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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칼과나 Sep 24. 2024

일반인이 검도인으로 거듭나는 순간은?

유튜브 쇼츠의 덫에 걸려 엄지를 아래에서 위로 쓸어올리는 동작을 반복하다가 ‘본업 소홀히 하는 여배우들’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는 영상을 보았다. 예전 스타일 제목이라면 <노래 잘하는 여배우 Top 5> 정도였을 콘텐츠였다.     


그녀들의 듣기 좋은 노래를 듣고 있다가 문득, 저런 멋진 소리를 내는 건강한 성대가 부러워졌다. 저 사람들은 자기들의 성대 근육이 얼마나 건강하고 단련되어 있는 건지 모르겠지? 하는 생각이 들어서.     


나도 왕년에 노래방에 가면, 듣기가 좋지는 않아도 고음을 지를 수는 있었는데 결혼하고 애 낳고 키우는 동안 노래방에 갈 일은 1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소리를 지를 일이란 가끔 부부싸움할 때? 아들내미가 엄마한테 거짓말 하고 PC방 간 걸 알았을 때? 정도밖에 없다보니 내 성대 근육이 힘을 잃은 것조차 실감할 일이 없어져 버렸다.     


그러다 어쩌다 노래방에 가서 노래를 부르게 되었을 때 옛날에 지르던 생각을 하고 틀어본 노래에서 음을 전혀 낼 수 없다는 걸 경험하게 되었다. 악을 쓰고 싶지만 그 악을 써낼 성대 근육이 약해져서 제대로 된 악이 아니라 삑사리가 나버렸다.     


다시 시작한 검도에서도 마찬가지다. 검도는 기합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칼을 들고 상대방에게 유효한 타격을 해야 이기는 경기인데 그 유효한 타격에는 기.검.체. 일치라는 기준이 있다. 공격하는 기세와 타격하는 검과 검을 실어나르는 몸이 삼위일체를 이루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기세는 기합이 담당하고 있다. 그러니 기합은 검도에서 30% 이상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검도 수련을 하지 않으며 세월을 보낸 내 몸 구석구석의 근육이 약해져 버렸는데 상대의 허점을 보는 눈만은 여전해서 예전 생각하고 마구 움직이다가 몸의 왼쪽 라인을 따라 발목, 오금, 손목 기타등등 여기저기 고장이 나는 와중에 성대도 근육인지라 내가 내지르는 기합조차 힘이 없고 음이탈이 났다.     


검도를 하면서 지르는 기합에는 일정 수준의 적개심이 들어있어야 한다. 상대가 약하면 약한 대로 ‘내가 압도해주지!’라는 표현이기도 하고 상대가 나보다 강하더라도 ‘이대로 호락호락 무너질 수 없지!’라는 결의를 뿜어내는 것이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그런 마음으로 기합을 지르고 나면 투지와 용기가 차오르기도 한다.     


그러니 그런 역할을 해야하는 기합을 지르다 나는 삑사리란... 치명적이지 않을 수 없다. 성대가 약해진 상태로 기합을 질러야 하는 검도인이란 마치 탈태중인 갑각류처럼 취약해져 있는 상태인 것이다.     


다리와 팔 근육은 어떻게 하면 강화할 수 있을지 알겠는데 (실천을 했다는 건 아니다.) 성대는 어떻게 강화플랜을 짜야할까? 물론 성대를 푸는 방법과 성대에 힘을 붙여가는 방법이 유튜브 어딘가에는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건 검도인으로서가 아니라 좋은 소리를 내기 위한 방법일 거라 찾아보지는 않았다.     


검도를 배우기 시작한 사람이 검도인으로 다시 태어나는 순간은 언제일까? 하고 누군가 묻는다면 나는 검도를 하면서 기합을 내지르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게 되는 순간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빠른 머리 치는 숫자를 세고, 연격을 하기 전에 개미 같은 소리로 할 수 없이 ‘야’하고 운을 띄우는 때가 있었다. 발구름도 머리치기도 그럭저럭 하라는 대로 따라하겠는데 기합이라고 부르는 ‘고함’을 질러야 하는 게 제일 내키지 않았던 때가 있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내가 ‘기합’을 왜, 어떻게 질러야 하는지 알고 적절히 구사하는 순간이 온다. 내 안에 검도인이 반짝 눈을 떴다는 것을 깨달았던 그 순간을 기억한다. 일단 검도인이 된 후에는 거의 이십년을 쉬었다 왔어도, 성대가 마음 같이 따라주지 못해도 기합을 내지르는 것이 어느새 쾌감이 된다.    

 

9시부터 6시까지 책상에 앉아 입은 꾹 다물고 일을 하다 도장에 오면 스트레칭으로 몸 구석구석을 푸는 순간부터 하나둘셋넷 구령을 외치는 것으로 발산이 시작된다. 머리, 손목, 허리, 야앗, 기합소리를 내며 운동을 하고 난 후 머리부터 발끝까지 땀으로 젖어 기진맥진한 상태에서 정좌를 하고 앉아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감고 ‘묵상’을 외친다. 들이쉰 숨이 다 할 때까지.     


운동할 때마다 머리를 친다. 머리를 치다보면 머리를 칠 때 쓰이는 근육들이 단련된다. 단련된 근육들이 더 좋은 머리를 칠 수 있게 한다. 기합을 지르는 성대근육 또한 그렇게 단련해야하지 싶다. 당분간은 음이탈이 나더라도 운동을 할 때마다 기세를 담아 기합을 지르고 그렇게 단련된 성대로 더 우렁찬 기합을 낼 수 있게 될 때까지 차근차근 단련해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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