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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숨도 제대로 쉴 수가 없어 눈물만

by A록


어느 날 아침, 가슴 가운데 뼈가 너무 아파 움직일 수도 숨을 제대로 쉴 수도 없었다. 숨을 쉬면서 오르락내리락하는 작은 움직임만으로도 뼈들이 우드득 부러질 것처럼 아파서 얕은 숨을 겨우 쉬며 누워서 집 안 어딘가에 있을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말을 하면 호흡이 더 가빠져서 입을 열 수도 없었다. 놀라서 달려온 남편을 보고 눈물을 뚝뚝 흘리며 손가락으로 가슴 가운데 쪽을 가리키며 입모양으로 “아파...”라고 했다.

“많이 아파? 갑자기 왜 여기가 아프지? 빨리 병원을 가자.”

남편이 나를 일으키려고 몸에 손을 대는 순간 나는 가슴뼈에 전해지는 통증에 놀라 이상한 소리를 내며 신음을 했고 그런 나를 보며 남편도 놀라 손을 치웠다.

“살살...!”이라고 아주 작은 목소리로 남편에게 얘기를 해서 남편은 아주 천천히 나를 일으켜서 앉게 했고 나는 겨우 앉아 팔을 들어 가슴뼈를 덮고 있는 옷을 풀어헤쳤다. 얇은 옷 한 장도 뼈를 아프게 했다. 멍이 들었나 싶어 쳐다보니 피부는 멀쩡했다.


‘이게 뭘까... 어떻게 해야 할까...’ 잠시 고민을 하다가 일단은 진단을 받으러 가자 싶어 남편과 차를 타고 제주시에 있는 큰 병원으로 갔는데 차를 타러 걸어가고, 앉고, 도로 위를 달리는 차의 일정하지 않은 꿀렁거림을 견디느라 나는 거의 반은 죽은 상태로 병원에 도착했다. 의사 선생님은 나를 보더니 정말 최악의 경우는 골수암까지 의심해볼 수가 있다고 하며 MRI, CT촬영까지 해보자고 하셨다. 그리고 통증의 정도가 너무 심하니 입원을 하고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게 어떻겠냐고 하셨다.

‘골수암이라니... 류마티스 관절염도 힘들어서 죽을 맛인데 골수암이라니... 그럼 정말 죽을 수도 있다는 거야? 애들은 어쩌고...’ 눈앞이 캄캄해졌다. 배시시 웃는 두 아이의 얼굴이 자꾸만 떠올라 가슴이 미어지는 것처럼 아팠다. 온몸으로 퍼지기 시작한 통증이 관절들을 들쑤셔서 점점 몸을 움직이기가 힘들어졌고 이 상태로 입원을 하면 남편이 꼼짝없이 나의 모든 수발을 들어야 하는데 아이들을 맡길 곳이 없었다. 검사만 받고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CT촬영 때 혼자 앉지도 눕지도 못 해서 남편이 아주 천천히 나를 앉히고 눕혔는데 손목과 팔꿈치와 어깨 관절 통증이 너무 심해 팔을 움직이기가 힘들어서 두 팔을 위로 올리는 자세를 하는 것도 지옥이었다. 그런데 간호사가 무심코 내 팔을 더 위로 올리려고 잡았고 나는 갑작스러운 통증에 “으아악!”소리를 질렀다. 간호사가 깜짝 놀라 뒷걸음질을 치며 왜 그러냐고 물었는데 나는 통증 속에서 허덕이느라 대답조차 할 수가 없었다.


작은 움직임 하나하나가 다 고통스러웠고 숨 쉬는 것 마저 괴로웠다. 검사 때문에 방사선에 노출된 나는 하루 정도 아이들과 접촉을 피해야 했는데 내 방에 비스듬히 기대앉아 방문을 조금 열어놓고 아이들의 소리를 들으며 눈물만 주룩주룩 흘렸다. 아이들은 엄마를 멀리서만 보겠다고 내 방 문을 좀 더 열어달라고 아빠에게 부탁하더니 아픈 엄마를 위로하려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췄다. 마음이 너무 아프고 미안하고 고마워서 끙끙거리며 눈물을 흘리면서도 눈과 입으로 한껏 미소를 지어 아이들에게 화답했다.


머리카락이 얼굴을 가려도 팔을 들 수가 없어 입으로 후! 후! 바람을 불어 눈만 겨우 보이게 했고 화장실에 가서도 바지를 내릴 수가 없어 남편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사람이 이 정도로 무력해질 수가 있구나. 이렇게 기능을 상실한 몸으로 남의 손을 빌어 먹고, 싸고, 자면서 생을 이어나가야 한다는 건 정말 불편하고 미안하고 싫은 일이다.’ 싶었다.

얕은 숨을 아주 힘들게 쉬느라 완전히 눕지도 못 하고 앉아서 잠을 잤는데 자다가 몸이 아래로 밀려 내려가 눕게 되면 다시 일어날 수가 없었다. 일어나려면 몸에 힘이 들어가는데 그러면 가슴뼈에 통증이 너무 심해졌다. 최대한 통증을 줄이면서 일어나는 방법은 아주 아주 천천히 몸을 일으키는 건데 누운 자세에서 약간 앉은 자세로 바꾸는 데만 40분이 걸렸다. 겨울이었지만 땀이 줄줄 흘렀다. 그렇게 한참을 낑낑거리며 겨우 몸을 일으키고 있는데 어느 날 아침 남편이 내 방 문을 열고 나를 보더니 “그냥 누워있어~”라고 했다. 귀찮다, 지친다는 말투처럼 들렸다.


머리카락으로 얼굴을 다 가린 나는 힘들고 아파서 고개를 들지도 못 하고 소리쳤다.

“화장실 가고 싶단 말이야! 씨발!!!”

그리고선 가슴뼈 통증 때문에 오만상을 쓰며 신음을 했다. 그제야 남편은 나를 천천히 일으켜 화장실에 데려다주었고 바지를 내려주었다. 간병도 힘들겠지. 24시간 수발하는 것이 왜 안 힘들겠나. 애들까지 돌봐야 하니 더 힘들겠지. 안다. 아는데! 알지만! 그래도 서운했다. 화가 났다. 손을 쓸 수 없어 한 대 때리지도 못 하고 유일하게 힘이 있는 눈으로만 그를 뚫어버릴 듯이 쏘아봤다.

병원 결과는 다행스러웠다. 류마티스 관절염의 동반 증상이거나 ‘담’이온 것 같다고 했다. 담이 이 정도로 강력하다고? 나는 놀랐지만 주변에서 가슴뼈에 오는 담은 숨을 못 쉴 정도로 아프다며 아마도 담일 거라고 했던 기억이 났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아프기 이틀 전에 무거운 장바구니를 팔꿈치에 끼고 몇 걸음 걸어 차에 실었는데 그때 가슴뼈를 둘러싼 근육에 무리가 간 것도 같았다.


쑥뜸원 사람들은 담 진단을 받고 온 나를 보고 웃으며 박수를 쳐줬다. “거봐, 골수암 아닐 거라니까~”라고 했다. 아무리 아파도 쑥뜸원에 가면 별게 아닌 게 된다. 왜냐하면 거기는 다들 아프니까. 나보다 통증은 덜 해도 더 무서운 병명을 가진 사람들이 있으니까. 그래서 미안하게도 안심을 하게 된다. 나는 다시 열심히 쑥뜸 치료를 했다. 정확히는 쑥뜸 치료를 받았다. 내가 손을 쓸 수가 없어 쑥뜸 선생님이 하루에 두 번씩 나를 눕히고 일으켜 세우며 치료를 해주셨고 숨을 못 쉴 만큼 극심한 통증은 일주일 정도 만에 잡혔다.


‘나만큼 아픈 사람이 많을 텐데... 정말 골수암 판정을 받는 엄마들도 있을 텐데... 나만 이렇게 나아도 되나? 나만 이렇게 회복해서 잘 살아도 되나?’싶은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그들을 위해 뭔가를 해야겠다. 내가 아픈 사람들을 위해 뭔가를 꼭 해야겠다.’하는 생각을 했고 그때부터 나는 아프고 힘든 사람들을 돕는 기관들에 조금씩 기부를 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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