 컴퍼니(White Shoes & The Couples Company)의 영향을 받아 낭만적인 기류를 형성한다. "인내는 가장 배우기 힘든 덕목이야 / 애가 탈 때면 시간은 바다 같은데 / 무작정 달려들면 망쳐버리겠지 / 때를 기다려야 해 / 씨앗을 심고 물을 주고선, 사랑이 자랄 때까지 기다리는 거야."


피치포크의 리니 그리니가 "앨범이 너무나도 부드러워서 솔기가 거의 보이질 않는다"며 "퀘일루드를 먹어서 꾸는 꿈같으며 고상하고 기품이 있어서 진정작용의 특성을 지니고 있다"라고 말한 것처럼, 일련의 트랙은 온몸으로 부드러운 벨벳이나 퀼트의 감촉을 어루만지듯 솔솔 눈을 감기게 만든다. ASMR이나 앰비언트처럼 싱겁고 지루할 수는 있어도 고요한 매력이 있다. 퍼덕이는 마음을 율동적인 선율로 바꾸어놓으며 발랄한 생기를 주는 'Angel', 잿빛 하늘을 닮은 'Killers'는 차분한 매력이 있다. 다섯 번이나 녹음을 거친 <Peace Or Love>는 공백이 긴 세월에 대한 후속조치라기보다 건강한 마음으로 오래 지속할 수 있길 바라는 시범운영에 가까울 것이다. 킹스 오브 컨비니언스는 2023년 3월 17일 내한한 바 있다.

1. Rumors

2. Rocky Trail

3. Comb My Hair

4. Angel

5. Love Is A Lonely Thing

6. Fever

7. Killers

8. Ask for Help

9. Catholic Country

10. Song About It

11. Washing Mac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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