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irin Mar 09. 2023

기억하는 것과 마주하는 지금의 차이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의 공존

4년 만이었다. 비행기가 착륙하고 창 밖으로 보이는 흐린 하늘과 생기를 잃은 겨울의 풀들이 보였다. 실감이 나지 않았다. 비행기에서 내려 캐리어를 끌고 걸어가면서 이 오묘한 기분을 어쩌면 좋을지 생각했다. 짐을 찾고 나가 마중을 나오기로 한 부모님을 기다렸다. 눈앞에 할리스 커피가 있고 공항 티브이 화면에는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한국에 왔구나. 한 달을 꽉 채워서 지낼 생각을 다시 해보니 제법 길게 느껴졌다. 해외결제 카드는 또 먹통이었고 가장 좋아하는 바닐라 딜라이트 커피를 마실 수 없었다. 기다리는 동안 지갑에 남아있던 달러를 환전해야겠다 생각하고 환전소로 갔지만 사람이 너무 많았고 왜인지 느렸다. 부모님은 근처에 도착해 차를 주차하는 곳이 멀어 얼른 나오라고 재촉을 했고 일단 공항을 나섰다. 아빠는 모자에 마스크를 쓰고 있었지만 그 사이에 부쩍 나이 든 모습이 완연하게 보여 지나간 시간이 코앞으로 훅 와닿아버렸다. 오래되고 낡은 차문을 열고 집을 싣고 집으로 향했다. 창 밖으로 보이는 생기를 잃은 겨울의 풍경은 제법 우울했고 편하지 않았던 그 집으로 향하는 마음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최대한 다른 생각을 하려고 하며 짧은 안부를 나누며 집으로 갔다.

4년 전 나섰던 집은 너무도 어색했다. 그대로 남은 것들이 사람들이 나이를 먹어 낡아졌고 늙어져 있었다. 생경한 기분에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온 익숙함이 들지 않아 여행을 온 기분이 들었다. 그래 차라리 여행을 왔다고 생각하자. 그 편이 나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다행히 우리 집 강아지는 좀 짖다가 아무렇지 않게 나를 알아봤다. 엄마를 가장 좋아하는 우리 집 강아지는 내가 그냥 어디 갔다가 왔나 보다 하듯이 굴었다. 캐리어에서 사 온 장난감을 꺼내어 환심을 샀지만 길지는 않았다. 내 방은 이제 없었고 안방 한편에 큰 캐리어를 두고 옷을 갈아입었다. 할머니는 더 야위셨고 4년 동안 자리를 비운 손녀딸이 어디 외출에서 돌아온 것처럼 잘 떠지지 않는 눈으로 부스스한 모습으로 왔냐며 말을 하셨다. 내가 없는 동안 엄마는 시어머니를 모시고 사느라 고생스러운 순간들도 많았을 거라 이미 짐작은 하고 있었다. 집을 둘러보고 화장실에 가니 뭔가 집이 더 오래된 느낌이 들었다. 나를 빼고 너무 많은 것들이 시간을 삼켜버린 기분이 들었다. 어릴 적 아궁이가 남은 오래된 시골집에 갔을 때가 생각났다. 뭔가 다 너무 그 자리에서 오래 남아있는데 어디에선가 내가 훅 등장해 버리는 그런.. 시간의 감각이 꼬여버린 기분이었다. 엄마는 내가 먹고 싶다던 음식 몇 가지를 저녁 식사로 차려줬고 난 오랜만에 맛있는 밥을 먹었다. 밥이 이렇게 맛있었던가. 찰지고 윤기가 흐르는 잡곡밥을 금세 두 공기나 먹었다. 역시나 엄마가 해주는 반찬들을 참 맛있다. 밥을 먹으며 조금 어색하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밥을 다 먹고는 나는 친구들의 연락에 답을 하고 이런저런 일들을 했다. 티브이를 보는 일이 이제는 낯설었다. 집에 티브이가 없어도 불편한 게 없고 대부분의 영상들은 이제 핸드폰 하나면 다 볼 수 있으니 말이다. 아빠도 그게 이상했는지 집에 티브이가 있냐고 물어보셨다. 그렇게 마음 한구석이 불편한 채 일렁이는 지나간 시간들의 기억을 되살리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한 달이 지나면 나는 돌아가야 하는데 난 어떤 마음일까? 4년 전의 나는 기대와 불안 그리고 가라앉은 죄책감을 가지고 떠났었다. 돌아갈 나는 어떤 마음으로 가야 하는 걸까? 사실 편안한 내 공간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 든다. 좋아했던 것들을 둘러보고 친구들과 직접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들도 좋지만 하루의 끝을 편하게 맺을 수 없다. 집과 가족들로부터 생겨난 물리적 거리는 나에게 조금씩 안정을 가져다주었다. 너무 오랜 시간 외부 환경에서 오는 자극과 불안감이 얼마나 나를 지배하고 있었는지 비로소 집을 떠나고서야 알 수 있었다. 몸에 고스란히 남은 그 불안과 기억은 사라지지 않을 테고 불현듯 찾아오는 그 어두움을 나는 아주 잘 알고 있다. 그걸 극복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고 어떻게 가지고 살아가야 할지 아주 오랫동안 고민하고 찾아야 할 것이다. 어제도 할머니의 밤새 허공에 떠드는 말들에 목소리에 잠을 설쳤다. 노이즈 캔슬링이 되는 이어폰을 귀에 꽂고 유튜브를 틀어두고 자다 깨다를 반복했다. 다른 가족들에게는 이제 더 익숙해진 늦은 밤의 소음. 나는 내 방 침대에 누워서 늘 유튜브를 틀어두고 잠이 들 때까지 보곤 했다. 영상은 계속 재생되다가 아침에 내가 눈을 뜨면 그제야 멈출 수 있었다. 나는 많은 시간을 잠을 청하기 위해 많은 소리를 필요로 했었다. 그 습관이 계속 이어져 온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이유가 있었다는 것은 생각도 하지 못하다 얼마 전에 그 습관을 바꿨다. 한 달 동안 편한 몸으로 일어날 수 있는 날이 며칠이나 있을까. 하지만 여기 있는 시간 동안에 난 스스로에게도 가족 들 게에도 최선을 다해야만 할 것이다. 너무 자책하지는 말자.

작가의 이전글 되고 싶지 않은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하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