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나는 부모님 집으로 갔다. 내가 결혼하기 전까지 몇 년을 부모님과 같이 살던 집. 남편과 아이들을 오빠 집에 가있도록 조치를 취해놓았다.
오빠는 내 어깨를 살짝 잡았다. 응원의 메시지로 해석했다. 오빠에게는 미안하지만 나는 그날 강약을 조절할 마음이 없었다. 나는 집으로 들어가자마자 부모님에게 말했다. 할 말이 있으니 소파에 좀 앉아보시라고. 두 분은 잔치를 치른 후라 다소 피곤한 얼굴이었다.
“행복해?”라고 내가 물었다.
“행복하지~”아빠가 대답했다. 이어지는 나와 아빠의 대화다. 엄마는 그저 소파에 앉아 한 손에 찻잔을 들고 맞은편에 앉아 말하고 있는 나를 보고 있었다.
“행복할 자격이 있어?”
“자격이라니? 그게 무슨 말이고?”
“내가 왜 아픈 거 같아?”
“병 때문에 아픈 거지.”
“아니, 엄마 아빠 때문이야. 어렸을 때 뒤지도록 맞은 기억, 마음의 상처 때문에 몸까지 병든 거라고.”
“니 지금 그게 무슨 말이고?”
“엄마가 겨울에 오빠랑 나를 다 벗겨서 쫓아냈을 때 지하실에서 떨고 있는데 아빠가 와서 슬리퍼만 주고 갔던 거 기억 나?”
“기억 안 난다.”
“기억도 안 나? 너무 사소했나 보지?”
나는 아빠가 그 일을 당연히 기억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당황스러운 마음을 안고 엄마를 바라봤다. 보기 싫었지만 똑바로 바라봤다.
“엄마는 왜 그렇게 우리를 많이 때렸어? 내가 여섯 살, 일곱 살이었으니까 정말 어리고 작은 몸인데 그걸 그렇게 때리고 싶어?”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가해자에게 죄를 물었다. 엄마는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내가? 어머나, 진짜? 나는 기억이 안 나는데.”
나는 어이가 없어서 잠시 엄마를 노려봤다. 이들과 말도 섞기 싫어졌다. 하지만 거기서 끝낼 순 없었다.
“아빠는 몰랐어? 우리가 엄마한테 많이 맞은 거?”
“몰랐다. 언제 그랬노?”
“내가 여섯 살 때부터 고1 때까지. 아빠가 출근할 때 쓰는 그 구둣주걱으로 온몸에 멍이 시퍼렇게 들도록 팼어. 뺨도 사정없이 때리고. 오빠가 봉헌금으로 오락실에서 오락했다고 손가락을 도마에 올려놓고 자르려고도 했어.”
그 일이 25년도 더 지난 후에야 아빠에게 이르며 목소리가 사정없이 흔들렸다. 진작에 했어야 할 고발인데 그때는 너무 무서워서 입 밖에도 내지 못하고 하루빨리 잊으려고만 했다.
“뭐라고? 당신 와 그래 애들을 때렸노? 너무 오랫동안 와 그랬노... 참.... 아이고야...”
아빠는 마음이 몹시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나는 말을 계속 이어갔다.
“아빠는 죄가 없을 거 같아? 아빠가 우리한테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었다면, 우리 몸에 든 멍을 봤더라면, 어땠을까? 아빠도 공범자야. 아빠도 죄인이라고.”
“그래, 미안하다...아빠가 너무 바빠서 느그한테 신경을 못 썼다. 아빠가 엄마를 말렸어야 되는데 진짜 미안하다...아빠 책임이 크다. 미안하다...”
처음 듣는 사과였다. 녹음기를 켜고 대화를 시작했어야 한다는 생각이 그 순간 들었다. 천 번이고 만 번이고 반복해서 듣고 싶은 미안하다는 말이었다.
힘을 내어 엄마를 바라보고 말했다. 울기 싫었지만 내 의지와 다르게 눈에서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내가 애들을 키워보니까 더 잘 알겠어. 제정신이 아니고서야 내가 낳은 애들을 그렇게 때릴 수가 없어. 엄마는, 제정신이 아니었어.”
“기억이 안 나서 미안하다. 그런데 나도 그때 너무 힘들었다. 아빠는 일 때문에 바쁘니까 내 혼자 느그들을 다 키우는데 니가 얼마나 많이 우는지. 기저귀를 갈아주다가 집어던진 게 한두 번이 아니다. 니는 울음을 그치질 않고 내를 이겨보겠다고 끝까지 우는데 사람이 돌아 삐는 기라. 진짜 앙칼지게 울었다. 지금 생각해도 아이고, 진짜......”
엄마는 몸서리를 치며 그때를 회상하는 눈치였다. 나는 엄마가 말하는 그 아기가 내가 아니길 나도 모르게 바랬다. 몸에서 힘이 쫙 빠지는 기분이었다. 엄마는 아마 그 시절에 산후우울증을 앓은 것 같았다. 다시 정신을 가다듬고 말했다.
“아기가 우는 게 엄마가 필요해서 우는 거지, 어떻게 엄마를 이겨보겠다고 우는 거야. 그 어떤 변명도 엄마가 우리를 때린 이유가 못 돼. 알지? 아동학대, 가정폭력. 그거 범죄야. 지금 같으면 엄마 감방 갔어. 내가 판사였으면 엄마는 무기징역이야.”
그리고 제일 하고 싶었지만 제일 하기 힘들었던 말을 시작했다.
“내가 초등학교 2학년 때, 지나가던 아저씨가 공사 중인 슈퍼마켓 안을 좀 보여달라고, 보여주면 500원 주겠다고 해서 따라갔다가 성추행당한 날. 집에 와서 엄마한테 그 얘기했을 때 엄마가 어떻게 한 줄 알아?”
눈물이 끝없이 흘렀지만 마음만은 차분했다. 이 말을 끝까지 하고 싶다는 욕구가 휘몰아쳤다.
“아무 말도 안 했어. 그리고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어. 그만해. 그만 말해... 나를 쳐다보지도 않았어. 그저 이 일은 수치스러운 일이고 니가 입을 다물어야만 한다고 온 몸으로 나한테 말하고 있었어. 그래서 나는 그 비밀을 혼자 가지고 살았어. 어린아이가 혼자, 그 힘든 기억을 가지고 살았다고... 왜냐하면 엄마가 입을 막았으니까. 알아? 당신이 날 두 번 죽인 거야...!”
입술이 달달 떨려서 눈을 꼭 감고 잠시 숨을 고르며 진정했다. 그리고 다시 말을 이어갔다.
“내가 딸 둘을 키우면서 그때 엄마의 표정이 얼마나 자주 생각이 났는지 알아? 엄마가 딸에게 어떻게 그럴 수가 있었을까, 그 사람은 도대체 왜 그랬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됐어. 너무너무 원망스럽고 화가 나고 미웠어. 엄마가 딸에게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 안아주고 위로해주고 그 개 같은 새끼를 욕해주고 당장에 신고했어야 되는 거잖아!!! 도대체 왜 그건 거야, 어?!”
아빠는 많이 놀란 눈치였고 엄마는 대답을 했다.
“나는 내가 아무 말도 안 하면 없는 일이 될 줄 알았어......”
엄마는 그날 일을 기억하는 것 같았다. 제기랄, 다른 건 다 까먹어도 그런 엿 같은 상황은 기억을 하는구나 싶었다.
“뭐? 그런 이기적인 생각이 어디 있어~ 엄마한테만 없는 일이 되는 거지, 어떻게 그게 나한테도 없는 일이 되냐고... 아.... 진짜.... 아아....!”
나는 더 심한 욕을 하고 싶었지만 눈을 크게 뜨고 눈물이 그렁그렁 고인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빠르게 화를 억눌렀다.
“엄마가 미안하다......”
“당연히 미안해야지. 당연히!!! 엄마는 나한테 너무 많은 상처를 줬어.”
“그래도, 용서해라 너를 위해서. 나도 주님께 용서를 구할 테니까.”
나는 엄마가 이딴 말을 할 줄 알았다. 종교밖에 모르는 인간이라 주님을 몇 번 찾을 줄 알았고 이런 어이없는 말로 나를 열 받게 할 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 타이밍은 너무 이르다고 생각했다.
“미안하다는 말 한 번 해놓고 바로 용서하라고 하면 용서가 되겠어? 엄마가 나를 괴롭힌 게 몇십 년인데 지금 바로 용서가 되겠냐고. 말 좀 가려하자 제발.”
그런데 한편으로는 안심이 됐다. 오빠가 우려하는 상황은 생기지 않을 것 같아서. 엄마는 내 이야기에 쓰러질 정도의 타격을 받을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 말할 걸. 나는 엄마가 뇌염으로 쓰러진 후로 엄마가 정신적으로 충격을 받으면 또 상태가 나빠질까 봐 나의 속 이야기를 거의 못 하고 살았다. 괜한 걱정이었구나 싶어 코웃음이 났다. 아빠는 잠깐 담배 한 대 피우고 오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엄마가 또 어떤 헛소리로 내 속을 뒤집어 놓을지 겁이 났다. 엄마는 늙고 작고 힘이 없지만 여전히 제정신이 아니어서 무서웠다. 다행히 아빠는 금방 돌아와서 앉았다.
“아빠가 정식으로 사과할게. 가장으로서 가정을 못 지킨 아빠의 책임이 제일 크다. 생각이 났어. 느그한테 슬리퍼 갖다 준 거. 느그 엄마가 니들 키우면서 너무 힘들어했다. 죽고 싶다는 말도 자주 했고. 우울증 같은 게 왔던 거 같애. 그래서 내가 느그 엄마를 건드리지를 못 했다. 뭐라고 말만 조금 거슬리게 해도 화를 팍 내고 그랬으니까. 아빠가 엄마 눈치 보느라 느그를 보호해주지 못했다. 미안하다 정말. 그런데 그 정도인 줄은 생각도 못 했다. 정말로 미안하다.”
그날 대화의 가장 큰 성과는 아빠에게 사과를 들은 것이었다. 그리고 엄마는 여전하다는 것을 확인했으니 이제는 말을 걸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내가 이렇게 대놓고 가해자에게 죄를 묻고 나에게 가장 힘들었던 기억을 말로 한 이유는 낫고 싶어서였다. 이 거대한 마음의 짐을 덜어야 내 몸이 나을 것 같아서였다. 대화가 끝나고 제일 처음 든 생각도 이거였다.
‘나 이제 나을 수 있겠다.’
아빠의 무거운 표정 때문에 마음이 좋지는 않았지만 내 마음의 가장 깊은 곳에서는 환호성을 지르고 있었다. 너무나 홀가분했다. 그런데 마음 한쪽 귀퉁이가 왜인지 모르게 몹시나 슬펐다. 나는 아무도 없는 공간에 들어가 쪼그리고 앉아 얼굴을 무릎에 파묻고 실컷 울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