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소풍 공지가 떴다. 첫째는 초등학생이고 둘째는 첫째가 다니는 초등학교의 병설 유치원에 다니고 있어서 소풍이나 운동회를 같이 한다. 이번에는 올레길을 걷는단다. 엄마가 발목이 아파 걷는 것이 불편해서 같이 걸을 수가 없으니 가지 말자고 아이들이랑 얘기를 했는데 우리 애들만 안 가고 다른 친구들은 다 간다고 해서 어쩌나 싶었다. 내 몸 상태를 아는 친한 엄마들이 연락이 와서 아이들만 보내라고, 돌봐주겠다고 하는데 왠지 마음이 안 놓였다. 다른 아이들은 다 엄마가 있는데 우리 애들만 없으면 안 될 것 같아 나도 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대신 출발지에서 출발하는 걸 보고 인사를 한 다음 아이들이 걷는 동안 나는 차를 타고 도착지에 먼저 가서 기다리기로 했다. 그렇게라도 해야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소풍 당일, 나는 도시락을 바리바리 싸서 소풍을 나섰다. 발목이 너무 아파 한 걸음 한 걸음 내딛기가 힘들었지만 아이들이 친구들과 어울려 재미있게 논다고 생각하니 견딜만했다. 나는 절뚝거리며 열심히 걸었다. 올레길을 걷지는 않았지만 출발지에서 학교 버스를 타러 가고, 도착지에 도착해서 자리를 잡으러 걸어가고, 도착지에서 학교 버스가 있는 주차장까지 걸었다. 발목뼈가 으스러졌는데 엉망으로 맞춰진 상태로 걷는 기분. 통증이 여기저기 동시다발적으로 솟아나 미칠 것 같은 상태로 집에 도착했다. 한 걸음도 걸을 수가 없었다.
아이들은 재미있게 놀다 왔지만 엄마가 고통스러운 얼굴을 하고 앉아있으니 미안해하는 눈치였다. 나는 억지로 얼굴을 밝게 하고 아이들을 씻기기 위해 욕실로 들어갔다. 둘째에게 물었다.
“오늘 재미있었어?”
“응, 정말 정말 재미있었어. 엄마는?”
“엄마도 재미있었어. 도시락도 맛있었고. 날씨도 너무 좋았잖아.”
“다리 아파서 힘들었지?”
“어? 어... 괜찮아. 치료하고 쉬면 돼.”
“엄마는 장애인이니까 많이 걸으면 안 돼.”
“장애인?”
“응, 엄마 장애인이잖아.”
“엄마가 장애인이라고 생각했어? 엄마 장애인 아닌데.”
“엄마 절뚝거리면서 걷잖아. 계단으로 안 가고 장애인 길로 가고.”
“그런가? 나 장애인인가?”
“응, 엄마 장애인이야.”
멍했다. 맞지... 장애인 판정을 받은 건 아니지만 현재 내 몸의 상태가 장애가 있는 건 맞지. 그래서 더 부정하지 않았다. 장애가 나쁜 것은 아니니까. 다행히 둘째도 장애 또는 장애인에 대해 아무런 편견이 없어 보였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이들은 한참 크는 내내 아픈 엄마를 봤다. 손을 잘 못 쓰고 잘 못 걷는 엄마. 같이 손을 잡고 흔들거나 쎄쎄쎄를 하거나 박수를 크게 치지 못하는 엄마. 같이 뛰지도, 같은 속도로 걷지도 못하는 엄마였다. 아이들은 왜 우리 엄마는 다른 엄마와 다르게 이렇게 몸이 불편할까 생각했을 것이다. 장애인이어서 그렇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날 밤 나는 아이들과 누워 이야기를 했다. 엄마는 꼭 나을 거라고. 관절염 때문에 몸에 장애가 생긴 건 맞지만 평생 이렇게 살지는 않을 거라고. 나아서 너희랑 뛰어놀고 수영도 하고 춤도 추고 끝없이 걷기도 할 거라고. 아이들은 반신반의하는 눈치였다. 사실, 제 작년에 큰 아이가 엄마 언제 낫느냐고 물어봐서 “네가 여덟 살 되기 전에 나을 거야.”라고 했는데 낫지 않았다. 작년에도 엄마 언제 낫느냐고 물어봐서 “네가 아홉 살 되기 전에 나을 거야.”라고 했는데 낫지 않았다. 그래서 이제는 물어보면 조금 넉넉잡고 “3년 안에 나을 거야.”라고 한다.
낫고 싶다. 싹 나아서 “엄마 이제 장애인 아니야.”라고 아이들에게 말하고 싶다.
아이들이 장애가 있는 엄마를 오랜 시간 보고 자란 덕분에 장애인이 겪는 불편함과 힘든 감정을 공감하고 그들을 배려할 수 있는 사람으로 커주길 바래본다. 내가 아픈 동안 아이들에게 못 준 것이 많지만 그런 중요한 배움 하나를 주었길 가슴 깊이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