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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해골이 되어간다

by A록


꿈을 꾸었다. 한 10년 만에 보는 친구가 우리 집에 찾아왔길래 맨발로 뛰어나가

“어머, 남희야! 어떻게 여기까지 왔어! 너무 반갑다야.”하며 친구를 붙잡고 싱글벙글 웃었다.

그런데 그 친구가 갑자기 얼굴을 두 손으로 가리며 주저앉아 오열을 하는 게 아닌가!

나는 너무 놀라

“너 무슨 일 있어? 무슨 일 있구나! 어떡해... 무슨 일이길래 이렇게 울어... 나한테 얘기해봐. 내가 다 들어줄게...”

나는 안타까운 마음에 친구 곁에 앉아 친구의 등을 쓰다듬고 우는 얼굴을 바라보며 기다렸다. 한참을 울던 친구는 울음이 가득 찬 목소리로 겨우 한 마디를 했는데

“그게 아니라... 네 얼굴이 너무 상해서...”라고 하는 게 아닌가. 나는 너무 놀라 눈이 동그래진 채로 “뭐...?”라고 말을 하며 잠에서 깼다.


병을 앓는 5년 동안 내 몸은 점점 살을 잃어갔다.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5년 내내

“아유, 너무 말랐다~ 살 좀 쪄야겠어~”

“저번보다 더 말랐네~ 어떡해~”

“어머니, 자꾸 살이 빠지시네요~ 괜찮으신 거예요?”라고 말을 했다.


남편은 “당신, 깡마른 아프리카 여인의 몸이 됐어...”라고 하고, 첫째 딸은 뭉크의 절규를 흉내 내며 엄마 얼굴이라고 했고, 둘째 딸은 엄마처럼 마른 엄마는 엄마밖에 없다고 했다.


2년 반 정도는 그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몸이 아파 죽겠는데 살이 빠지든 찌든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발목도 아픈데 몸이 가벼운 게 무거운 거보다 훨씬 낫다 싶었다. 그저 전신 거울에 비친 나의 벗은 옆모습이 한 줄의 실오라기처럼 얇은 것이 신기했다. 20대에는 그렇게 운동을 하고 식이요법을 해도 40킬로그램 대로 떨어지기가 힘들더니 지금은 44-45킬로그램 정도가 되었다. 키 167센티미터에 몸무게가 그 정도면 정말 살이 없다. 그리고 내 몸은 점점 더 살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강제 노역 중인 뼈밖에 안 남은 사람들의 사진을 봤는데 나의 벗은 몸과 비슷하게 생겨 화들짝 놀랐다. 가죽밖에 안 남은 앙상한 몸. 살아있지만 죽은 것처럼 보이는 몸. 내 몸의 모습이었다. 비참하고 끔찍하고 불쌍하고 슬프고 억울한 몸들. 그날 이후로 나는 지나치게 마른 내 몸에게 그들의 몸을 보며 느낀 감정들을 갖다 붙이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에 친구가 찾아와 내 마른 얼굴을 보고 엉엉 우는 꿈을 꾸게 된 것이다.


얼마 후 몸이 너무 아파 병원을 가니 의사 선생님이 이런 얘기를 하셨다.

“살 많이 빠지셨죠? 몸을 집이라고 하면 염증이 집을 다 태우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몸에 있는 지방도 다 타버린 겁니다. 몸이 나아지면 자연스럽게 살이 찌실 거예요.”


‘그랬구나... 염증이 서서히 지방을 다 태운 거구나. 병이 낫지 않으면 나는 점점 더 말라갈테고 그럼 나는 정말 뼈만 남은 몸으로 귀신처럼 살게 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겁이 났다. 지금도 나를 보는 모든 사람이 나의 마른 모습에 주의를 기울이며 한 마디씩 말을 하는데 나중에는 무서워서 도망을 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둘째를 임신하고 입덧이 너무 심해서 매일매일 구역질로 먹은 것을 토해내던 때가 있었는데 어느 날 고개를 들어 화장실 거울을 봤다가 기절할 뻔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공포 영화에 나올 법한 해골 같은 얼굴이었다. 눈은 툭 튀어나오고 볼은 깎아지른 절벽처럼 마른, 해골에 가죽만 겨우 붙은 그 얼굴이 나는 너무 무서웠다.


빨리 낫고 싶었다. 아픈 것도 싫지만 해골이 되는 것도 너무나 싫었다. 아이들이 나를 부끄러워하는 것도 싫고 누굴 만날 때마다 “너무 말랐다~”같은 말을 듣는 것도 지겨웠다.


적정 수준 이상으로 마른 사람을 보며 그 사람이 아파서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주면 좋을텐데. 너무 말랐다고, 살 좀 찌라고 하는 말이 그 사람에게 스트레스를 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해주면 좋을텐데. 우리가 다리를 한쪽 잃은 사람에게 “아유, 다리가 한쪽밖에 없어서 어떡해요?”라고 말하지 않듯이 마른 사람에게도 말을 쉽게 하지 않으면 좋을텐데. 살이 많이 찐 사람에게도 마찬가지이고.


나는 그래서 더 죽기 살기로 치료를 했다. 더 이상은 마르기 싫어서. 더 이상은 염증이라는 놈에게 내 살을, 내 삶을 빼앗기 않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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