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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로 Oct 06. 2024

사업계획서의 역할: 외부 설득과 내부 소통의 도구

사업계획서의 성격과 속성에 관하여

에피소드


내가 30대 초반이던 2010년대 초, 30여 명의 팀원들과 IT서비스 분야에서 스타트업을 운영하던 때가 있었다. 여기서 나는 전략 기획과 서비스 운영을 맡아 내외부 조율을 책임졌다. 각 팀의 니즈를 조율하는 것만 빼곤, 회사 전반을 관제할 수 있다는 점이 나의 가슴을 뛰게 했다. 그러면서 외부로부터 투자 제안을 받아보기도 하고, 직접 사업계획서를 작성하여 제안해 보기도 했다. 그렇게 다양한 사업계획서를 접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시야가 조금씩 넓어졌다. 이후 많은 데이터를 축적하면서 민간 투자와 벤처캐피털(VC) 그리고 정부 지원사업의 사업계획서가 각기 다르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민간 시장의 사업계획서는 주로 PPT 형식으로 40~60페이지 분량으로 구성된다. 때로는 100~120페이지에 달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런 프레젠테이션 스타일의 문서는 마치 소개 제안서처럼 보인다. 이런 형식의 사업계획서를 받을 때면, 내가 오히려 을이 된 것 같은 느낌에 주눅이 들곤 했다. 아마도 그들의 그럴듯한 포장 때문이었을 것이다.


VC 투자자들에게 제안하는 사업계획서는 민간 영역과 정부 지원사업의 특성을 모두 아우른다. 그들은 가능성과 수익성이 예상되는 프로젝트를 내부 검토 후 투자한다. 나는 우연히 VC들이 선정한 사업계획서들을 살펴볼 기회가 있었는데, 그 속에서 몇 가지 공통점을 발견했다. 바로 진정성이 느껴지고, 고심의 과정이 솔직하게 드러나며, 고객의 니즈를 파악해 수익을 창출한 팀들이 주로 투자 대상이 된다는 점이었다. 특히 투자 규모가 클수록 리더와 조직의 역량, 즉 '그릇'을 중요하게 평가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이런 점들이 당연해 보일 수도 있지만, 실제로 많은 팀들이 이 기본적인 요소들을 간과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결국, "기본을 지키는 것이 오히려 가장 어려운 과제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드는 대목이다.


정부 지원사업을 위한 사업계획서는 행정적 특성이 강해 명확한 가이드라인요건을 따라야 한다. 정해진 문서 양식과 페이지 수 제한을 준수해야 하며, 서류 심사와 발표 심사가 별도로 진행되는 것이 특징이다. 또한, 기관마다 요구하는 양식이 조금씩 다르지만, 대체로 PSST(문제점, 설루션, 스케일업, 팀)의 4가지 항목을 중심으로 구성된다.




이처럼 사업계획서는 외부 대상에 따라 형태가 달라진다. 팀이 자금 확보를 위해 투자나 지원금을 받고자 할 때, VC나 정부 기관이 선호하는 요건에 맞춰 계획서를 작성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팀의 본래 원칙과 방향성이 조금씩 변형되거나 희석되는 경우가 있다. 때로는 본말이 전도되어 원래의 목적을 잃어버리는 경우도 발생한다.


이러한 현상은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딜레마다. 자금 확보라는 절실한 목표 앞에서 본연의 가치를 지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준다. 예를 들어, 사회적 가치 창출을 목표로 하던 스타트업이 투자 유치를 위해 수익성을 과도하게 강조하거나, 혁신적인 기술 개발에 집중하던 팀이 정부 지원금을 받기 위해 단기 성과에 치중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이는 단기적으로는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기업의 정체성과 핵심 가치를 흐릴 수 있는 잠재적 위험이 존재한다.


사업계획서는 흔히 외부 투자 유치를 위한 도구로만 여겨지곤 한다. 하지만 그 역할은 훨씬 더 넓고 중요하다. 외부 제안용뿐 아니라 내부 계획 문서로서의 기능도 크다. 내부적으로 사업계획서는 팀을 하나로 묶는 강력한 수단이 된다. 이를 통해 구성원들은 조직의 핵심 가치를 공유하고, 각자의 업무가 갖는 의미와 방향성을 확실히 이해할 수 있다.


더 나아가, 내부용 사업계획서는 조직 문화의 변화를 이끄는 촉매제 역할을 한다. 수동적이던 조직을 능동적이고 주도적인 집단으로 바꾸는 데 한몫하며, 모든 팀원이 앞으로 해야 할 일과 목표를 명확히 알게 해 준다. 실제 운영을 위한 철저한 계획을 담은 문서로서, 외부 제안과 내부 공유라는 두 가지 목적을 동시에 가진다고 볼 수 있다. 이런 다양한 기능을 고려해, 나는 사업계획서의 개념을 [그림 1]과 같이 새롭게 정의했다.


[그림 1]


사업계획서는 단순히 외부 상대에게 제안하는 역할에 그치지 않고, 내부 구성원의 원활한 운영을 위해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런 관점에서 나는 사업계획서를 '내부 가치'와 '외부 가치'로 구분해 도식화했다. 이것은 우리의 목표와 방향성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게 해 주었다.


나는 재구성된 사업계획서를 팀 구성원들과 공유했다. 그러자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각자의 역할과 전체적인 방향성을 이해하는 데 훨씬 수월해졌고, 특히 실무진들의 업무 추진력이 눈에 띄게 향상됐다. 이와 더불어 조직 분위기도 변화했다. 물론, 모든 구성원이 능동적으로 변한 것은 아니었지만, 대다수가 기존의 수동적 태도에서 벗어나 보다 주도적인 마인드를 갖게 된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이는 매우 고무적인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사업계획서가 단순한 문서를 넘어 조직 변화의 촉매제 역할을 한 것이니 말이다.


결국 사업계획서는 투자 유치를 위한 단순한 도구를 넘어, 조직의 나침반이자 팀원들을 하나로 묶는 접착제 역할을 한다. 대외적으로는 우리의 비전과 전략을 명확히 전달하고, 내부적으로는 모든 구성원이 같은 방향을 향해 나아가게 하는 핵심 도구다. 이를 통해 팀 구성원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전체 그림을 이해하며, 결과적으로 업무 효율성과 조직의 결속력이 강화된다.


이처럼 사업계획서는 외부 가치와 내부 가치를 동시에 지니고 있다. 외부적으로는 투자자나 파트너들에게 우리의 비전과 계획을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 도구이며, 내부적으로는 조직의 방향성을 정립하고 구성원들의 역량을 결집시키는 핵심 문서다. 이 두 가지 가치가 균형을 이룰 때, 사업계획서는 진정한 의미를 갖게 되지 않을까?





[다음 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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