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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나 미친년 아니고 아픈 년이야

by A록


나에게는 발목까지 내려오는 아주 아주 긴 패딩이 있다. 오리털도 거위털도 아닌 솜패딩이라 해가 갈수록 얇아진 검은색 패딩. 나에게 그 패딩은 겨울용이 아니라 사계절용이었다. 여름에 그 패딩을 입고 있으면 사람들이 덥지 않냐고 물어봤다. 그럼 나는 더워서 죽을 것 같다고 대답했다. 그런데 왜 입고 있냐고 물으면 류마티스 관절염이라 에어컨의 찬바람을 쐬면 아프기 때문에 입고 있다고 말했다.

긴 팔 가디건 같은 걸 입으면 안 되냐는 사람도 있었다. 가디건? 구멍 숭숭 뚫린 가디건? 상체만 가려주는 그 가디건? 택도 없다. 바람 한 점 들어가지 못할 만큼 두껍고 발목까지 내려올 만큼 긴 패딩이어야만 한다. 미술관을 가든 공연을 보든 실내에 들어갈 땐 무조건 그 패딩으로 몸을 감쌌다. 밖에서도 바람이 좀 분다 싶으면 손에 들고 있던 패딩을 지체 없이 두르고 지퍼를 쭉 올렸다. 내가 살고 있는 제주도는 바람이 인정사정없이 부는 곳이라 그 바람을 몇 분만 맞고 서있어도 에어컨 효과가 난다.


찬바람을 맞은 후에 손가락, 손목, 무릎, 발목 관절 사이사이에 날카로운 칼이 쑥쑥 꽂히는 통증 때문에 괴로움에 몸서리치게 되는 것에 비하면 패딩 안에서 흐르는 땀을 견디는 것은 가소로운 수고였기에 나는 투병 기간 5년 중에 3년 동안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날이 맑으나 날이 흐리나 그 패딩을 갑옷처럼 입고 다녔다.


그중 마지막 해의 어느 여름날, 쑥뜸원 할머니 중에 한 분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 그거 아직도 입고 다니냐? 누가 보면 미친년인 줄 알아~ 이 한 여름에~ 머리에 꽃 하나만 꽂으면 딱이다!”

거기에 모여 있던 할머니들이 그 말을 듣고 다 같이 금니 은니가 훤히 다 보이도록 웃어재꼈다.

“아하하하하하하!”


웃음소리가 화악 터졌다가 다시 잠잠해질 때까지 나는 웃지 않고 가만히 서있었다. 뭔가 굉장히 기분이 나쁜데 무슨 말을 해야 될지 몰라 찾고 있었다. 생각이 났고 그 말을 했다.

“할망, 나 미친년 아니고 아픈 년이야.”

“뭐? 아하하하하하하하! 맞지, 맞지, 아픈 년이지.”

할머니들은 내가 겁나 열 받은지도 모르고 또 웃어재꼈다. 그래서 한마디 더 했다.

“아는 사람들이 더 해 아주. 놀려먹을 걸 놀려 먹어. 내가 이걸 입고 싶어서 입어? 다른 사람들이 쟤 미쳤냐고 하면 안 미쳤다고 말해줘야 할 사람들이 이러면 안 되지~!!!”

“아이고, 알았어 알았어! 미안해!”

나는 대충 사과를 들었고 겨우 마음을 가라앉혔다.

절뚝거리는 걸음에 마른 몸과 얼굴, 날씨에 맞지 않는 롱패딩을 입고, 담배 냄새 같은 쑥 냄새를 늘 풍기고, 어린 여자아이 두 명(딸 둘)까지 붙이고 다니는 나였다. 그래서 어딜 가나 사람들의 시선이 나에게 꽂혔다.


‘불쌍하다.’

‘왜 저러고 다니지?’

‘어디 아픈가?’

‘많이 아픈가?’

‘장애인인가?’

‘어쩌다가 저렇게...’

'애들이 안 됐네...’

‘혹시 미친 사람인가?’

라고 말하는 것 같은 표정으로 나를 위아래로 훑으며 한참을 본다. 내가 시선을 떼기 전까지 나를 뚫아져라 본다. 처음에는 그런 시선들이 낯설고 당황스럽고 싫어서 사람들을 피했는데 나중에는 이렇게 사람을 피하다가 정신까지 병들겠다 싶어서 최대한 무시하고 다녔다. 그러다가 점점 사람들의

얼굴을 쳐다보지 않았다. 그들이 보내는 무언의 혐오와 배제와 놀람과 연민의 메시지에 영향을 받고 싶지 않아서였다.


나는 한 명이고 나를 쳐다보는 얼굴은 수십 개. 길을 걷는 내내, 횡단보도를 걷는 내내 그 수십 개의 얼굴들이 보내는 메시지를 받아내야 한다. 다 아는데, 내 처지와 상황을 알고 나도 내가 불쌍한데 그걸 꼭 확인시켜야 하나?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훑어보며 쯧쯧쯧 혀를 차 줘야 직성이 풀리나?


애석하게도 아프기 전의 내가 지금의 나처럼 다리를 절뚝거리고, 정상 범위보다 마르거나 뚱뚱하고, 옷을 좀 다르게 입은 사람들을 어떻게 판단하며 쳐다봤나 생각해보면 지금 나를 쳐다보는 그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별생각 없이 시선을 고정하고

‘뭐야?'

'어머!'

'위험한 사람 아니야?’

라고 생각했다. 그와 눈이 마주치고 그가 내 표정을 봤더라도 별 신경을 안 썼다. 그가 내 표정을 읽고 내 표정 때문에 힘들어할 거라고는 생각을 못 했기 때문에.








'아픈 몸으로 사는 것에 대한, 의존에 대한, 돌보고 돌봄을 받는 것에 대한, 관계에 대한, 존엄에 대한 이야기들이 부족하다. 나이 들면 달라지는 몸의 기능과 질병에 대한 관심은 제도 마련이 아니라, 불편한 몸으로 아프면서 사는 것, 견디는 것에서 시작된다. 낯설고, 종종 불가능해 보이는 이 시간을 어떻게 이해하지? 어떻게 살아내지? 무엇이 나를 견디게 하지? 누구 덕분에, 누구와 함께 견디며 통과하는 거지? 이런 질문들에서 시작된다. 제도적인 것이 해결되어도 남아있는 몸의 고통, 노동이나 윤리적 다짐만으로는 다 설명되지 않는 돌봄의 복잡함들, 살이 있음이나 인간다움 등에 대한 깊고 통렬한 질문들, 이런 것들을 생략하지 않고 온전히 이해하겠다고 붙잡고 버티는 태도는 진정한 관심과 용기가 있어야 가능하다. 그런데 사회 과학적 진단과 복지적 대책 마련의 기능주의가 정책 리스트에 기입하는 '00 위기' 논의에서 가장 먼저 삭제되는 것이 바로 이것들이다. 역설이 아닐 수 없다.' [새벽 세 시의 몸들에게] 15쪽, 김영옥

내 몸이 아프고 나서야 보이는 우리나라 문화의 낮은 현실이다.

나는 아픈 년을 미친년으로 보지 않는 사회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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