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부터 3회, 같아 보여도 전부 다른 콘서트
40대 직장인, 두 아이의 엄마인 나는 내가 아미라는 사실을 딱히 알리려고도 숨기려고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일단 알리게 된다면 그건 대부분 콘서트를 가기 위해 티켓팅을 할 때 일어난다. 한 번의 티켓팅으로 콘서트에 가느냐 못 가느냐가 결정되는 절체절명의 순간을 앞둔 그때의 나는 매우 흥분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콘서트가 공지되고 티켓팅 날짜가 발표되면 그때부터 나라는 덕후의 뇌는 콘서트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어느 피시방에서 티켓팅을 해야 서버신의 간택을 받을 수 있을지, 그리하여 좌석표가 열리는 창까지 도달할 수 있을지, 과연 몇 개의 콘서트에 좌석을 구할 수 있을지 하나하나가 전부 살 떨리는 대화 주제이다.
그럴 때 덕후가 아닌 사람들이 이해를 못 하는 지점은 여러 가지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크고 많은 물음표를 달고 나에게 도달하는 질문은 "왜 똑같은 콘서트를 여러 번 봐?"이다. 나의 대답은 이렇다.
"여러분, 그건 다 다른 콘서트예요. 중요하니까 다시 한번 말할게요. 세상에 똑같은 콘서트는 없어요."
이번엔 어떤 곡들로 콘서트를 꾸밀지 모든 것이 베일에 싸인 첫 콘서트, 첫 콘서트의 설렘을 대신할 매끈한 퍼포먼스와 숙달된 진행으로 안정감을 주는 두 번째 콘서트, 이제 언제 다시 콘서트에서 만날지 모르는 채로 헤어지는 마지막 콘서트, 공연마다의 의미가 다르다.
▲ 올콘의 흔적 콘서트에 들어가기 위해 본인인증을 했다는 의미의 팔찌. 이 팔찌와 모바일 티켓으로 콘서트장에 입장한다.
그러니 햇수로 3년 만에 다시 찾아온 방탄소년단의 콘서트 앞에 나의 목표는 '올콘'일 수밖에 없었다. '올콘'은 모든 회차의 공연을 다 본다는 뜻이다. 4만5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잠실 주경기장을 3일 연속 채운 공연에서도 티켓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는데, 코로나 확산 방지를 위한 거리두기로 인해 1만5000명 규모로 열린다는 콘서트 공지를 들었을 때 두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드디어! 콘서트를 하는구나! 그런데 1만5000명 속에 내가 들어갈 수 있을까? 사흘 다 해야 예전 콘서트 하루 수용 인원인 건데 과연 나는 한 번이라도 갈 수 있을까?'
밸런스 게임이 유행이다. 이름에 밸런스(균형)를 달고 있는 것이 무색하게도 이 게임은 '평생 떡볶이만 먹기' vs '평생 떡볶이 안 먹기' 둘 중에 어느 쪽을 고를 것인가 같은 극과 극의 상황을 상정한 질문에 답하는 것이다. 아미에게 던져진 극강의 밸런스 게임은 무엇이 있을까?
'돌출 정면 1열 좌석으로 콘서트 한 번만 가기 vs 3층 좌석으로 올콘 가기.'
돌출 무대 정면 1열은 내 가수를 육안으로 가까이서 볼 수 있는 자리다. 정말 누군가 나에게 이 선택을 하라고 하고 그 선택에 따라 티켓을 준다면 1번을 고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덕후의 현생에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실전 티켓팅에서 나의 선택은 '자리는 상관없다, 어디든 콘서트 장에 들어가기만하면 된다!'였다.
그래서 좌석을 선택하는 창이 나오자마자 그라운드, 1층, 어디도 기웃거리지 않고 2층에서 돌출 무대를 대각선 각도 내에서 바라볼 수 있는 적당한 구간을 고르는 전략으로 단 한 번의 '이선좌'(이미 선점된 좌석입니다) 메시지도 만나지 않고 3일의 콘서트 티켓을 모두 예매할 수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티켓을 구하기 힘들다는 방탄소년단의 티켓팅으로 단련된 나의 팁을 하나 공유하자면, 꼭 가고싶은 공연일수록 좌석 창이 열렸을 때 눈에 보이는 가장 앞쪽 자리가 아니라 2~3줄 뒤쪽 좌석을 공략하는 것이다.
3회 공연의 수용인원 전체가 4만5천명인 공연에서 티켓팅에 참여한 동시접속자의 수가 20만명을 넘어가는 상황에 '이선좌' 메시지를 만나는 순간 내가 예매할 수 있는 좌석의 수는 빛의 속도로 사라진다는 걸 의미하기 때문이다.
스타디움에서 하는 공연은 날씨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2주 전부터 콘서트 기간 날씨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3월의 밤 기온이 싸늘하다며 옷 따뜻하게 입고 오라는 멤버들의 트위터, 위버스 메시지를 보고 옷차림을 준비한다.
콘서트 날 비가 오지는 않을까 졸였던 마음은 막상 공연 중 비가 오자 '에라 모르겠다' 내려놓고 즐기는 대변신을 보여준다. 또 다른 공연날은 오전에 비가 오더니 공연 시각이 다가오자 하늘이 개었다. 내 마음도 같이 펴졌다.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모든 콘서트가 추억이 된다.
그뿐인가, 콘서트 장으로 향하는 내 몸과 마음의 상태, 그날 앉은 좌석의 시야, 옆자리에 앉은 아미의 성향이 수줍은가, 옷고름 풀고 노는가, 최애(최고로 애정하는 멤버)가 누구인가에 따라 나의 콘서트 경험은 매번 새롭고 매번 다르다.
실제로 일부 곡은 콘서트 회차마다 달랐다. 같은 노래라고 해도 쌀쌀한 봄밤에 부를 때와 살짝 기온이 올라간 날 빗 속에서 방방 뛰며 부르는 날의 퍼포먼스는 다를 수밖에 없다.
공연 중 매번 하는 파도타기여도 어떤 날은 NG가 나기도 하고 어떤 날은 뒤에서 앞으로 빛의 물결이 밀려오듯 성공하기도 하고, 좌우에서 시작한 파도가 딱 가운데서 만나기도 한다. 그날 그날의 공연은 가수와 팬이 상호작용하며 빚어내는 결과물이기 때문에 다른 게 당연하다.
함성이 금지된 공연 3회차 만에 클래퍼 장인이 되어 칼박을 쪼개다가 멤버가 멘트를 시작하면 일제히 멈추는 합일의 경지도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만이 느끼는 뿌듯함이다.
▲ 3일차 콘서트가 끝나고 퍼미션투댄스 온스테이지 서울 공연의 마지막 공연이 끝났다. 3번의 공연 동안 작은 불빛 하나로 열일한 아미밤.
ⓒ 최혜선
3장의 티켓을 폰에 저장해 놓은 마음은 마치 아무도 손대지 않은 종합쿠키 선물세트 한 상자를 나 혼자만 아는 장롱 속에 넣어둔 것 같은 기분이었다. 회사에서 혹은 개인적으로 힘든 일이 있어도 예매된 티켓을 열어보면 마음이 풀렸다. '일주일 뒤면 콘서트네. 거기 내 자리가 있지'라는 걸 떠올리면 드라마 <도깨비>의 김신처럼 천년의 화도 풀릴 지경이었다.
공연을 한 번 갈 때마다 상자를 열어 쿠키를 하나씩 꺼내 먹는 기분이 든다. 꺼내 먹을 때마다 행복한데 하나씩 사라진 걸 확인할 때마다 서운한 그런 오묘한 기분. 콘서트가 열린 기간 동안 그런 기분으로 벅차게 행복하고 또 한편 서운했다.
소설가 김영하씨가 <여행의 이유>라는 책에서 이런 말을 했다. 알쓸신잡을 찍을 때 출연자들이 한 것은 같이 차를 타고 어딘가에 도착해서 각각 카메라와 작가 1인과 함께 각자의 여행을 한 것뿐이라고. 나중에 방송이 나오고 나면 그 여행을 했던 자신도 얼마나 새로운지 모른다고. 그 프로그램에 관여하는 40여 명의 플레이어와 작가와 제작진들 중에 그 모든 여행을 통틀어 모든 것을 다 아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고.
방탄 콘서트도 딱 그렇지 않을까 생각한다. 소속사와 진행을 맡은 팀이 최선을 다해 원활한 공연을 준비하고 7명의 멤버들이 공연을 펼치지만 무대 위에 서 있는 멤버들조차도 그 전체 공연의 일부분일 뿐 모든 걸 알지 못한다.
같은 공연을 세 번을 봤어도 이제야 어디서 망원경으로 자세히 보고 어디서 멤버들의 안무 대형을 맨 눈으로 보는 게 좋은지 조금 알 것 같은 생각이 들 뿐이다. 돌아와서 팬들이 각각의 자리에서 본 것들을 공유하는 트위터 피드를 확인하면 놓친 장면이 너무나 많다.
특정 곡으로 활동하는 동안 같은 퍼포먼스를 많이 보는데 실제 가서 보는 게 뭐가 다르냐고 묻는다면, 카메라를 통해 2차원으로 보이는 것과 실제 멤버들이 대형을 넓혀 퍼졌다가 좁혀오면서 공간을 장악하는 무대를 생눈으로 보는 것이 주는 감동은 카메라로 전해지지 않는다고 답하겠다. 카메라 기술은 아직 많은 발전이 필요하다.
2017년 방탄소년단이 빌보드에서 상을 타고 AMAs 시상식 무대에서 공연을 했다는 뉴스를 듣고 궁금해서 유튜브에 방탄소년단을 검색했다가 아미(방탄소년단의 팬을 이르는 말)가 되었다. 그 이후 지금까지 덕후 생활을 이어오고 있다.
텍스트가 이미 고정되어 있는 소설도 언제 보느냐에 따라 내게 다가오는 감동이 달라지고 완성되어 있는 영화도 볼 때마다 보이는 게 새롭다. 같은 산을 매일 올라도 그날의 날씨와 계절의 변화와 내 마음의 상태에 따라 매번 새로운데 하물며 매일 달라지는 공연과 매회 달라지는 관객이 함께 써가는 공연이라는 작품은 날마다 다를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서 발행된 바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