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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rin Nov 24. 2022

어쩌다 알게 된 사람들

사람을 만날 때도 우연히 만나는 건 없어 <황푸하, 클래식 중에서>

파자마 니팅 클럽을 시작하고 게으른 취미가 생겼다. 이제야 뭐 좀 만들 수 있겠다 싶어 졌을 때 한창 신이 났었다. 쉬는 날 날씨는 좋은데 방에서 밀린 글을 쓰자니 영 손에 잡히지 않아 근처 카페로 나갔다. 이전에 같이 사는 친구와 갔던 카페였는데 커피 맛이 좋아 그리로 향했다. 대부분의 손님들이 테이크 아웃을 하는 작은 가게라 편하게 자리를 잡고 앉을 수 있었다. 한참을 타닥타닥 글을 쓰다 핸드폰을 보다 그렇게 시간이 좀 지났을 무렵 맞은편 테이블에 손님이 앉았다. 그러더니 가방에서 코바늘과 실을 꺼내는 것이 아닌가. 얼핏 고개를 들어 보니 모자를 뜨고 계신 거 같았다. 몇 번 힐끔힐끔 보면서 말을 건네 보고는 싶은데 하면서 말은 걸지 않았다. 그렇게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답답한 마음을 토로한 뒤 나는 하던 일을 계속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커피를 사러 온 중년의 손님이 그 손님에게 말을 걸었다. 만들고 있는 모자를 관심 있게 보더니 자신도 코바늘을 할 줄 안다면서 제법 반갑게 인사를 하고 가셨다. 낯선 사람의 인사를 반갑게 받아주는 그 손님을 보면서 왜인지 말을 걸 수 있을 거 같았다. 한국인 같았지만 아닐지도 모르니 영어로 말을 걸었다. 내 인사에도 반갑게 대답을 해주시곤 우리는 짧게 대화를 나눴다. 그리고 나는 다시에 자리에 앉아하던 일을 하려고 하는데 그분이 다시 말을 걸어왔다.

“ 혹시 한국분이세요?”

나는 놀라서 맞다고 대답을 했다. 그렇게 우리는 반가운 동지라도 만난 것처럼 한국어로 이야기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덕분에 뜨개질 고수인 다른 한국인의 인스타를 소개받았고 그렇게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누가 들으면 내가 제법 사교적이고 외향적이라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사실 다소 내향적인 사람이며 종종 이런 면모가 발휘되는 것뿐이다. 나는 이렇게 어쩌다 알게 된 사람들이 많다. 카페에서 손님으로 오던 분 혹은 여행지에서 만난 게스트 하우스 스탭, 여행지에서 만나 번역기를 돌려가면서 대화하던 덕질 친구까지. 참 재밌는 기억이며 발달된 문명은 우리가 랜선으로도 연락하고 지낼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안녕 한마디 나누고 헤어질 수 있었던 우리를 이어주는 온라인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참으로 신기한 것이 어쩌다 만난 이런 사람들이 결국은 같은 결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된 거 가장 기억에 남는 일화를 얘기해보자면 일본 여행에서 만난 흔히 말하는 덕질 메이트이다. 당시에 나는 일본 아이돌을 좋아해서 그 해 내 일본 여행은 제법 다른 방향으로도 가고 있었다. 이전에도 일본 여행은 종종 갔었지만 대부분 전시라던지 서점이라던지 좋아하는 공간들을 돌아보며 시간을 보냈었다. 하지만 당시 일본 여행의 일정에서는 덕질을 위한 일정이 추가되었다. 굿즈를 사겠다고 아침 일찍 출근길 지하철을 타고 도착한 그곳은 이미 줄이 길었다. 아직 초보 덕질을 하고 있던 나는 놀랐지만 서둘러 줄을 섰다. 긴 줄이 여기가 맞는 건지 두리번거리다 앞에 서있는 여자분에게 말을 걸었다. 일본어를 할 줄 모르는 나는 번역기를 사용해 질문을 했고 그분은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마침 그분도 혼자 왔던 상황이라 이렇게 말을 트고 나니 계속 이야기가 오갔다. 역시 어딜 가나 덕질로 시작한 대화의 친밀도란 놀랍도록 빠르게 상승한다. 각자 다른 그룹을 좋아했지만 역시 같은 소속사 그룹이라서 서로의 최애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그분은 자신의 최애를 나에게 영업했다. 물론 나는 그 영업에 성공적으로 넘어갔다.

번호표를 받고 근처 카페에서 같이 기다리다 우리 차례가 되어서 굿즈샵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트위터 아이디를 교환하고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샵에 들어가 정신없이 사진을 고르고 뒤를 돌아보니 계산 줄이 이미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길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덕질 초보자인 나는 이런 상황을 전혀 예상하지도 정보를 찾아보지도 않았기에 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가고 싶었던 식당을 예약해뒀기 때문이다. 도저히 줄은 줄어들 기미조차 안보였고 계산대조차 보이지 않았다. 급하게 식당까지 가는 시간을 체크해보니 아! 큰일이다.. 싶었다. 그러다 나는 불현듯 방금까지 번역기로 얘기를 나눈 그 동지가 떠올랐다.  나는 번역기에 내 사정을 설명하는 글을 쓰고 복사해 디엠을 보냈다. 다행히 그 친구는 흔쾌히 내 부탁을 들어줬다.


제 굿즈를 계산해주세요! 예약해둔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돌아와 돈을 드릴게요!

사실 처음 본 사람이 다시 올지 안 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이런 부탁을 하는 나도 참 염치가 없었지만 부탁할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안도감이 느껴진 건 사실이다. 그렇게 긴 줄을 헤치고 저 앞에 있는 그 친구에게 내가 계산할 물건을 부탁하고 나는 서둘러 역으로 갔다. 가면서도 늦을 거 같다고 연락을 하고 도착해 한참을 뛰고 걷고를 반복해 식당에 도착했다. 덕분에 나는 예약한 식당에 갈 수 있었고 식사를 마치고 서둘러 되돌아갔다. 만나기로 한 곳에서 만나 와플을 파는 카페에 갔다. 너무 감사한 마음에 디저트를 대접했다. 우리는 카페에 앉아 한참을 번역기를 사용하여 이야기를 나눴다. 생각해보면 둘이 앉아서 말 한마디 없이 핸드폰으로만 얘기하고 웃고 떠드는 게 좀 이상해 보일 수 있다는 생각은 나중에서야 들었다. 그렇게 사진을 손에 쥐고 얼마나 행복했던지. 나의 구세주가 되어 준 그 친구에게 아직도 감사하다. 아직도 내가 덕질을 하고 그 친구와 연락을 한다면 좋겠지만 이제 나의 덕질은 먼지같이 남았고 그 친구의 계정이 아직도 활동 중인지 모르겠다. 황푸하의 새로 나온 노래를 들으면서 문뜩 지나간 시간들이 생각났다. 정말로 우연히 만나는 건 없을지도 모르겠다. 비슷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는 건 참으로 즐겁고 신기한 경험들이다. 누가 알았을까 카페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과 그 사람이 소개해준 다른 친구와 모여서 뜨개질을 하게 될 줄이야.

그리고 더 좋은 건 같이 영화를 보고 이야기를 나누고 책 읽기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얼마 전에 헤어질 결심을 봤다. 이 좋은 영화를 보고 이 영화가 얼마나 좋은지 예찬할 수 있는 사람을 이곳에서 만났다는 것은 나에게는 행운과 같다.

얼마 전 산행에서 서래가 자꾸 생각났다는 얘기에 남편을 죽이러 산을 올라가는 서래처럼 올랐어야 한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라니. 우연이랄 게 없다면 우리는 꾸준히 무언가를 좋아하고 좋아하다 보면 그걸 같이 좋아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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