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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칼과나 Aug 27. 2024

제2 검도에 이것도 포함일 줄이야

1화에서 "이기고 잘 하려고 하는 검도보다 연습 때 큰머리를 제대로 치는 기쁨을 소소하게 누리며 손목, 발목, 무릎 다치지 않고 건강하게 지속 가능한 검도를 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싶다."라고 제2 검도 출사표를 던졌는데 그 말이 참 이루기 어려운 것이었음을 깨닫고 있다.


살을 내어주고 뼈를 취한다는 말이 있다. 원래는 작은 것을 내주고 큰 것을 얻는다는 기개를 나타내는 말이지만 거의 20년만에 다시 검도를 하는 나에게는 부상의 순서를 알려주는 말이 되었다.


다시 도장에 나가기 시작한 후 한동안은 호구를 쓰지 않고 죽도를 쥐고 운동을 했다. 상대가 없는 수련이다. 그러자 살갗에 문제가 생겼다. 죽도의 병혁을 쥐어야 하는 왼손의 약지와 새끼손가락쪽 손바닥에 정확하게 물집이 잡혔다. 그리고 엄지와 검지 사이에서 죽도가 놀아야 하는 지점에도 정확하게 물집이 잡혔다. 몸을 밀어주어야 하는 왼발 바닥의 도톰한 부분과 엄지발가락에도 물집이 잡혔다.

아... 검도를 한다는 건 이런 거였지? 우아하게 검도만 잘하게 되는 경우는 없다. 땀을 흘리고 힘들어서 눈물콧물이 나고 머리가 산발이 되고 넘어지고 멍들고 다치는 것까지가 다 포함되어 있다. 까진 손바닥 발바닥쓰라렸지만 정확한 지점이 까졌다는 것에 혼자서 위안을 삼기로 한다.


그로부터 2~3주가 지나자 사범님이 이제 호구를 써보라고 권하셨다. 호구를 쓰자 마법이 펼쳐졌다. 갑자기 잘하게 되는 마법이 아니다. 호구를 썼다는 것은 상대가 있는 검도를 한다는 뜻이다. 칼을 들고 상대를 마주보자 갑자기 내 몸뚱이의 한계를 잊어버렸다. 


사람의 뇌는 참 신묘한 것이라 일단 검도라는 영역이 내 뇌에 새겨진 이상 몸으로 수련을 하지 않아도 검도를 보는 눈은 그닥 퇴락하지 않는다. 상대의 움직임을 보면 어디를 공략해야할지 계획이 나온다. 문제는 내 몸뚱이가 그걸 이뤄낼 재간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마이크 타이슨 옹이 그렇게 말했던 거다. '누구나 계획은 있다. 한 대 처맞기 전에는'. 몸은 10년도 넘게 단련하지 않아 약해질 대로 약해진 손목과 발목, 무릎으로 이루어져있는데 뇌는 자꾸 명령을 내린다. '지금 뛰어들어가!'


이번에는 왼쪽 발목, 오른쪽 무릎, 왼손목이 차례로 아파온다. 이번엔 뼈와 연결된 인대와 근육이다. 역시 상대를 베기 위해서는 살갗만 가지고는 안되는 거였다. 뼈와 인대를 내줘야 하는 거였다. 


왼쪽 발목은 아킬레스건 주변의 복숭아뼈쪽에서 정강이 쪽으로 이어진 가자미근이 아팠다. 이 근육은 신기한 것이 걸어다닐 때는 안 아프다. 발뒤꿈치를 들어올려야 할 때, 혹은 계단을 내려올 때 앞꿈치를 먼저 딛었을 때처럼 몸의 하중을 다리로 받쳐야 할 때 아프다. 문제는 검도는 왼발로 내 몸을 밀어서 상대를 공격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가 아프면 제대로 공격을 할 수 없다.


오른쪽 무릎은 발구름을 할 때 하중을 받는 곳이다. 검도는 유효격자를 추구하는 운동이다. 유효격자란 죽도의 정해진 부위로 상대의 정해진 공격 부위를 치는 것인데 이때 기합과 발구름이 필수다. 왼발이 몸을 밀어 오른발로 발구름을 하면서 기합을 동시에 내지르며 정확한 부위를 공략해야 하는데 무릎이 아프면 발구름을 제대로 할 수 없다. 발구름이 약하면 공격도 같이 약해지니 공격이 성공하기 어렵고 어렵사리 공격이 성공하더라도 발구름이 약하면 유효격자가 될 수 없다.


왼쪽 손목은 또 어떤가. 오른손잡이인 나는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도의 손잡이쪽 끝을 왼손으로 잡고 오른손 팔꿈치에서 손까지의 거리만큼 위쪽을 오른손으로 잡고 아래에 잡은 왼손을 축으로 칼을 운용해야 한다. 요즘 가장 자주 듣는 지적이 죽도를 들어 공격할 때 오른손에 힘이 많이 들어간다는 것인데 왼손목이 아프기까지 하니 더더욱 죽도 공격이 제대로 되질 않고 있다.


더 억울한 것은 손목이 아픈 것은 니가 뭔가 검도를 잘못했기 때문이라는 사람들의 시선이다. 원래 죽도를 운용하는 것으로 손목이 아플 일은 없다는 것. 맞는 말이다. 하지만 검도는 죽도를 들고 끊임없이 상대에게 돌진해야 하는 운동이다. 죽도를 든 채 상대와 부딪힐 일이 많다는 말이다. 6월 중순경에 있었던 사회인 검도대회에 출전하러 왔던 아르헨티나 청년과 상호연습을 하다가 잘못 부딪혔는지 그때부터 손목이 아프다. 충돌의 충격 때문에 손목이 아프고 나니 허리 공격을 할 때 상대의 몸통에 부딪힌 칼을 잡은 손이 아프다. 안 쓰면 낫는 것 같다가도 운동을 가서 허리 연습을 하고 상호연습을 할 때 상대의 허리를 공격하다보면 또 손목이 아프다.


어떤가. 이쯤이면 총체적 난국이라 할만하지 않은가. 동아리 선후배, 도장의 사범님, 8단 선생님, 가족들에게 검도를 다시 시작하겠노라고 신나서 출사표를 던져놓았는데 이 무슨 곤란한 상황이란 말인가. 이건 절대 제2 검도를 시작하는 내 계산에 없었던 돌발상황이다.  


손목발목이 동시에 아프던 시기에 2주간 운동을 쉬고 정형외과에 물리치료를 부지런히 받으러 다녔다. 그러면서 검도인들의 블로그를 넘실거렸다. 그러다보니 공통점이 보였다. 검도 수련일지를 부지런히 쓰는 검도인들일수록 꼭 있는 게 부상으로 인한 강제휴식 기간이었다.

그걸 보는데 묘한 안도감이 들었다. 다들 다치면서 운동하는구나. 그러면서도 끝내 다시 돌아가서 운동을 하는구나. 내가 여기저기 아픈 것도 다 수련의 일부인 거구나. 안 아파야 하는데 아프다고 생각할 때는 뭔가 서럽고 억울했는데, 운동하다보면 여기저기 다칠 수도 있는데 그럴 때는 쉬었다가 다시 하면 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그렇게 마음을 먹으니 신기하게 아프던 곳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게 되었다. 마치 스포트라이트를 비춘 신경이 가있던 손목 통증의 존재감이 슬그머니 줄어들었다. 아픈 원인을 모를 때는 속만 조금 쓰려도 무슨 큰병인가 싶어서 조그만 증상 발현에도 식은땀을 흘리며 걱정을 하다가, 스트레스로 인한 위경련이라는 진단을 받고 나면 같은 증상을 느낄 때도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게 되는 것과 비슷하달까.


여전히 운동을 하기 전에 발목, 무릎, 손목에 차례대로 보호대를 착용하지만 다치기 전에 미리 보호하자는 예방차원이다.


다시 한번 제2검도의 모토를 떠올려 본다.


"이기고 잘 하려고 하는 검도보다 연습 때 큰머리를 제대로 치는 기쁨을 소소하게 누리며 손목, 발목, 무릎 다치지 않고 건강하게 지속 가능한 검도를 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싶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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