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름다운 환상의 섬, 제주도에 산다. 그래서 한 해에 최소 두세 번은 친구들이 우리 집에 놀러 온다. 몸이 많이 아파서 걷기가 아주 힘들어지기 전까지 나는 그 친구들과 같이 어울려 놀고 밥을 해 먹이고 좋은 곳에 데려갔다. 친구들에게 내가 아프다는 말을 안 하고 정상인 것처럼 행동을 했다. 그러니 그들을 만나고 그들과 보내는 시간 동안 나는 행복할 수가 없었다.
나는 비록 가식적으로 웃고 말을 하지만 그들의 웃음을 보고 만족감을 얻지 않느냐고, 이만하면 가치 있는 희생이라고 나를 속였다. 나는 그저 아픈 나를 최선을 다해 숨기고 싶었고 들키지 않으려고 죽을힘을 다해 애쓸 뿐이었다.
여름에 온 친구들은 에어컨을 빵빵하게 돌렸는데 나는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는 잘도 입는 패딩을 구석에 처박아 놓고 그들을 놀라게 하지 않을 얇은 무릎 담요를 덮었다. 나중에는 무릎이 너무 시려서 작은 전기매트를 켜고 무릎 위에 올려놓긴 했지만 어디 무릎만 아팠을까. 손목 발목도 칼로 후벼 파는 것 같았지만 참고 또 참았다. 아픈 발목으로 공원에서 하루 종일 걷고, 아픈 손목으로 음식을 해서 먹이고, 늦게 자면 확연히 더 아플 걸 알면서도 늦게 늦게까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커밍아웃을 하기 시작했다. 나 류마티스 관절염에 걸렸으니까 이제 제발 오지 말라고. 손목도 발목도 팔꿈치도 무릎도 뒤지게 아파서 니들이 와도 해줄 수 있는 게 없다고. 그래도 친구들은 기어이 우리 집 문을 두드렸다.
“어이, 류마최!”라고 부르며.
‘류마최’는 류마티스 관절염 앞 두 글자 ‘류마’에 나의 성 ‘최’를 붙여서 만든 나의 새로운 별명이었다. 나의 정체성을 한결 가볍게 만들어주는 그 별명은 퍽 마음에 들었다. 좋은 건 거기까지 였다. 역시나 그들은 내 상태를 정확히 인지하지 못하고 나와 뭔가를 함께 하길 바랐다.
나는 걸어서 우리 집 화장실까지 가는 것도 힘들고 내 손으로 세수를 하는 것도 힘들면서 그들의 먹거리를 챙기고 그들의 관광을 도왔다. 그리고 그들이 가고 나면 심해진 통증 때문에 몸을 잘 가누지 못하고 몇 달 전의 몸 상태로 돌아가 미친 듯이 쑥뜸을 해야 했는데 그렇게 해도 밤새 아파 몸을 뒤척이고 간간히 비명을 지르며 잠에서 깼다.
나중엔 이런저런 핑계로 그들이 제주도에 와도 만나지 않았다. 숨기려고 해도 숨길 수가 없을 만큼 몸 상태가 나빠졌기 때문이다. 뼈가 앙상한 얼굴과 몸, 절뚝거리는 다리와 손목에 생긴 불룩한 혹, 여기저기 쑥뜸으로 생긴 붉은 화상 자국. 나는 얼핏 봐도 환자였다. 그런 모습을 친구들에게 보여주기가 때려죽여도 싫었다. 그리고 하루 종일 치료를 해야 그 하루를 견딜 수 있는 몸이었기에 그들과 마주 앉아 수다를 떨고 있을 여유도, 그러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내 상태가 제일 안 좋을 때까지 만난 건 오빠네 가족이었다. 제주도에 살고 있어서 가족들을 만날 일이 거의 없었지만 1년에 두 번 정도 오빠네 가족이 왔다. 나는 오빠가 몇 달 전에 알려준 날짜에 맞춰 몸 상태를
최대한 좋게 하려고 죽어라 쑥뜸을 한 후에 오빠 가족을 만나러 갔고, 나에게는 최선이었으나 오빠 눈에는 놀랄 만큼 안 좋은 내 상태가 부모님과 할머니에게 전해졌다. 아픈 몸을 가리려고 웃고 떠들고, 아픈 발을 절뚝거리지 않으려고 이를 꽉 물고 디뎠지만 소용없는 짓이었다.
“몸 좀 어때?”
라고 누가, 언제 물어봐도 나의 대답은 똑같았다.
“조금씩 낫고 있어.”
정말 낫고 있어서도 아니고, 낫고 있다고 믿어서도 아니었다. 그 물음에 대해 진심으로 답 할 마음이 없어서, 피하고 싶어서 하는 대답이었다. 나는 긍정적으로 이 상황을 이겨나가고 있고 더디지만 낫는 방향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그러니 안심하고 다른 이야기를 하자고 하는 거짓말이었다.
가장 솔직한 내 마음은 이것이었다.
‘나도 감당이 안 되는 내 상황을 입 밖으로 꺼내기가 무섭고 싫다. 너희들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들어도 너희는 모를 것이고 놀랄 것이고 나를 불쌍히 여길 것인데 나는 그 모든 게 죽을 만큼 싫다. 최대한 빨리 쑥으로 지져서 이 병을 없애버리고 싶을 뿐이다.’
나는 내 병에 적응을 못 했다. 병이 가져다주는 모든 어둡고 무거운 상황 안으로 빨려 들어갈까 봐, 못 나올까 봐 무서워서 목이 삐도록 그 반대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쑥을 붙들고 도망쳤다. 아픈 몸이 외면당하고 쓸쓸해서 그랬는지, 내 몸은 치료 강도와 시간을 무시하고 정말 오랫동안 호전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