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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vermore Jul 19. 2021

작은 사람 이야기

근데 진짜로 귀엽다니까요,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조카가 태어났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언니의 딸이다. 작은 건 당연하고 그 작은 얼굴에 새카만 눈동자와 지점토로 조물조물 빚은 듯한 콧망울, 그리고 슈크림 같은 걸로 채워져 있을 게 분명한 말랑한 볼이 오밀조밀 자리하고 있다. 처음에는 빨갛거나 노랗거나 쪼글하더니, 점점 안에서 솜이라도 차오르는 것처럼 하얗고 방실해지면서 점점 피어나는 중이다.


나는 그 애보다 서른 두 해를 더 산 어른으로서 그 애를 들여다보면서 내가 낼 수 있는 가장 우스꽝스러운 소리를 내며 어떻게든 눈을 맞추려 애쓴다. 대부분 어리둥절한 눈빛만 받지만 가끔은 까르르 소리를 낸다. 아직 재미있는 게 뭔지도 모르면서, 입을 크게 벌리고 웃는다. 몸이 작아서 그 웃음소리에 온몸이 다 흔들리는데, 기쁘거나 슬프거나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가 온통 사정권인 게 재미있으면서도 안쓰럽기도 하다.


그 애의 하루 24시간 중에 적어도 20시간 정도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는데, 가끔 새카만 눈동자를 굴리며 뭐라 말하려고 입을 달싹일 때는 아주 잠깐이나마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싶어. 뭐라고 말하고 있는 건지 알고 싶어. 우리가 대화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 따위의.


나는 태어나서 다섯 살쯤까지 한일아파트 라는 곳에 살았다. 부모님 방 하나, 우리 자매 방 하나, 그렇게 최소한의 공간이 보장된 작고 낡은 아파트였다고 했다. 사진에 몇 장 남아있을 뿐이지만 기억에는 전혀 없다. 그리고 그보다 더 어렸을 시절, 세 살 때쯤에는 서른 한두살이었던 엄마의 회사일 때문에 이모 집에 맡겨져 살았다. 다정한 성정의 사촌오빠에게 보살핌을 받으며, 그러면서도 엄마 보고 싶다고 가끔 울기도 하면서. 이 시기는 당연하게도 더더욱 기억에 없다.


내가 기억하는 어린 시절은 여섯 살쯤 때부터 시작된다. 부모님이 두번째 아파트로 집을 옮기고, 조금씩 사이가 소원해지기 시작하고, 각자의 커리어 하이를 맞이하고, 가끔은 잘못된 선택을 하고, 사는 도시를 옮기고, 소리를 지르다가 나중에는 대화하지 않게 되고, 그렇게 인생을 꾹꾹 눌러 살아가기 시작했을 때부터.


나는 우리 부모님에게도 행복한 시절이 있었다는 걸 안다. 말할 필요도 없이 젊은 시절도 있었다는 걸 안다. 그냥 젊은 게 아니라 찬란하도록 젊고, 인생의 선택들이 아직은 그 인생을 좌우할 만큼 중요하지 않았던 시절. 이미 그은 밑그림보다 앞으로의 색칠이 삶을 완성할 거라고 믿었을 시절. 나는 그 때의 그들을 알고는 있지만 기억하지 못한다. 기억하지 못한다면 알지 못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우리는 이 작은 아이의 인생에서 어디쯤에, 어떤 모습으로 기억될 수 있을까? 나는 그 애에게 어떤 모습의 어른으로 보일 수 있을까? 언젠가 지금의 우리를 까마득한 옛날 이야기로 설명하면서, 그 애는 알지도 못하고 알지 못하기에 존재함을 확신할 수도 없는 그런 나날들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웃게 될까? 아니면 울게 될까?


그래서 가끔 그 애가 입을 달싹일 때마다 사랑스러우면서도 막막하고, 우리가 앞으로 나누게 될 수도 없는 이야기들이 너무도 기대되면서도 두렵다. 지금의 나는 그 애에게 아무리 설명해도 짐작할 수 없는, 그래서 존재하지도 않는 누군가로 남을까? 미래의 내가 지금의 나와 얼마나 다를까? 우리들 모두는?


할 수 있는 건 그저 지금의 날들을 더 섬세하게 쌓아서, 열 다섯살 쯤의 그 애가 나를 보았을 때 지금의 나를 조금이나마 만날 수 있게 하는 것. 그리고 언젠가 서른 둘의 그 애가, 육십을 넘긴 나를 보면서도, 오늘의 눈맞춤처럼 서로를 궁금해할 수 있게 되었으면.


인생은 정말이지 너무 길고 좋은 순간들은 너무 짧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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