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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인어공주가 되는 시간

by A록


인어공주가 바다 마녀를 찾아가 사람의 다리를 갖게 해달라고 했을 때 바다 마녀는 약을 건네주며 말한다.

"이 약을 먹으면 인어의 꼬리 대신 사람의 다리를 갖게 될 거야. 하지만 땅 위를 걸을 때마다 마치 칼날 위를 걷는 듯한 고통을 느끼게 될 거다."


밤마다 아픈 발을 겨우 내딛으면서 혹은 도저히 걸을 수가 없어 기면서 인어공주를 생각했다.

그녀도 나만큼 아팠을까? 정말 힘들었겠다...

저녁 8시를 넘어가면 발목의 통증이 더 심해져서 식탁이나 의자를 잡고 겨우 걷거나 네 발로 기어야 했는데 아이들이 이런 내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을까 봐 그때마다 이렇게 얘기했다.

“지금은 엄마가 인어 공주가 되는 시간이야. 인어 꼬리를 사람의 다리로 바꾼 대신 걸을 때마다 무지하게 아픈 고통을 참아야 해. 너무 아파서 걷지 못하면 이렇게 기어 다닐 수밖에 없어. 인어공주가 되는 건 정말 힘든 일이다. 그지?”


그럼 아이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묻는다.

“엄마 정말 힘들겠다. 인어공주 놀이는 언제까지 해야 돼?”

“오늘 밤까지. 한동안 매일 밤마다 할 거야.”

“우리도 해야 돼?”

“아니, 너희는 그냥 인어를 하면 어때? 마음껏 수영하는 인어.”

“인어? 좋아!!!!”

아이들은 허리에 긴 스카프를 두르고 인어가 되어 거실에서 팔을 휘저으며 수영을 하면서 논다.

나는 의자에 무릎을 꿇고 올라가 설거지를 후다닥 마치고 의자에서 내려온 후 기어가서 블라인드를 내린다. 아이들이 치카치카하는 모습을 지켜본 다음, 이불에 뛰어 들어가 뒹굴고 있는 녀석들 곁으로 기어가 굿나잇 키스를 하고 내 방으로 다시 기어가 눕는다. 깊은 숨을 몇 번 연달아 쉰다. 오늘의 인어공주 놀이가 끝난 것에 대한 안도의 숨이다. 기는 것이 걷는 것 보다 힘들기도 하고 무릎도 아프고 걷는 사람들 속에서 낮은 자세로 기어다니는 것은 이상하게 기분이 별로 안 좋다.

그래도 인어공주에게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그녀의 이야기를 빌려올 수 있어서 나 스스로도, 아이들에게도 덜 비참해질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녀처럼 하얀 물거품이 되어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발목을 튼튼하게 만들어서 편안하게 직립보행하는 완전한 인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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