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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로 Sep 29. 2024

사업과 장사의 차이

스타트업, 사회적 기업, 장사, 연구창업이 다르다고?

에피소드


2022년 겨울 어느 날,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여성 창업가 A가 나를 찾아와 고민을 털어놓았다. 막연한 아이디어로 창업을 준비하다 보니 출발점을 찾지 못해 막막하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다. 여러 멘토링을 받고 시도도 해봤지만, 현실과의 괴리로 좌절감만 커져갔다고 한다. 특히 멘토링을 받을수록 오히려 중심을 잡기 힘들어진다는 점이 그녀의 핵심적인 고민이었다. 어떤 멘토는 이렇게, 또 다른 멘토는 저렇게 나아가라고 조언하니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는 비단 창업가 A만의 문제가 아니다. 나 역시 과거에 그랬고, 많은 스타트업 대표들도 비슷한 경험을 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지식이 부족하다 보니 멘토링과 강의를 통해 채우려 하지만, 오히려 그 과정에서 방향성의 혼란을 겪는 기이한 현상이 발생한다.


창업 초기에 실무를 겸하는 멘토의 조언을 많이 듣는 것은 분명 도움이 된다. 하지만 주의할 점은 자신의 중심축을 먼저 설정한 후, 그것을 기준으로 자문을 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많은 예비 창업가들은 아직 확고한 줏대가 형성되지 않아 귀가 얇을 수밖에 없다. 비교할 관념과 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멘토링이나 강의를 듣기 전에 자신과 기업 철학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스스로 질문하는 시간을 충분히 가진 후, 멘토를 찾아가길 권장하는 편이다.


창업가 A 역시 아직 중심축이 잡히지 않은 상태라고 판단했기에, 비즈니스 아이템을 논하기보다는 그녀의 일상과 과거 이야기부터 천천히 들으며 캐릭터 분석을 시작했다. 그러나 여기서 또 다른 문제가 드러났다. 창업가 A 뿐만 아니라 젊은 세대일수록 이런 과정을 건너뛰고 바로 결과로 달려가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창업가 A 역시 이런 대화를 비생산적으로 여기며, 빨리 아이템을 만들어 실전에서 수익화하려 했다.


창업가 A의 현실적 논리를 완전히 부정할 순 없었다. 매일이 비용이고 빠른 수익 창출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분명 일리가 있었다. 숲을 보는 거시적 관점에서는 양측의 논리가 모두 타당한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창업가 A에게 어떤 조언을 해줄 수 있었을까? 결국 그녀의 선택을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본인의 생각과 상반되는 조언은 독설처럼 들릴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어쩔 수 없이 그녀의 방식대로 가게 내버려 두어야 했다.


몇 개월이 지나 창업가 A에게서 전화가 왔다. 예상 밖의 이야기였다. 그녀는 스타트업 창업이 자신과 맞지 않는 것 같다고 했다. 대신 거북이처럼 천천히 연구하며 지속 가능한 수익 모델을 발굴하고, 이를 통해 사회에 공헌하며 나아가고 싶다고 했다. 이는 사실상 사회적 기업을 지향한다는 의미로 들렸다. 나는 그녀의 새로운 방향성에 대해 긍정적으로 반응하며, 사회적 기업이나 소셜벤처와 같은 형태를 고려해 보라고 조언했다.


어느 날, 창업가 A에게서 하소연 섞인 전화를 받았다. 그녀는 석박사 논문과 연계해 소규모 조직을 운영하고 싶어 했다. 이 조직은 연구 중심이되, 동시에 사회 서비스를 실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싶다는 것이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A의 스타팅 포인트는 독특했다. 프리랜서도, 1인 창업가도 아니었다. 사회적 기업의 방향성을 지녔지만 명확하지 않았고, 스타트업을 통한 EXIT도 아니었다. 소상공인 범주의 장사는 더더욱 아니었다. 협동조합이나 마을기업과도 달랐고, 사회적 협동조합은 규모가 커서 맞지 않았다. 그녀가 원하는 건 자신 없이는 굴러가지 않는, 본인 중심의 연구 조직이었다.


이래저래 다양한 포지션을 믹스해 교집합을 찾아보니, 하나의 키워드만 남았다. 바로 '연구창업'이었다. 통상 연구창업은 대학에서 교수진을 중심으로 법인이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다. A 역시 학교생활 중 이런 모습을 보고 막연히 창업이라는 단어를 떠올렸을 것이다. 이 상황은 마치 GPT에 구체적인 질문을 하면 구체적인 답변을 얻을 수 있지만, 대략적인 질문엔 대략적인 답변만 반복되는 것과 비슷했다. 스무고개처럼, 나는 A와 주고받는 대화를 통해 점점 그녀의 니즈를 좁혀갔던 것이다.




이러한 과정은 스타트업의 성장 과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시행착오를 잘 보여준다. 스타팅 포인트를 제대로 잡지 못한 채 무작정 달려가면, 결국 되돌아오기를 반복하게 된다. 때로는 한참을 달려간 후에야 "내가 여기에 왜 있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직면하기도 한다.


이런 시행착오에 투자되는 시간과 비용을 고려하면, 기회비용 손실이 상당히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시간은 곧 돈이며, 잘못된 방향으로의 질주는 단순한 시간 낭비를 넘어 기업의 생존을 위협할 수 있다. 따라서 창업 초기에 충분한 시간을 들여 자신의 비전, 목표, 그리고 기업의 정체성을 명확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마치 모래성을 쌓기 전에 단단한 기초를 다지는 것과 같다. 이러한 과정이 지루하고 비생산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가장 효율적이고 생산적인 투자가 될 수 있다.


창업가 A의 사례는 많은 예비 창업자들에게 중요한 교훈을 준다. 빠른 실행도 중요하지만, 그에 앞서 자신의 진정한 목표와 방향성을 찾는 과정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는 단순히 시간을 아끼는 것을 넘어, 창업자의 열정과 에너지를 가장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이쯤에서 독자 여러분은 창업가 A가 변덕이 심하거나, 혹은 창업 의지가 부족한 사람이라고 의심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수많은 예비 창업팀을 지켜봐 왔기에, 이런 상황이 꽤 흔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사실 나 역시 처음에는 이런 사례를 접할 때마다 줏대 없음, 리더십 부족, 또는 막연한 열망 정도로 치부했던 적이 많았다. 물론 막연한 뜻만 품은 팀들도 많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중에서 단순히 방향성을 제대로 잡지 못한 팀들을 놓친 것 또한 나의 치명적인 판단 실수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지금은 이러한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대신 시간을 두고 지켜보며, 창업가들이 스스로 깨닫고 준비가 되었을 때 제대로 된 코칭을 제공하는 방향으로 접근하고 있다. 이러한 방식이 장기적으로 더 효과적이고 의미 있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배웠기 때문이다.


이렇듯 창업을 마음먹은 사람들 중 다수는 창업의 범주가 넓다는 것을 모른 채, 다양한 형태를 하나로 뭉뚱그려 단순히 '창업'이라는 추상적 개념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장사도 창업, 스타트업도 창업, 협동조합도 창업이므로 모두 단순히 '창업'이라 부르는 식이다. 여러 항목을 포괄하는 명사를 사용하는 것은 양날의 칼과 같아서 신중히 사용해야 한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은 구체적인 표현에 어려움을 느껴 포괄적이고 쉬운 단어로 상대방에게 의사를 전달하곤 한다. 마치 홍콩, 싱가포르, 필리핀 같은 국가들의 명칭이 생각나지 않아 그저 '동남아 어디쯤'이라고 뭉뚱그려 말하는 것과 비슷하다. 여성 창업가 A 역시 마찬가지였다.


사업이나 장사나 똑같은 거 아니야?


그렇다면, 독자 여러분은 사업과 장사의 차이를 혹시 알고 있는가? 이 둘은 영리를 목적으로 한다는 것에는 동일하다. 어찌 보면 사업의 범주 안에 장사가 포함되어 있다고 봐도 무방할 수는 있다. 그래서 장사를 하는 사람도 사업을 하는 것이고, 사업을 하는 사람도 장사를 하는 경우가 발생하니, 이 둘의 경계는 참으로 모호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심지어 드라마 대사에서도 이런 말이 있지 않는가? 어느 기업의 회장 직함을 달고 있는 캐릭터가 "본인은 그저 장사치에 불과합니다"라고 하는 대사 말이다. 이러한 표현은 사업과 장사의 경계가 실제로 얼마나 모호한지를 잘 보여주는 예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사업과 장사는 미묘하게 다르다. 우리는 이 차이를 명확히 인지해야 한다. 사업은 중장기적 운영 시스템을 갖추기 위한 목표로 재화와 서비스를 판매하는 집단이고, 장사는 단기적 측면을 중심으로 재화와 서비스를 제공해 이익을 얻기 위한 목적을 지닌 조직이다. 즉, 사업은 중장기적 관점에 좀 더 초점을 두고 있고, 장사는 단기적 관점에 초점을 두고 있다.


더 핵심적인 사항은 운영 시스템의 구축 여부에 따라 장사와 사업의 형태가 달라진다는 점이다. 쉽게 말해, 장사는 사장이 없으면 돌아가지 못한다. 반면, 사업은 운영 시스템이 구축되면서부터 사장이 없어도 회사는 돌아간다. 즉, 대표가 없어도 돌아가는 조직이면 사업의 형태를 띠는 것이고, 그렇지 못하다면 장사의 형태라 생각하면 된다. (일부 학자는 사업과 장사를 한정된 지역 범위를 벗어나는지 여부로 구분하기도 한다. 관점에 따라 이 말도 일리는 있다.)


다만, 이러한 구분이 항상 명확한 것은 아니다. 작은 규모의 사업과 큰 규모의 장사 사이의 경계는 때로 모호할 수 있다. 또한, 많은 경우 장사에서 시작해 점차 사업으로 발전하는 과정을 거치기도 한다. 이는 개인의 노력과 시장 상황에 따라 장사가 체계적인 운영 시스템을 갖춘 사업으로 성장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혹여 프랜차이즈는 사업 아니냐고 반문하는 분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이 질문을 나도 많이 받았다. 그렇다. 프랜차이즈는 사업이다. 그 이유는 본사라는 운영 시스템이 각 지점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며 유통, 마케팅, 기획, 상품, 영업 등 각 부서별 유기적 체계에 따라 하나의 생명체 메커니즘 형태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프랜차이즈는 앞서 말한 대로 대표가 없어도 조직은 마비되지 않고 유기적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백종원도 장사꾼이 아닌, 사업가라고 하지 않는가? <돈의 속성>, <사장학개론>의 저자 김승호 회장 또한 사업과 장사의 차이를 책에서 설명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주목할 점은, 법률적으로는 사업과 장사를 엄격히 구분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세법이나 상법에서는 둘 다 영리 활동으로 보며, 규모나 형태에 따라 다른 기준을 적용할 뿐이다. 따라서 우리가 논의하는 사업과 장사의 구분은 주로 경영 전략이나 조직 운영의 관점에서 이루어지는 것임을 이해해야 한다.



이처럼 사업과 장사의 차이를 구분하는 것은 앞으로의 사업 전략 및 운영에 있어 매우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이는 스타팅 포인트를 명확히 아는 것이자, 나와 우리를 이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를 알고 너를 알아야 백전불태'라는 말이 있듯이, 자기 이해는 성공의 첫걸음이다. 나를 안다는 측면에서 사업과 장사 외에도 좀 더 넓은 시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창업을 준비함에 있어 '사업의 유형과 조직 형태'는 매우 다양하다. 영리 목적 사업, 비영리 조직, 사회적 경제 조직 등 여러 형태가 존재하며, 각각의 특성과 장단점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다양한 사업 유형과 조직 형태를 보다 명확히 이해하기 위해, 아래의 개요표를 준비했다. 이 표는 각 유형별 정의와 주요 특징을 간략하게 정리한 것으로, 자신의 목표와 가치관에 맞는 사업 형태를 선택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지금부터 이 개요표를 통해 다양한 사업 유형을 살펴보도록 하자.






우리는 지금까지 사업과 장사의 차이, 그리고 다양한 사업 유형과 조직 형태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러한 이해는 창업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매우 중요하다. 자신의 목표, 가치관, 그리고 역량에 맞는 사업 형태를 선택하는 것은 성공적인 창업의 첫걸음이 될 것이다.


창업은 단순히 돈을 버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자신의 비전을 실현하고, 사회에 가치를 더하는 과정이다. 따라서 창업을 고민하는 이들은 이 글에서 제시한 다양한 사업 유형들을 깊이 있게 고민해 보길 바란다. 그리고 그 고민의 과정에서 자신만의 독특한 창업 방향을 발견하길 희망한다.



[다음 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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