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오후 2시 온라인 예매 성공하는 법
작년부터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고 이건희 회장의 컬렉션(수집품)이 전시되고 있다. 작년에 국립중앙박물관 전시에 가보고 싶었는데 못 갔다. 티켓 예약 방식을 숙지하지 못해서 티켓팅 날짜를 번번이 놓쳤기 때문이다. 올해는 이미 1년 간 전시를 했기도 하고 티켓 구매 방식도 변경되어서 여러 번 볼 수 있게 되었다.
국립현대미술관에는 현대의 회화와 조소까지가 전시되고, 국립중앙박물관에는 도자기, 고서, 고회화, 고가구, 범종까지 박물관이라는 말처럼 다양한 컬렉션이 전시된다. 규모도 국립중앙박물관이 더 크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이건희 컬렉션은 지난 4월 14일부터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하는 현장구매 형식으로 바뀌었는데, 나는 이미 작년에 국립현대미술관에 한 번, 올해 초 두 번 다녀왔기 때문에 줄을 서지는 않고 있다.
작년 미술관에 함께 다니는 친구와 같은 시간대를 공략하기로 약속하고 각자 티켓을 예약해서 다녀왔고, 올해 4월(현장 구매로 바뀌기 전)에 친구가 2장을 예약해 주어서 함께 다녀왔다.
뮤지컬이나 콘서트는 '하늘 아래 같은 공연은 없다'며 두 번 세 번 보는 일이 많았지만 같은 그림 전시를 두 번 보는 경우는 없었는데 고 이건희 회장의 컬렉션 같은 경우에는 자꾸 보러 가게 된다. 왜 국립현대미술관의 전시를 세 번이나 봤을까? 전시물이 바뀌는 것도 아닌데.
내 경우에는 화가와 그림을 줄긋기하며 알아가는 즐거움이 컸던 것 같다. 미술에 조예가 깊은 사람이 아니라서 이중섭, 박수근, 김기창, 천경자 화백처럼 이름은 들어본 화가도 있었지만 모르는 화가들이 더 많았다.
그런데 딱히 화가들에 대한 책을 읽고 공부를 한 것도 아닌데 1년 사이에 세 번을 보니 구면인 작품이 많아졌다. 같은 그림인데 달리 보이기도 했다.
앞으로도 이 컬렉션들은 계속 전시될 테고 이런 추세로 앞으로 10년을 더 이 그림들을 본다면 전세계를 누비며 사업을 하느라 바빴던 고 이건희 회장보다 내가 이 작품을 더 많이 누리게 되는 건 아닐까? 횡재라도 한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 사이에 친구는 우리나라 근대 화가들에 대한 관심이 생겨 책을 읽고 그들의 삶을 이야기해 주었다. 그 시대에 파리 유학? 그렇게 생활고에 시달리면서 이렇게 밝은 그림을 그렸다고? 이런 수준의 그림은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갔던 사람만이 그릴 수 있는 거였을까? 화가들 개개인의 삶과 그림을 비교해보며 숙연해지기도 했다.
같이 간 친구와 '내 집에 딱 하나를 건다면 어떤 그림이 좋아?'라며 준다는 사람도 없는데 이상형 월드컵 문답을 주고 받듯 서로의 그림 취향을 알아갔다.
취향이라는 건 그냥은 알기 어렵다. 내가 선택해서 내가 가지고 있는 이것이 진짜 내가 좋아하고 원하는 것인지 내 돈의 한계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고 이건희 회장이 돈의 한계를 거의 느끼지 않고 방대하게 모아온 다양한 시대, 다양한 화풍의 그림을 보면서 내 취향은 어느 쪽인지 가늠해 볼 수 있었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전시는 쭈욱 보고나면 20분 정도가 남는데 그 시간 동안은 각자 좋아하는 그림을 한 번 더 보는 시간을 가졌다. 보고 있으면 마음이 차분해지는 산수화 앞에서 오래 앉아 있었다. 내가 몰랐던 내 취향 하나를 알았다.
작년에 너무 치열해서 예약을 하지 못했던 국립중앙박물관의 고 이건희 회장 컬렉션이 올 3월 말에 '어느 수집가의 초대'라는 이름으로 다시 전시를 시작했다.
이번에는 4월 28일부터 8월 28일까지 전시가 열리는데 1개월마다 일부 전시물이 교체된다. 5월까지는 인왕제색도가 전시되었고 6월에는 추성부도가, 7월에는 불국설경, 8월에는 화접도로 교체되는 식이다. 각 1개월 분량의 티켓을 정해진 날에 판매하는데 마지막 전시물인 화접도가 전시되는 7월 29일부터 8월 28일까지의 티켓이 6월 27일 월요일 오후 2시부터 판매된다.
그렇다면 이제 6월의 전시는 볼 수 없는가 하면 그렇지는 않다. 매일 아침 10시부터 매 30분 간격의 당일 티켓을 회당 30장씩 판매하니 아침 일찍 가면 티켓을 살 수 있다. 지난 11일 토요일, 부산에서 KTX를 타고 올라오신 엄마와 함께 보기 위해 현장 판매 티켓을 구매해 보았다. 오후 2시 티켓을 예약해 두었는데 일행이 한 명 늘어나서 티켓을 구하기 위해 줄을 선 것이다.
오전 9시 45분에 줄을 선 지 10분 만에 10시 티켓이 매진되었다. 10시 10분이 되자 10시 반 티켓이 매진되었다. 30분가량 기다려서 티켓을 살 수 있었다. 현장에 가면 굽이굽이 이어진 줄 끝이 어디인지 지금부터 줄을 서면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지 알려주는 인원이 있으니 안내에 따르면 된다. 오후 2시에 가서 티켓을 발권할 때 보니 5시 반 티켓을 예매할 수 있었다.
이렇게 티켓을 산 시점과 입장시간이 떨어져 있을 때는 국립중앙박물관의 상설전시를 보고 근처에서 차나 식사를 하거나 박물관 경내를 거닐면서 시간을 보내면 좋다. 부산에서 오시는 엄마를 기다리면서 남은 시간에 상설전시관 2층 반가사유상이 두 점 전시된 '사유의 방'에 들렀다. 그곳부터 시작해서 개인들의 기증품을 보고 곳곳에 놓인 의자에 앉아 쉬다가 관내의 카페에서 차도 한 잔 마셨다.
시간이 되어서 부산에서 오신 엄마와 함께 전시를 둘러보았다. 인왕제색도가 전시되었던 5월에 중학생 아이들과 4인 가족 완전체로 한 번, 인왕제색도가 교체되기 전에 또 보고 싶어 친구와 한 번, 이미 두 번을 보았다.
하지만 엄마와 함께 보는 세 번째 전시도 새로운 점이 많았다. 함께 보는 사람이 달라지면 같은 전시에서도 다른 이야기가 생긴다. 커다란 면기 같은 그릇을 보며 엄마의 추억이 길어올려졌다. 참게장과 먹으면 밥이 많이 먹힌다며 지인이 딱 이렇게 생긴 그릇(사진)에 밥을 가득 담아 환대해 주었다는.
교과서에서 이름만 듣던 작품과 화가들의 그림을 직접 보고, 있는 줄도 몰랐던 작품과 화가들의 그림을 보면서 몰랐던 나의 취향을 새로 발견하기도 했다. 나는 수묵화를 좋아했다. 그 중에서도 그린이의 인생이 집약되어 있는 글과 그림이 함께 있는, 요즘으로 말하면 친구들과 모임을 하고 남긴 포토북 같은 화첩을 좋아했다. 또 요즘 유행하는 '인생네컷'처럼 인생을 10개의 병풍으로 그린 평생도 병풍에서 감명을 받았다.
한 자를 잘못 쓰면 한 페이지를 다 다시 써야 하기에 실수 없이 작업을 마쳐야 한다. 그런 작업물을 마주하니 잘못 쓴 글은 키보드 몇 번 두드리면 지우고 다시 쓸 수 있고, 단락째로 옮기고 되살릴 수 있는 시대에 사는 내가 마치 스포트라이트를 비춘 것처럼 떠올랐다.
손으로 쓴 글씨가 워드 프로그램의 폰트보다 더 아름다운 고서적을 보고 있으면 글을 쓰며 보냈을 누군가의 삶이 응축되어 있는 것 같다. 종이 위에 그려진 2차원 작업물 뒤에 있었을 누군가의 인생이 입체적으로 다가왔다.
그림을 앞에 두고 그 그림을 그렸던 사람의 삶, 그가 살았던 시대를 가늠하다 보면 건널 수 없는 시간의 강이 나와 그림 사이를 흘러가는 듯한 아득한 느낌이 든다. 그 또한 그림을 보는 즐거움이다.
고 이건희 회장의 국립중앙박물관 전시는 1시간만에 다 보기 빡빡할 정도로 엄청난 컬렉션을 자랑한다. 보통 컬렉션을 하는 분들은 가구면 가구, 백자면 백자, 토기면 토기와 같이 특정 분야를 집중해서 모으는데 이건희 회장의 컬렉션은 다양한 방면에 걸쳐 있었다. 범종에 15세기 한글 해례본까지 모은 걸 보고 깜짝 놀랐다. 이런 컬렉션을 모은다는 건 돈만 있다고 되는 일은 아닐 것이다.
박물관에 컬렉션을 기증하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한결같이 자신이 모은 소중한 것을 함께 나누고자 하는 마음이 들어 있었다. 사라지고 흩어져버리기 쉬운 우리 문화의 편린들을 모아서 간직하고 후대에 전하겠다는 마음의 결실인 이번 전시를 나는 되도록 많이 누리는 것으로 내 몫을 하고자 한다.
현장 예매를 기다리기는 힘들고 다음 티켓팅에서 승부를 보겠다는 분을 위해 팁을 드리자면, 오는 27일 오후 2시에 7월 29일부터 8월 28일까지의 티켓 판매가 시작된다. 주말 표는 일찍 매진되니 미리 날짜와 시간대, 관람할 인원을 정해놓고 티켓이 오픈되는 오후 2시 정각에 도전하기를 권한다.
오후 2시 정각에 도전하기 위해서는 미리 예매가 진행되는 인터파크에 계정을 만들어 두어야 하고 다른 티켓의 예매 방식을 예매 직전까지 따라가 보면서 팝업이 차단되어 있지는 않은지 확인해 보는 편이 좋다.
빨갛게 표시되는 시간대가 예매가능한 시간대이며 지금은 모두 매진이지만 가끔 가뭄에 콩나듯 취소표가 나오기도 한다. 생각날 때마다 티켓 예매 앱에 들어가 보는 것도 방법이다.
#오마이뉴스에 게재했던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