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묵호의 아름다움에 관해 처음 이야기를 꺼낸 것은 오래전에 좋아하던 어떤 미인이지만, 오늘 묵호에 온 것은 꼭 그런 옛날의 일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때 미인은 내게 '우리는 서로를 찾아 헤맬 수는 있겠지만 마지막에 잠겨있는 문은 아마 끝내 열지 못할 거야'라는 말을 남겼다. 그리고 나는 그 말을 아직까지 버리지 못해 짊어지고 묵호에 왔다. 뿐만 아니라 내가 좋아하던 어떤 이의 느릿한 걸음이나 나른한 목소리나 다정한 말씨 같은 것도 내게 남아있다. 그리고 나는 그 맵시 또한 아직까지 버리지 못해 떠안고 묵호에 왔다. 술 몇 병 손에 들고, 그리고 사랑하는 이의 손을 살며시 당기며 묵호에 왔다.
저녁을 먹고 나서는 묵호의 숙소에 둘러앉아 여러 이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밤은 많은 이야기를 싣고 흘러갔다. 묵호의 겨울밤은 더 길었고 우리가 홀로 껴안고 있었던 이야기도 서로에게 더 많이 흘러갔다. 슬픈 이야기가 흘러가면 슬픈 이가 둘이 되고, 웃긴 이야기가 흘러가면 우스꽝스러운 이가 둘이 되었지만, 위로해 줄 이도 둘, 웃는 이도 둘이 되는 것이었다. 우리의 이야기가 묵호의 겨울처럼 깊어 가는 것이기도 했다. 나는 다만 어떤 이야기가 흘러가든 쓸쓸한 이가 둘이 되는 일은 없기를, 사랑하는 이는 여럿이 되기를 바랐다.
다음날은 해돋이를 보기 위해 이른 새벽에 눈을 떴다. 그러나 서광이 밝아옴에도 구름 때문에 해가 보이지 않았다. 나는 해가 보이지 않는 어달항으로 나가서 파랑에 부딪히는 사람처럼 거닐다가, 나처럼 비틀거리며 돌아다니는 개들을 만났다. 이곳 묵호는 그렇게 누워있거나 어슬렁 거리며 돌아다니는 개들이 많았다. 그러나 그 개가 먼저 사람에게 다가와 꼬리를 흔들어주는 일은 없었다. 나도 구태여 개들을 부르며 머리를 쓰다듬는 일을 하지 않았다.
그러다, 사람에게 꼬리를 흔들지 않고 그저 제 갈 길을 가는 묵호의 개들이나, 함부로 해를 보여주는 일 없이도 동이 터오는 묵호의 바다처럼 나도 그냥 지금 해야 할 일들을 하기로 했다. 내가 묵호에서 빌었던 새해 소원과는 달리 앞으로도 나는 몇 번은 더 슬프겠지만 그래도 내일 말고 오늘 사랑하기로 했다.
돌아가는 기차를 타는 곳 앞엔 저 끝까지 철길이 놓여있었다. 우리가 지나온 먼 길, 서울에서 동해로 이어지는 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