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가 아파서 오셨나요?
저, 양쪽 복숭아 뼈 밑에서부터 위로 쫙 가자미근이 아픈데요. 그냥 걸을 땐 괜찮은데 발 뒤꿈치를 들면 아파요.
어쩌다가 그러셨는데요?
아, 오랜만에 검도를 했는데요. 검도가 왼발로 몸을 미는 동작이 많아서요.
오늘은 어디가 아파서 오셨나요?
아, 왼쪽 손목이 아파요. 손등을 뒤로 젖히면 검지, 약지 시작하는 쪽이랑 엄지 시작하는 쪽이 아파요.
어쩌다가 다치셨지요?
아, 한 2주쯤 전인가 젊은 남자 선수랑 검도하다가 부딪혀가지고요.
아... 검도...
오늘은 어디가 아파서 오셨을까요?
저 왼쪽 발바닥 도톰한 쪽이 걸을 때마다 아파요. 검도할 때 그 부위로 몸을 밀어주는데 한 2주쯤 전부터 아프더라고요.
아~ 아직도 검도 하시는구나.
5월부터 검도를 시작하고 정형외과 단골이 되었다.
주로 왼쪽이 아프다. 그리고 이것은 작은 자부심이다. 검도는 왼쪽을 많이 써야 한다. 특히 죽도는 왼손으로 운용을 해야 더 멀리 더 바르게 칼을 운용할 수 있다. 오죽하면 왼손잡이는 주로 쓰는 손이 왼손이어서 검도를 더 잘한다고 하기도 하고, 오른손잡이인 경우 왼손잡이처럼 왼손을 주로 쓰는 연습을 하면 좋다는 얘기도 있을 정도다. 발도 왼발이 뒤에서 몸을 밀어주기 때문에 갑작스레 몸의 방향을 바꾸거나 할 때 왼쪽 발목에 무리가 갈 수밖에 없다.
다행인 것은 아픈 부위가 계속 달라진다는 것이다. 한군데가 쭉 아프거나 계속 아픈 부위가 늘어나기만 하면 운동을 계속할 수 없을 것이다. 내 경우 발목도 가자미근이 아팠다가 아킬레스쪽이 아팠다가 오금이 아팠다가 발바닥이 아팠다가 다양하게 위치를 옮겨가면서 아픈 중이다. 예전에 기록해놓은 것을 보면 그때 아팠던 곳은 이미 말끔히 낫고 다른 곳이 아프다. 예전에 다친 곳은 낫고 새로운 곳이 아픈 게 다행이라니 무슨 말인가 싶을 수도 있지만 아무튼 그렇다.
정형외과 선생님도, 물리치료실 선생님들도, 꿀꺽 삼키고 하지 않는 말이 내게는 들리는 것만 같다.
검도를 꼭 계속 하셔야겠어요?
그러게 말이다. 대학교 동아리 활동으로 처음 검도를 접한 후로 4단을 따기까지 10여 년, 열심히 운동을 했지만 딱히 부상의 기억은 없다. 있어봤자 손바닥, 발바닥에 물집 정도. 손목이나 팔뚝에 멍 정도? (운동하다가 상대에게 발을 밟혀 새끼발가락 뼈가 부러졌던 건 사고니까 계산에 넣지 말기로 하자.) 그런데 20년 가까이 운동을 안 하다가 다시 시작한지 4개월만에 이렇게 다양한 부위에서 다양한 통증을 경험할 줄은 미처 몰랐다.
그러면서도 주 3회, 혹은 월 10회 운동을 고수하는 나를 보며 스스로 질문을 해봤다.
이렇게 다치는데도 계속 검도가 재미있어?
그렇다. 검도가 너무 재미있다. 잘하고 싶다. 심심하면 유튜브에 검색해본다. 머리 잘 치는 법!
이렇게 재미있는 걸 그동안 왜 안 했을까? 첫 번째 이유는 출산과 육아 때문이었다. 일하면서 아이 키우는데 검도까지 할 시간이 없었다. 아이들이 어느 정도 크고 나서는 왜 안 했을까? 두 번째 이유는 직업병 때문이었다. 모니터를 붙잡고 씨름하는 생활을 10년 넘게 하면서 일자목, 거북목, 목디스크로 인해 언제나 머리가 무겁고 어깨가 굳어 있었으며 등까지 통증이 있었다. 그러니 머리에 호구를 착용하고 죽도까지 휘둘러야 하는 검도를 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 통증을 안고 살다가 이러다 내가 죽겠다 싶어서 시작한 게 필라테스였다. 필라테스를 3년쯤 하면서 마침내 온갖 통증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앞으로는 해서 재미있는 운동 말고 내 몸을 건강하게 하는 운동만 하자고 나 자신에게도 다른 사람들에게도 말해왔다.
볼링, 테니스, 골프, 배구, 축구, 기타등등 몸을 한쪽으로만 써야 하는 재미있는 온갖 운동들 말고 좌우 균형을 이루는 운동, 그러니까 달리기, 수영, 요가, 필라테스 같은 것만 해야겠다고.
그런데 막상 통증에서 벗어나고 난 상태에서 검도 대회를 한 번 관전하고 나니, 바로 생각이 달라졌다. 내가 여전히 시간이 없나? 아니다. 아이들은 중학생, 고등학생이 되어 학교가 끝나면 학원에, 스터디 카페에, 친구들 약속에 집에 있는 시간이 없다. 나 혼자 재택근무를 하면서 덩그러니 집에 있는 날들이 대부분이다.
내가 여전히 운동을 할 수 없는 상태인가? 아니다. 목과 등과 어깨에 통증이라고는 없다. 그렇게 다시 검도를 시작하자 너무 재미있는 한편 몸을 계속 다치고 있는데 그래도 ‘아 뜨거워라, 당장 그만둬야지’ 하는 생각은 전혀 안 든다.
오히려, 필라테스가 안정감 있게 돈을 벌어주는 남편이라면 검도는 위험하지만 내가 너무 사랑하는 애인 같다. (이 비유를 남편이 싫어합니다. 괜찮다. 그도 검도를 나만큼 아니 그 이상 좋아하니까.)
좋아하는 검도를 오래오래 하기 위해서 오늘도 부지런히 물리치료를 받으러 병원에 간다. 일상생활을 하는 데만 썼다면 부상은 안 당했을지 몰라도 지금처럼 몸의 구석구석이 어떤 동작을 할 때 어떤 일을 하는지 몰랐을테고 손목을, 발목을, 다리 뒷근육을 하나하나 의식해서 스트레칭해서 늘려주고 강화운동을 해야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테니까 이참에 더 단련해서 더 강해질 수 있을 거라고 믿으면서.
불신지오오오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