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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로 Aug 09. 2024

스타트업, 코파운더가 사원 마인드라면?

공동 창업자(코파운더)를 바라보는 리더의 착각


같은 동료이자 파트너라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아니었어...



스타트업의 초창기는 팀 구성과 사업 아이템 개발을 위한 치열한 전장과도 같다. 이 시기 리더는 내외부적으로 엄청난 압박에 시달린다. 내부적으로는 팀원 확보와 운영 체계 수립이, 외부적으로는 자금 조달과 사업 모델 검증이 시급하다. 이는 마치 샌드위치 속 재료처럼 양쪽에서 눌리는 상황이다. 특히 어려운 점은, 투자자나 파트너를 설득하기 위해 매력적인 프로토타입(시제품)을 보여줘야 하는데, 실제로는 제품 개발은커녕 기본적인 운영 체계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한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때 코파운더의 역할이 중요하다. 코파운더는 단순한 직원이 아닌, 함께 창업의 길을 걷는 동반자이자 핵심 파트너다. 그래서 보통 C레벨(CTO, COO, CSO 등)에 준하는 지식과 경험을 갖춘 이들이 많다. 때로는 회사 생활에 회의를 느끼고 퇴사한 후 창업을 고민하는 사람들이나, 능력 있는 프리랜서들이 이 역할을 맡기도 한다. 이들의 역량과 헌신이 초기 스타트업의 성패를 좌우하는 핵심 요소가 된다.


창업 초기에는 리더와 함께 걸어갈 리더십 있는 관리자가 필요하다. 지시를 받고 수동적으로 업무를 수행할 사원을 필요로 하진 않는다는 말이다. 하지만 현실은 이와 다르다. 초기 스타트업의 사업 아이템은 대개 단순하고 명확하다. 리더는 때로 핵심 기능만을 구현하는 것을 목표로 삼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높은 역량보다는 주어진 과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무자가 필요하다고 여기기 쉽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리더가 팀원의 잠재력과 역량을 제대로 평가하지 않은 채, 단기 목표 달성만을 위해 인재를 영입한다면 어떻게 될까? 이렇게 합류한 이들은 실제로는 C레벨의 역량을 갖추지 못했을 수 있다. 그럼에도 리더는 그들에게 비전을 제시하며 동등한 파트너로 대우한다. 팀원들 역시 자신이 C레벨로 승격된 것처럼 여기며, 때로는 그에 걸맞은 대우를 기대하기도 한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일리가 있고, 내 경험상으로도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다고 본다. 하지만 여기에는 중요한 전제가 있다. 바로 사람마다 자신만의 '그릇의 크기', 즉 능력과 역량의 한계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아무리 높은 자리라 해도, 그 사람의 한계를 크게 벗어나면 결국 그 자리에 맞는 사람으로 성장시키지 못한다. 이는 마치 식물을 키우는 것과 비슷하다. 적절한 환경과 영양분을 제공하면 식물은 잘 자랄 수 있다. 하지만 각 식물에는 그 종에 맞는 최대 크기가 있다. 아무리 좋은 조건을 제공해도 실내용 화초를 거대한 나무로 키울 수는 없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각자의 특성과 한계를 인식하고, 그 안에서 최대한의 성장을 추구하는 것이다. 자리가 사람을 만들 수 있지만, 그 '만들어짐'의 정도에는 개인차가 있다


그러나 스타트업 초창기의 리더는 새로 합류한 팀원들을 C레벨 인재로 여기며 그들의 열정에 고무된다. 사업 아이템의 완성을 꿈꾸며 외부 네트워킹에 열중하던 중, 엔젤 투자자와의 프레젠테이션 기회를 얻게 된다. 이를 절호의 기회로 여기지만, 동시에 윤리적 딜레마에 봉착한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제품을 완벽한 것처럼 포장해야 하는 상황. '곧 완성될 테니까'라는 자기 합리화를 하며 미완성 아이템을 마치 완제품인 양 소개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리더의 마음속엔 갈등이 일어난다. '사기와 사업은 한 끗 차이'라는 말이 뇌리를 스친다. '과정과 결과에 책임을 지면 사업가, 도망가면 사기꾼'이라는 생각과 '지금은 미완성이지만 결국 만들어내면 사업'이라는 논리가 충돌한다. 이는 많은 초기 창업자들이 겪는 내적 갈등을 여실히 보여준다.


불안한 마음에 문득, 팀 내부를 들여다보기 위해 오랜만에 회의를 주관한다. 그러던 중 청천벽력 같은 말을 듣게 된다. "도저히 못 만들겠다. 이러한 환경에서는 만들 기분이 나지 않는다!"는 말이 들려온 것이다. 이어서 컴퓨터 성능, 자리 배치, 급여, 직원 복지 등에 대한 질문과 질타가 쏟아진다. 너무 당황한 리더는 침착히 "왜 처음부터 물어보지 않았냐?"라고 묻지만, 돌아온 대답은 "리더님이 저희에게 물어보지 않아서요!"라는 것이다. 이런 상황은 실제 있었던 사례다. 팀의 연령대가 낮고 경험이 전무할수록 이러한 상황은 더욱 빈번하게 발생했다.



C레벨 팀원(임원)도 회사의 직원이다. 그래서 급여도 측정되고 복지혜택 또한 똑같이 누린다. 차이점은 자율성에 따른 책임의 범주인데, 직급이 올라갈수록 자율성과 생각할 시간을 더 많이 갖는 만큼 책임이 따른다는 것이다. 이것이 일반 사원과 다른 점이다. 다시 말해, 코파운더는 창업 초기에는 회사의 자본금이 낮은 경우가 다수이기에 급여는 최소한으로 지급받고 대신, 스톡옵션 혹은 지분으로 그것을 보상받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이 지점이다. 나 또한 수많은 소상공인 혹은 스타트업 팀들과 대화를 해보면, 스톡옵션 및 지분을 바라보는 시각이 그룹별로 천차만별임을 알게 되었다. 경영주(리더) 그룹에서는 지분의 가치를 현재의 급여 가치보다 높게 측정하는 경향이 높았다. 이는 미래지향적인 성향이 높음을 알 수 있다. 중간 관리자 그룹에서는 최소한의 안정적인 급여와 함께 적절한 지분의 가치를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했다. 이는 축구로 비유하면 미들필더의 위치를 선호한다는 뜻이다. 마치 하이브리드 자동차를 선호한다고 해야 할까. 반면, 말단 사원 및 연구개발의 그룹에서는 당장 나에게 어떤 혜택을 더 줄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즉, 미래의 불확실성보다는 현재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에서다. 따라서 리더가 코파운더에게 지분의 가치를 제공하는 행위는 코파운더에 따라 받아들이는 게 다를 수 있음을 뜻한다.


그렇다면 다른 회사에서 오랫동안 사원으로 일하다가 퇴사 후 창업이나 프리랜서를 시도하는 사람들의 상황은 어떨까? 이 점이 매우 중요한데, 여기서 우리는 '관성'과 '관념'이라는 개념을 이해해야 한다. 이를 바다 위의 배로 비유해 보자. 작은 돛단배는 빠르고 쉽게 방향을 바꿀 수 있다. 하지만 대형 유조선은 어떨까? U턴을 하려면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고, 넓은 포물선을 그리며 천천히 방향을 틀어야 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대기업이나 공무원 조직에서 오래 일한 사람일수록 '사원 마인드', 즉 수동적인 업무 방식에 깊이 젖어들게 된다. 이러한 관성에서 벗어나 창업자나 프리랜서로서의 주체적인 마인드를 갖추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마치 대형 유조선이 방향을 바꾸는 것처럼, 상당한 시간과 노력, 그리고 인내가 필요한 과정이다.


여기서 리더가 이러한 사람을 C레벨 팀원으로 모셔왔으니 결과가 어떠할까? 맞다. 리더가 예전보다 10배 더 노력해서 유조선의 뱃머리를 함께 돌려줘야 한다. 그런데 리더는 이를 모른 채, 밖으로 나가 외부활동에 전념했으니 결과가 어떠했을까? 놀랍게도 팀을 만들려는 예비 창업자의 상당수가 이러한 상황에 놓여있다. 기업철학을 수립하고 사람을 검증하고 운영체계를 만들 수 있는 환경이 아니기에 계속해서 창업과 폐업의 사이클은 매번 반복되고 있다.


이러한 기질은 대학 창업팀에서도 더욱 두드러진다. 어찌 보면 이것은 창업팀에 국한할 문제는 아닌 듯하다. 다년간 많은 대학생들과 프로젝트를 진행해 본 결과, 자체적으로도 자성의 목소리가 생길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다. 이들의 취창업 니즈는 다양한 경험, 안정적인 급여, 높은 몸값, 자유로운 환경, 좋은 복지를 원하면서도 책임은 지기 싫어하는 경향이 있다. 


한마디로, 이들은 안정적인 급여가 보장되는 프리랜서 같은 직업을 원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프리랜서는 스스로 영업을 해야 수입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을 누구나 알고 있다. 결국 프리랜서의 자유로움은 원하지만, 그에 따르는 불안정성은 피하고 싶어 하는 것이다. 반대로 직장생활에서는 안정적인 급여 외의 요소들에 만족하지 못한다. 즉, 두 가지의 장점만을 취한 일종의 하이브리드 직업을 원하는 셈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이런 완벽한 조건의 직업을 찾을 수 있을까? 이러한 이상과 현실의 괴리가 요즘 MZ세대, 특히 사회에 갓 진출하는 대학생들이 진로를 정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주요 원인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이런 니즈를 반영하듯, 최근 크몽, 숨고, 클래스 101과 같은 재능 공유 플랫폼들이 급성장하고 있다. 또한, 트레바리와 같은 모임 플랫폼도 인기를 얻고 있는데, 이는 직장인들이 퇴근 후 부업이나 새로운 경력 개발을 위해 모임을 갖는 경우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들은 모두 앞서 언급한 '안정성과 자유로움'을 동시에 추구하는 현대인들의 욕구를 반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내가 이런 실제 사례와 성향을 설명하는 이유는 창업을 준비하고 팀원을 모집하려는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라서다. 하지만 오해하지 말아야 할 점은, 이것이 "모든 MZ세대가 리더십이 없고 사원 마인드를 가졌다"라고 일반화하려는 게 아니다. 나는 최소 100팀 이상을 만나고, 수년간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왔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어떤 패턴이 그려졌고, 그것을 하나의 경향성으로 설명하고 있을 뿐이다. 이는 개인의 경험에서 비롯된 관찰이기에, 모든 경우에 적용되는 절대적 진리가 아님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결국 스타트업 초기 단계에서 팀원을 모집하고 리더로서 역할을 수행하는 것은 단순히 사람을 모으고 일을 분담하는 문제를 넘어선다. MZ세대의 새로운 기질과 특성을 무조건 비판하기보다는, 이들의 강점을 어떻게 팀의 에너지로 전환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이제는 책임을 공유하고, 자유와 자율성을 중시하는 방식으로 접근해야 할 때다. 리더는 이러한 변화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재정립하고, 팀원들과 함께 성장하는 길을 찾아야 한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리더는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코파운더라고 해서 모두가 C레벨의 능력과 마인드를 가진 것은 아니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팀원 각자의 그릇 크기와 성향을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예를 들어, 1억을 가진 사람의 언행과 1,000억을 가진 사람의 언행은 엄연히 달라야 한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현재 1억의 매출을 올리는 리더라면 100억 매출을 꿈꿀 것이다. 문제는 돈의 목표에 따라 나의 언행과 품위가 달라져야 하는데, 많은 사람들은 이를 망각하고 오로지 돈의 기준에서 목표 달성을 향해 달려가려 한다는 점이다.


리더는 이런 상황을 이해하고, 팀원들의 현재 수준에 맞는 역할과 책임을 부여해야 한다. 동시에 그들이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하지만 쉽지 않은 과제인 듯하다. 특히 초기 스타트업에서는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하고, 리더 자신도 학습 중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리더들에게 이렇게 조언하고 싶다. 첫째, 팀원들의 실제 능력과 잠재력을 정확히 평가하자. 둘째, 그들의 현재 수준에 맞는 역할을 부여하되, 점진적으로 책임을 늘려가자. 셋째, 지속적인 피드백과 교육을 통해 팀원들이 진정한 C레벨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되, 그 과정이 길고 어려울 수 있다는 점을 인지 시키자. 또한, MZ세대의 특성을 이해하고 활용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들이 원하는 자유와 자율성, 의미 있는 일에 대한 욕구를 존중하면서도, 책임감을 키울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예를 들어, 프로젝트 단위로 책임을 부여하고 성과에 따른 보상을 명확히 하는 등의 방법을 시도해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리더 자신의 성장과 자기 인식이 중요하다. 나 역시 매년 스스로를 돌아보며 내 한계와 능력을 파악하고 있다. 솔직히 말해, 나는 수백억, 수천억을 거침없이 다룰 수 있는 그릇은 아니다. 내 강점은 초보 창업자들이 첫 매출을 올리고 초기 투자를 받을 수 있도록 돕는 데 있다. 이 범위가 바로 내 능력의 한계이자 전문 영역이다. 회사가 성장해 직원이 100명을 넘어서고 수백억 단위의 투자가 이뤄지는 단계에 이르면, 나는 적절하게 물러날 준비를 한다. 그 이상은 내 능력을 벗어나는 영역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만, 이런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끊임없이 그 경계를 조금씩 넓혀가려는 노력은 계속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는 마치 우물의 물이 마르는 속도를 늦추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자신의 한계를 알되, 그 한계를 조금씩 확장해 나가는 것. 이것이 리더로서 지속적으로 가치를 제공하고 성장할 수 있는 방법 아닐까.


결국, 스타트업의 성공은 리더가 얼마나 현실적이면서도 비전을 잃지 않는가에 달려있다. 코파운더들의 현재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되, 그들이 진정한 C레벨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것. 그리고 그 과정에서 리더 자신도 함께 성장하는 것. 이것이 바로 지속 가능한 스타트업을 만드는 핵심이다. 이런 과정은 분명 쉽지 않다. 하지만 이를 통해 얻는 경험과 깨달음은 값진 것이라 생각한다. 창업의 길을 걷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이 글이 작은 도움이 되길 바라며.



[다음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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