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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힘을 빼는 사람들

by A록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몸 어때?”

“조금씩 낫고 있어.”

“아직 절뚝거려?”

“응.”

“아직? 너 지금도 쑥뜸하는 거야?”

“응.”

“그거 치료되는 거 맞아? 병원 약을 먹어야지~”

“병원 약은 부작용도 많고 평생 먹어야 돼. 그거 안 먹고 나으려고 이거 하는 거야.”

“나아야 말이지. 너 벌써 몇 년 째야. 병원 약 먹었으면 그렇게 고생 안 할 건데 약 안 먹고 버티다가 병만 키웠잖아.”


다른 친구를 만났다.

“몸은 좀 어때?”

“비슷해. 조금씩 낫는 중이야.”

“뭘 맨날 낫고 있다고 그래~ 다리가 더 안 좋구만~”


집주인인 목사 할머니를 만났다.

“쑥 그게, 잠깐 통증은 줄여줘도 치료 효과는 없대~ 기도를 해야 돼 기도를. 말씀 읽고 기도하고 은혜를 받아야 낫지~ 그거 백날 해봐야 안 돼~ 나 봐봐. 은혜받아서 아픈 데 없이 이렇게 건강하잖아.”


아는 동생이 허리가 아프다고 해서 쑥뜸을 해보라고 했더니 이렇게 말했다.

“안 해요~ 어디 다치면 된장 붙이고, 애기 오줌 먹고 그런 거랑 비슷한 거잖아요~ 저는 병원 다닐래요.”


쑥뜸원에서 같이 쑥뜸하는 어느 할망을 차로 집에 데려다 드리는 길이었다.

“이제 여름이야. 니는 옷이 겨울이잖어.”

“바람 닿으면 아파서 그래요.”

“그럼 잠바라도 벗어. 아니면 여름 잠바로 바꿔 입든지. 옷이 없어?"


건강 검진을 갔을 때 한 의사를 만났다.

“류마티스 관절염 약은 먹고 계시죠?”

“아니요. 쑥으로 치료하고 있어요.”

“쑥이요? 약을 안 드신다고요?”

“네.”

“효과가 있어요?”

“네, 좀 더디지만.”

(한심하다는 듯 피식 웃으며) “네, 뭐... 열심히 해보세요.” (웃음 유지하며 고개 갸우뚱)


왜 아무도 묻지를 않을까? 내가 왜 약 몇 알이면 끝날 치료를 안 하고 그 뜨겁고 힘든 쑥뜸을 선택했는지, 쑥뜸 치료 과정은 어떤지, 왜 계속 낫고 있다고만 말하는지, 왜 여름이 되었는데도 겨울옷을 입고 있는지, 아픈 몸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은 어떤지. 왜 묻지 않을까? 왜 내 입장은 묻지도 않고 자기 생각만 말하는 걸까? 아픈 사람은 생각이 없는 줄 아는 걸까? 그들이 해 준 말들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뿐더러 힘만 빠지게 하고 마음만 상하게 했다. 몸이 아주 많이 아파 약해져 있을 때에는 스치고 지나간 말 한마디에 며칠을 끙끙 앓을 때도 있었다. 자기가 아파보면 알 텐데, 그게 얼마나 잔인한 짓인지 알 텐데...


아파서 정신이 없던 와중에도 나에게 상처를 준 말과 말투, 그 말을 한 사람들과 그들의 표정은 나의 내면에 아주 생생하게 새겨졌다. 몸은 휘청거릴지언정 정신은 그 어느 때보다 선명했는데 사람들은 그걸 모르는 것 같았다. 알아도 상관이 없었을까? ‘어차피 쟤는 아프니까. 약자니까. 내가 이런 말을 해도 되겠지.’라고 생각했을까?


아픈 사람의 삶을 진심으로 들여다보고, 그들의 말을 귀담아듣고 수용할 지혜가 없다면 차라리 말을 걸지 말아주면 좋겠다. 어떤 정보를 주거나 조언을 하기 전에 들을 의향이 있는지 먼저 물어봐주면 좋겠다. 안 그래도 힘들고 지치고 아픈 사람, 들쑤셔서 좋을 게 뭐가 있나. 아픈 몸 겨우 일으켜 세우며 살아가기도 벅찬 사람, 일방적인 펀치로 쓰러뜨려서 좋을 게 뭐가 있나. 평생 그 사람의 기억에 안 좋게 남아 곱씹히기나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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