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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막 살고 싶다.

by A록


‘새벽 세 시의 몸들에게’라는 책을 읽었다. 거기서 저자 전희경은 말한다.


... 병원에서 칸막이 없이 몸을 드러내고 (많은 중환자실이 그렇다), 밥을 먹을지 말지, 언제 먹을지, 어디서 무엇을 먹을지 선택할 수 없는 것 (많은 요양 시설들이 그렇다), 몸을 ‘망치거나’ ‘막 살’ 자유를 잃고 치료나 건강을 위해 ‘바른생활’을 하도록 규율되는 것 (아픈 사람들은 항상 이런 말을 듣는다)... 말하자면 자율성과 통제력, 개성과 고유성을 잃는 것이 두렵다. 왜냐하면 바로 이런 것들이 나를 (‘302호 환자’나 ‘요양등급 2’가 아니라) ‘나’라는 고유한 개인으로 만드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새벽 세 시의 몸들에게’ 53쪽


나는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했다. 나는 밤을 새우고 놀아도 시간이 부족한 인간인데 하루 종일 쑥뜸하고, 건강하게 먹고, 일찍 자야 하는 환자의 신분이 되었다. 늦게 자면 남편이 뭐라고 할까 봐 (실제로 뭐라고 하지도 않는데 괜히 찔려서) 남편 소리가 들리면 방 불을 후다닥 끄고 눕기도 하고 하루 두 번 녹즙을 내려 먹느라 손목의 통증을 참아가며 수많은 야채를 씻고 자르고 냄새도 맛도 별로인 녹즙을 코를 막고 마신다. 언제까지 이래야 되나 내일은 정말 먹기 싫다고 생각하며.


‘환자’라는 감옥에 갇혀 사는 기분이다. 10년 동안 여행을 하면서 내 사고의 틀을 하나하나 깨부수었는데 지금은 아픈 몸의 틀에 갇혀 비실거리며 살고 있다. 몸만 안 아프면 뭐든 하겠는데 몸이 아프니 깨갱이다.


나으면 하고 싶은 건, 제발 하고 싶은 건

밤새도록 책 읽기,

쓰러져서 못 일어날 때까지 춤추기,

자전거 타고 멀리 가기,

끝이 안 보이는 길을 혼자 걷다가 물 마시고 또 걷기,

하루 세 끼 라면 먹기,

먹고 싶을 때 먹고 자고 싶을 때 자기,

바다 수영 실컷 하고 모래사장에 누워 선탠 하기,

하루 종일 탄산음료 마시면서 영화 보기,

새벽 공기 마시며 조깅하기,

한 손에 담배와 술잔을 들고 담배 한 모금, 술 한 모금 번갈아 가면서 피우고 마시기,

아이들이랑 걷고 뛰고 먹고 수영하며 바닷가에서 놀기. 등등등...


먹는 것, 자는 것, 움직이는 것에 대한 자유를 원하는 내가 보인다. 아프면 많은 것에 대한 자율권을 박탈당한다. 그래서 건강이 중요한 거였다. 정말 중요한 거였다. 누가 좀 말해주지. 건강이 곧 자유라고. 아프면 그 자유를 잃게 될 거라고. 그러면 죽자 살자 건강을 지켰을 텐데. 아닐까? 그 때는 못 알아들었을까?


아... 막 살고 싶다. 막 막 막 살고 싶다.

무조건 내 맘대로 마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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