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묵호의 아름다움에 관해 처음 이야기를 꺼낸 것은 오래전에 좋아하던 어떤 미인이지만, 오늘 묵호에 온 것은 꼭 그런 옛날의 일 때문만은 아니었다.
우리는 서로를 찾아 헤맬 수는 있겠지만 마지막에 잠겨있는 문은 아마 끝내 열지 못할 거라던 말을 짊어지고, 내가 좋아하던 어떤 이의 느릿한 걸음이나 나른한 목소리나 다정한 말씨 같은 것을 떠안고, 술 몇 병 손에 들고, 그리고 사랑하는 이의 손을 살며시 당기며 묵호에 왔다.
밤은 많은 이야기를 싣고 흘러간다. 묵호의 겨울밤은 더 길어서 우리가 홀로 떠안고 있었던 많은 이야기가 서로에게 흘러갔다. 슬픈 이야기가 흘러가면 슬픈 이가 둘이 되고, 웃긴 이야기가 흘러가면 우스꽝스러운 이가 둘이 되었지만, 위로해 줄 이도 둘, 웃는 이도 둘이 되는 것이었다. 우리의 이야기가 묵호의 겨울처럼 깊어 가는 것이기도 했다.
나는 다만 어떤 이야기가 흘러가든 쓸쓸한 이가 둘이 되는 일은 없기를, 사랑하는 이는 여럿이 되기를 바랬다.
사람에게 꼬리를 흔들지 않고 그저 제 갈 길을 가는 묵호의 개들이나, 함부로 해를 보여주는 일 없이도 동이 터오는 묵호의 바다처럼 나도 그냥 지금 해야 할 일들을 하기로 했다. 내가 묵호에서 빌었던 새해 소원과는 달리 앞으로도 나는 몇 번은 더 슬프겠지만 그래도 내일 말고 오늘 사랑하기로 했다.
돌아가는 기차를 타는 곳 앞엔 저 끝까지 철길이 놓여있었다. 우리가 지나온 먼 길, 서울에서 동해로 이어지는 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