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오래된 친구들을 알게 된 지 10년이 훌쩍 넘었고 그 사이에 우리는 함께 보냈던 시간보다 각자 치열하게 살아온 시간이 더 길어졌다. 나이를 먹을수록 오래된 친구가 곁에 있다는 건 감사할 일이다. 우리가 이렇게 오랫동안 사이를 유지할 수 있었던 건 단연코 적절한 거리감이라고 말할 수 있다. 누군가에게는 10년을 훨씬 더 오래 알고 지낸 우리 사이가 그다지 친밀해 보이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 거리감이 우리의 긴 시간을 이어올 수 있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적당히 서로의 고민을 공유하고 지나치게 세세한 서로의 일상은 궁금해하지 않는다. 각자의 생활이 바빠져 그런 탓도 있겠지만 우리는 이전에도 쭉 그래왔다. 그렇다고 해서 서로의 힘든 시간에 위로가 되지 못하는 것도 아니었다. 난 아직도 누구보다도 나를 잘 아는 사람들은 나의 이 10년 넘게 적절한 거리를 유지한 친구들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종종 사람들이 갖는 타인의 대한 지나친 관심에 놀라움과 동시에 이해 불가의 영역을 경험하는 기분이 든다. 도대체 왜 사람들은 이렇게까지 타인에 대해 궁금한 게 많을까? 한국을 떠나 살면서 가장 만족스러웠던 부분은 내가 어떻든 간에 사람들은 궁금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떠올려보자면 한국에서는 늘 내가 어떤 옷을 입는지 살이 쪘는지 나이는 몇 살인지에 대해 궁금해하는 타인의 시선이 존재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을 기어코 말로 내뱉고야 만다. 물론 외국인들 모두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많은 수의 사람들은 일상적인 말들로 타인에 대해 궁금해하지 않는다.
왜 이렇게까지 사람들은 타인의 이야기에 관심이 많은 걸까? 으레 한국인들 사이에서는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도 쉽게 들을 수 있고 그 말들 사이에서 정보도 오간다. 수많은 사람들이 해외에 살면서 한국인들과의 교류를 차단하기 쉽지 않은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타인의 이야기에 대해서 흥미를 유발하는 카테고리들이 왜 없겠냐만은 이것이 개인의 일상에서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는지는 다른 문제라고 생각한다. 개인의 시간에 많은 부분이 타인을 향해 있다면 이것은 뭘 의미하는 걸까? 왜 타인에게만 집중하는 삶을 살고 있는 걸까? 거리를 둔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기도 하고 많은 유연함을 요구하는 일이다. 다른 사람에게 집중하는 에너지의 얼마큼을 나를 향해 있는지 생각해 본다. 나는 이전에 상담을 하면서 처음으로 내가 나 자신과 거리를 유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사실 떠올려보자면 나는 처음 외국으로 나와 혼자 살면서 오롯이 혼자 보낼 수 있는 시간들이 생겼다. 주변의 어떤 방해나 불안 없이 하루하루를 보내다 보니 그제야 내가 보였다. 내가 어떤 상황에서 어떤 감정을 느끼고 어떤 관계들에서 내가 어떤 사람이 되는지를 그제야 보았다. 이전의 나도 나를 들여다보려고 애쓰던 사람이었지만 그게 좀 더 편해진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 거리감을 놓쳤을 때 나는 너무 많이 나를 안쓰러워했다. 스스로의 어두운 한편을 외면하고 살다가 내가 나를 대하는 거리를 놓치는 순간 그곳에 갇혀 버리고 만다. 그걸 겪고서야 비로소 나는 밖에서 들여다보는 것이 나에게 얼마나 필요한 것인지를 알았다. 반면에 나는 타인에 대해 큰 관심을 갖지 않는다. 내가 나를 관망하는 일이 타인보다 나에게 향하는 것이 더 중요한 사람이다.
내가 타인에게 갖는 지나친 관심은 타인에게 비친 나의 모습 즉 타인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것과 동일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필요 이상의 관심을 가질수록 다른 사람들도 나처럼 생각하고 있다는 하나의 착각이 생기는 건 아닐까 싶었다. 얼마 전 친구와 나는 그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는 나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궁금해한다고 말이다. 그것은 나와 같은 여성의 이야기일 수도 있고 사회적 약자, 성소수자 혹은 취약계층등 동시대에 일어나는 다른 삶과 목소리에 대한 것이다. 나와 친구에게 타인의 삶이란 그런 것 들이다. 가까운 누군가의 삶의 사소한 것들이 궁금하기보다 나와 다른 삶의 이야기들이 궁금하다. 이러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문득 사람들이 말하는 보이는 내 일상이 보여줄 것 없어 그래서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 인스타그램을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생각났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일상을 보면서 단순히 그 사람들이 올린 정보값 정도로만 인식하고 있는 것 같았다. 타인의 일상에 대한 지나친 관심은 내 보이는 일상과 연결되는 것이다. 자신에게 적당한 거리감을 두고 집중하는 일은 너무나도 중요한데 말이다. 자신에게 관심을 갖고 때론 집중하는 일은 해외에서 스스로 살아남기에 그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다.
사는 곳이 어디든 권태로움은 늘 찾아온다. 지루한 일상에 작은 숨구멍을 만들어 두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한국을 떠나 살면서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이다. 외부로 눈을 돌리기보다는 안으로 돌리려 한다. 내 감정을 잘 보듬으려고 하고 거리를 두고 왜 그러는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보기도 한다. 권태로움을 이기기 위한 온갖 이유들을 외부에서만 찾을 수는 없다. 그것들도 언제고 고갈되는 것이니까. 외부에서 가져온 자극들은 언제고 익숙해진다. 그럼 우리는 또 따분함을 이길 수 없어 발을 동동 구르게 될 테다. 그럴 때 가장 손쉬운 즐거움은 타인의 일상이다. 고루한 일상이 아닌 타인의 드라마를 우리는 가장 좋아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러다 보면 아차 싶은 순간이 온다. 계속해서 남만 쫓고 있으니 말이다. 고루한 일상을 견디는 힘을 만들어야 지속가능한 사소한 일상들이 힘을 얻는다. 종종 너무나도 우울했던 시간을 떠올려보면 그때의 나는 어느 무엇 하나도 집중하기 힘들었다. 그때의 어려움을 알기에 나는 아차 싶은 순간에 그 시간들을 떠올려보곤 한다. 권태로움을 달랠 수 있는 숨구멍을 만드는 일을 나는 내 방앗간을 만드는 거라고 말한다. 지나칠 수 없는 방앗간들이 있어야 종종 그곳에서 즐거워하고 무언가에 몰두할 수 있다. 그렇게 일상을 다져나가는 힘이 아주 조금씩 쌓인다.
생각보다 나는 나 스스로가 자각하지 못했던 몰랐던 부분이 많았다고 느낀다. 물론 지금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타인과 나에게 거리감을 두고 지내는 것. 그것은 항상 잊지 말아야 할 부분이다. 굳이 남의 일을 궁금해하고 즐거움을 찾으면서 인간 위키피디아가 될 이유는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