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아래에서 바라보던, 떠오르기 직전의 눈부신 햇빛
예전 수험생 때 일이다. 시험에 몇 번 떨어지니 집안 분위기가 초상집 같았다. 일기에 매일 매일 더 이상 못하겠다고 적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살짝 정신병 비슷한 걸 앓고 있었던 것 같다. 대인 기피증 내지는 망상증 같은 종류였을 것이다. 거리를 걸을 때 사람들과 눈이 마주칠까봐 고개를 직각으로 숙이고 걸어 뒷목이 아팠다. 수험생활 기간 동안 항상 최선을 다했다고 얘기할 수는 없다. 다만 또 다시 이렇게 살 수는 없겠다는 확신은 있었다. 하루 하루가 맛없는 사탕 같았다. 아침마다 억지로 큼지막한 사탕을 받는다. 계피 맛이나 홍삼 맛 같은, 오래되어 끈적끈적하고 묵은 냄새가 나는, 내가 진저리치게 싫어하는 맛을. 그걸 자기 직전까지 혀에 피를 내 가며 녹여 먹는 기분이었다. 아무런 기대도, 희망도 없었다. 매일 머리가 좋아지는 물이라고 파는 가루를 병에 타 마시고, 일 년을 요가바지 두 벌로 돌려입으며, 외딴 섬에 발령받아도 좋으니 제발 시험만 합격하게 해달라고 빌며 새벽 두 시에 집에 돌아오던 날들이었다.
아직도 시험 전날 밤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무조건 일찍 잠들어야 했다. 다음날 오전 여섯 시에 출발해 한 시간 가량 떨어진 시험 장소로 가야 하는 일정이었다. 알람을 맞추고 열한 시에 침대에 누웠다. 원래 머리만 대면 자는 타입이라 잠들기까지 2-3분도 걸리지 않는데, 그 날은 끔찍하도록 잠이 오지 않았다. 손끝에 스치는 이불의 감촉이 생생할 정도로 온 몸의 감각이 한껏 살아 있었다. 이제 잠드는건가? 싶은 순간이 도저히 찾아오지 않을 때면 끝간데 없이 두려움이 찾아왔다. 눈을 뜨고 핸드폰을 확인할 때마다 시간이 5분, 10분씩 지나 있었다. 절망적이었다. 등이 식은땀으로 젖어들어왔다.
새벽 두 시가 되었을 때는 두려움을 넘어 공포감이 들었다. 이대로 잠들지 못하면 어떡하지? 한숨도 자지 못하면? 그래서 컨디션이 엉망이라 시험을 망치면 어떡하지? 머리가 몽롱해질수록 의식은 날카롭고 또렷하게 깨어났다. 모두가 잠든 집은 너무나 고요해서 숨을 멈추면 지구가 돌아가는 소리도 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닫힌 문 너머에 잠든 가족들의 숨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리는 것처럼 귓가에 선명했다. 제발 잠들게 해달라고 하느님에게 백 번, 천 번도 넘게 빌었다. 이 눈을 떴을 때 세 시간만 지나 있었으면, 하면 2시 5분. 제발 두 시간만 푹 잤으면, 하면 2시 30분... 나는 결국 한 순간도, 단 5분도 자지 못하고 오롯이 지나는 시간을 전부 느끼며 긴 밤을 새웠다.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로. 일어나 요약본이라도 읽을까 했지만, 그러다 간신히 찾아온 잠이 깰까봐 시체처럼 누워 있는 것 외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눈을 감고 버티면 조금이라도 잘 수 있을거라는 희망에 시달리며 1분, 10분, 한 시간이 지나는 것을 고스란히 맑은 의식으로 감당했다. 밤은 지나치게 길었다. 창 밖으로 해가 뜨는 것을 느꼈을 때 나는 절망했다. 목젖이 갈비뼈 아래로 아래로 반복해서 떨어지는 것 같았다. 뛰는 심장으로 가슴 안쪽이 뻐근하도록 아팠다. 머릿속이 온통 젖은 솜처럼 눅지근하고 눈 안쪽이 말라 뻑뻑했다. 최악의 컨디션이었다.
아직도 가끔 그 밤을 기억한다. 그 날의 암담함, 하느님에게 간절히 세 시간만 자게 해달라고 빌었던 절박함, 해가 떠오르는 창가를 바라보며 느꼈던 절망감. 살아서 지옥을 겪는 것 같았던 너무나, 정말 너무나 길었던, 다시는 겪고 싶지 않았던 밤. 그 밤, 나는 깊은 바다 아래에 있었다. 심해 속에서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한 채, 눈을 한번 감았다 뜨면 수면 위이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렇게 길고 고통스런 밤이 지나고 떠오르는 햇빛이 창가에 어리는 것을 보았을 때 나는 그것이 또 다른 절망의 시작인 줄 알았다.
그 해 나는 시험에 합격했다. 그러니까 그 밤은, 꼭 겪어야만 했던 통과의례였던 셈이다. 마치 아기가 세상에 태어나는 과정에서 산도를 통과하며 오롯이 고통을 느끼는 것처럼, 비좁은 수험 생활의 터널을 빠져나와 또 다른 문이 열리는 순간이었다. 물론 시험에 합격했다고 해서 내 삶이 드라마틱하게 행복해진 것은 아니었으며, 잠깐의 기쁨이 지나간 후 삶은 당연하게도 원래의 궤도로 돌아왔다. 일정 분량의 슬픔과 고통은 매 순간 찾아왔다. 막연한 수험생활이 끝났을 뿐, 사회에서 겪는 어려움은 학생 때의 것과는 또 달랐다. 긴 밤을 몇 번 보냈다. 긴 밤이 오래도록 이어진 날들도 있었다.
그런 날이면 나는 아직도 가라앉는 중이구나, 미처 바닥까지 내려가지 못했구나, 생각한다. 왜 심전도 그래프는 아래 위로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일까 - 그건 아마 심장이 뛰고 있는 한, 나쁜 일 다음에는 당연하게 좋은 일이 찾아온다는 삶의 공식과 연관이 있는 걸꺼야, 라고 스스로를 위안한다. 며칠이건, 몇 달이건 그런 밤이 지나고 나면 어느 순간 평온한 일상은 되돌아와 있었다. 얼마나 고통스럽고 힘든 밤을 보냈건간에 상관없이 일단 해가 뜨고 나면 순식간에 세상은 밝아지고, 갓 태어나 젊고 신선한 하루가 당연한 듯 내 앞에 배달된다. 그래서 밤이 깊을수록, 길고 어두울수록 가만히 나를 다독인다. 이 밤은 언젠가는 끝날테니 걱정하지 말자고, 이제 곧 찬란한 해가 뜨는 것을 바라보자고, 긴 밤 숨을 오래 참았던 만큼 새로 들이마시는 새벽의 공기는 더 달콤할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