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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유JiYou Jan 22. 2022

믿을 수 없는 이야기

<등장인물>

아드리앙 24세 : 다소 어리숙하지만 착하고, 사람을 잘 믿는다.

피에르 26세 : 영리하고, 건강하고 호기심이 많다.

수잔 26세  : 공부 벌레. 집념이 있다. 

호르당 박사 46세 : 많은 업적을 이뤄낸 과학자. 

학회장 60세 : 큰 일을 위해서는 희생도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남자 30대 : 학회장을 위해 일하고 있는 사람.

여자 30대 : 학회장을 위해 일하고 있는 사람.

기자 30대 : 호르당 박사의 마지막 이야기를 들어준다. 의심스럽고 말이 안된다고 생각하지만 끝까지 들어준다.





아드리앙 : (지치고 쇠약한 목소리로) 이제... 마실 물도 얼마 남지 않았어.. 우리..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피에르 : (역시 지친 목소리) 그런 나약한 말 그만해. 곧 여기서 빠져나갈 수 있을 거야.

아드리앙 : 난.. 이제.. 못 버티겠어..

피에르 : 가만.. 쉿.. 들어 봐.

아드리앙 : 뭐..?

피에르 : 저 돌에서 소리가 나..

아드리앙 : 우리가.. 저 돌 때문에.. 지금 여기에 있는 거잖아..

피에르 : 그러니까. 저 돌이 다시 우리를 원래의 자리로 되돌려 준다면... 우린 살 수 있을 거야.

아드리앙 : 가까이 가보자..


E. 둘이서 힘겹게 몸을 움직이는 소리


아드리앙 : 돌의 색깔이..

피에르 : 점점 푸른빛으로 변하고 있어..

아드리앙 : 이게 무슨 뜻일까..

피에르 :.. 곧.. 다시 작동을 한다는 의미인 것 같아..

아드리앙 : 돌이 다시 작동한다면.. 다시 온몸이 찢어지는 것 같은 고통을 맛봐야 하겠지?

피에르 : 그보다.. 이번엔 우리를 어떤 곳에 데려갈 건지가 더 문제일 거야..

아드리앙 : 난.. 집으로 가고 싶어..

피에르 : 어디든 여기보다 낫겠지.. 다시 한번 해보자. 준비됐어?

아드리앙 :.. 응.

피에르 : 자.. 손을 잡아.

아드리앙 : 조심해..

피에르 : 이제.. 돌을 잡을 거야..

아드리앙 : 아.. 제발.. 제발.. 집으로 데려다줘..

피에르 : 잡는다.. 하나... 둘..... 셋!

아드리앙, 피에르 : (괴로운 듯 비명을 지른다) 으악!


E. 신비한 소리. 이내 물방울이 똑똑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피에르 : 아.. 아드리앙.. 아드리앙! 아드리앙?

아드리앙 : 아.... 피에르.. 나 여기 있어..

피에르 : 괜찮아? (아드리앙을 살핀다) 아드리앙..

아드리앙 : 그런데 여긴.. 어디지?

피에르 : (한숨) 돌이 또 한 번 우리를 이동시켰어... 어딘지 모르겠지만.. 집은 아닌 게 확실해..

아드리앙 :.... 그래도.. 이젠.. (물가로 다가가며) 물 걱정은 없겠다.. (물에 손을 담근다) 여긴... 물이 있네.. (물을 손으로 떠서 벌컥벌컥 마신다)

피에르 : 그래 봤자 아까랑 똑같은 동굴 속이야.. 우리... 지옥에라도 떨어진 걸까..?

아드리앙 : 그럴지도.. 하지만 여기가 지옥이라면.. 사람이든 악마든 우리 죄를 심판하고 알려줄 누군가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사이) 그런데.. 그보다 저 돌은.. 저 돌은 대체... 뭐지?

피에르 : 이 돌을 처음 발견한 건 수잔이었어..

아드리앙 :.. 수잔..

피에르 : 수잔은.. 지금.. 괜찮은 걸까?

아드리앙 : 수잔이.. 우리를 찾으러 올 거야.... 제발...


E. 장면 전환 효과음


호르당 박사 : 그렇게 무리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닐세 수잔..

수잔 : 하지만 박사님, 저 때문에 제 친구들이 사라졌다고요. 벌써 3주가 지났습니다. 이제 곧 한 달째라고요.. 이건 제가 책임져야 할 문제예요.

호르당 박사 : 자네 정말.. 그 돌 때문에 그 애들이 사라졌다고 생각하나..?

수잔 : 박사님.. 어떻게 그런 말씀을 하실 수 있죠? 같이 보셨잖아요, 눈앞에서 그 애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걸요.

호르당 박사 : 아무리 그래도.. 이건 과학적으로 도저히 납득이 안 되는 얘길세..

수잔 : 세상에.. 그 당시 박사님도 저와 함께 목격하셨고, 함께 놀라셨잖아요. 그런데 갑자기 이렇게 돌변하신 이유가 뭐예요? 지난번에 학회에 다녀오신 이야기는 왜 안 해주시죠? 거기서 이 사실을 논의하신다고 하셨잖아요.

호르당 박사 : (당황하며) 흠.. 학회에서도.. 무언가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것이 사실이라네... 그보다 경찰 쪽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더...

수잔 : (흥분하며) 박사님! 경찰이라뇨.. 처음 이 사실을 경찰에 신고했을 때 그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대했는지 기억 안 나세요? 미친 사람 취급했잖아요! 그리고 이건... (말을 이으려다 잠시 흥분을 가라 앉힌다.) 우리 연구소에서 비밀리에 실험하던 물질이 돌에 묻어 생긴 일이잖아요. 돌에 물질을 묻힌 실수를 한 건 바로 저구요.

호르당 박사 : 그 연구는 이미 종결되었네. 이미 우리 쪽에 있던 자료나 실험물질들도 다 회수해 갔어.

수잔 : 그러니까요, 그걸 다시 돌려받아야 우리가 해결 방법을 찾아볼 수 있을 거 아니에요!

호르당 박사 : 이미 우리 손을 떠난 걸 어떻게 다시 돌려받나?

수잔 : 그렇다고 이렇게 넋 놓고 있을 수는 없잖아요, 박사님! (울먹인다) 제발요... 학회에서 있었던 일을 말씀해 주세요.. 왜 그 연구자료들을 싹 다 가져갔는지 설명해 주세요...

호르당 박사 : (안타까워하며) 수잔.. 자네의 마음을 모르는 게 아니네.. 나도.. 그 애들을 다시 찾고 싶어.. 하지만.. 애초에 그 연구는 터무니없었네.. 시간과 공간을 이동할 수 있게 해주는 물질을 연구한다는 것이.. 처음에는 나도 가슴이 뛰었지. 하지만 그건 그냥 무모한 시도였어. 나는 이제 다시는 그 연구에 참여하고 싶지 않네..

수잔 : 하지만 박사님, 만약에.. 만약에 우리가 성공한 거라면요?

호르당 박사 : 뭐라고?

수잔 : 아드리앙과 피에르가.. 시간이나 공간을 이동한 거라면요?

호르당 박사 : 수잔!...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네.

수잔 : 박사님!



E. 삑 삑 삑 하는 기계 소리


남자  : 현재 실험대상자 두 명이 다시 공간 이동을 시도했습니다.

학회장 : 이번에 이동한 곳은 물이 있는 곳이로군..

남자 : 예.

학회장 : 흠.. 여기서는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 그들의 바이탈은 어떤가?

여자  : 둘 다 수분 부족으로 탈진상태였으나 현재 바이탈 정상으로 돌아왔습니다.

학회장 : 공간을 이동할 때의 피지컬 대미지는?

여자  : 순간적인 고통과 스트레스를 입었을 뿐 곧 빠르게 회복되었습니다.

학회장 : 흠... 식량은 충분한가?

남자  : 현재 달팽이와 습지에 서식하는 식용 풀들은 아직 발견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발견하고 약 3주 정도 소비할 수 있을 정도로 양은 충분합니다.

학회장 : 지난 공간에서는 벌레들을 먹었다고 했지?

남자  : 네 그렇습니다.

학회장 : 소화 능력이나 신체 반응은?

여자  : 정상입니다.

학회장 : 흠.. 역시 인간이란.. 끈질기고 강인한 존재였어.. (사이) 이제 공간 이동은 우리가 원하는 대로 지정할 수 있는 건가?

남자  : 여러 번의 실패 끝에 드디어 조정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한번 움직이면 다음 공간으로 움직일 때까지 약 3주 정도의 준비 시간이 필요합니다. 이것 또한 실험을 통해서 시간이 짧아질 것으로 보입니다.

학회장 : 그래. 이 정도면 눈부신 결과지.. 그동안 인간의 몸이 버텨내지 못해 이동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남자  : 그렇습니다. 주사로 물질을 주입하는 것보다, 돌과 같은 매개체를 잡고 이동하는 것이 인간의 몸에 무리가 덜 가는 것 같습니다.

학회장 : (혼잣말) 그 어린 연구원이 아주 커다란 공을 세웠어.. 물론 자신의 실수가 이렇게 오랜 시간 골치였던 문제를 해결했다는 건 전혀 모르고 있겠지만 말이야.. (남자 직원에게) 아.. 아직 시간을 이동하는 것은.. 역시 무리인가?

남자 : 그건.. 실패한 것 같습니다.

학회장 : 흠...



E. 장면 전환


아드리앙 : 피에르..

피에르 : 왜?

아드리앙 : 너는.. 우리가 살면서.. 달팽이를 산 채로 잡아먹을 줄.. 알았냐?

피에르 : 몰랐지.. 상상도 못 한 일이야..


E. 물방울이 똑 떨어진다.


아드리앙 : 그런데.. 우리가.. 저 돌을 만질 때마다.. 공간 이동을 하고 있잖아..

피에르 : 그렇지.. 믿을 수 없지만 그러고 있는 것 같아.

아드리앙 : 그러면.. 언젠가는.. 이곳을 벗어나 다른 곳으로도 이동할 수 있다는 얘기가 돼.

피에르 : 그렇지.. 그렇다면.. 언제가는..

아드리앙 : 우리가 원래 있던 곳으로 갈 수 있게 되지 않을까?

피에르 : 글쎄.. 하지만 돌이 다시 평범한 색으로 돌아왔어.. 만져도 아무 반응이 없어.. (일어서며) 난 여기서 나갈 수 있는 출구가 있는지 좀 보고 올게.

아드리앙 : 좀 전에도 다녀왔잖아.. 사방이 막혀 있고 계속 같은 곳만 돌고 있는 것 같다며..

피에르 : 그랬지.. 이번엔 표시를 하려고..

아드리앙 : 무슨 표시?

피에르 : 뭔가 특이한 지점이 있어서..



E. 더듬대며 걷는 소리


피에르 : 여기다. 항상 여기에 오면 습도가 변하는 느낌이야.. 뭔가 건조하고 따뜻해.. 마치 이 벽 너머에 다른 세상이 있는 것처럼.. 저번에 있었던 동굴에서도 이런 곳이 있었지.. 유독 건조하고 따뜻한.. (주위에 뾰족한 돌을 집어 드는 호흡) 여기에다 표시를 해 두어야겠다.






E. 달그락 거리며 분주하게 이것저것 섞는 소리


수잔 : 이건 분명 내가 연구 물질을 돌에 묻혀서 생긴 일이야.. 그 물질을 되돌려 받지 못한다면 내가 다시 만들어내야 해. 샘플을 갖고 있었던 것이 다행인데.. 양이 너무 작아.. 어서 이걸 분석해서 다시 만들어버릴 거야. 그리고.. 그리고 그다음엔.. 그다음엔 어쩌지...  


E. 장면 전화. 호르당의 사무실.


호르당 박사 : (한숨) 이걸.. 어쩐다.. 아드리앙과 피에르가.. 이미 오래전부터 계획된 실험 대상자라는 걸 이제라도 수잔에게 말해줘야 하나.. 아니야.. 그 아이는 견디지 못할 거야.. 지금도 자기의 잘못으로 그 아이들이 사라졌다고 생각하는 걸.. 학회에서도 이 일은.. 비밀로 하라고 했고..


E. 전화벨이 울리는 소리. 받는 소리.


호르당 박사 : 네 학회장님.. 아닙니다. 네, 제가 잘 달래고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동안 연구하던 물질이 성공했다고 의심하고 있는 건 사실입니다. 아, 아닙니다, 제가 잘 설득해보겠습니다. 네.. 그렇게까지 하지는 않을 겁니다. 제가 틀림없이 그런 일이 없도록 만들 테니까.. 수잔에게.. 조치를 취하지는.. 않아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실험 대상자 14호와 15호는.. 지금.. 무사합니까?



E. 물이 똑 똑 떨어진다.


아드리앙 : 피에르.. 우리가 처음 알게 된 때.. 생각나?

피에르 : 시스테론에서 였잖아..

아드리앙 : 그래.. 시스테론.. 그리고.. 우리가 수잔을 처음 만났을 때가..

피에르 : 시스테론에서 알게 된 호르당 박사님 따라서 대학 연구소에 놀러 갔을 때지..

아드리앙 : 호르당 박사님 연구실 학생이었지?

피에르 : 응.. 수제자였지.. 연구하던 게 거의 끝나가고 곧 학회에 정식 직원이 된다고 했었는데..

아드리앙 : 그런데.. 왠지.. 우리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는 거 같지 않아?

피에르 : 너도 느꼈어?

아드리앙 : 당시엔 몰랐는데... 지금 여기 와서 생각해 보니까... 의심이 가는 게 몇가지 있어서. (사이) 수잔과 호르당 박사님이 연구하던 게.. 뭐였는지 우린 모르지 않아?

피에르 : 새로운 물질을 연구하고 있고, 오랜 시간 실패만 해서 곧 종결될 거라고만 했었지.

아드리앙 : 그런데... 그게.. 어떤 물질인지는 말해주지 않았지?

피에르 : 그랬지. 비밀리에 진행되는 연구라고 했잖아.

아드리앙 : 아무래도 우리.. 그 연구에 휘말린 거 같아..

피에르 :.. 그게.. 무슨 소리야?

아드리앙 : 우리가.. 그 연구의 실험 대상이 된 것 같다고.



E. 장면 전환. 기계들이 삑삑 거린다.


여자 : 회장님, 중앙 연구소 비밀 데이터에 접근 시도가 여러 차례 있었습니다. 수잔 폴캉 이라는 이름의 임시 연구원입니다.

학회장 : 예상했던 일이네. 당연히 접근 불가라 아무것도 유출되지 않았겠지?

여자 : 네. 그렇습니다.

학회장 : 일단 두고 보게. 하지만 계속 시도하는 것이 보인다면.. 그냥 두어서는 안 될 걸세.

여자 : 그.. 말씀은..?

학회장 : 연구소에서 내보내야지. 아까운 인재지만.. 이번 일에 너무 깊숙이 연관되어 있어. 거기다, 냉정한 인물이 못 되니 잘못하다가 일을 그르칠 수도 있어.

여자 : 하지만 호르당 박사의 수제자라고 합니다.

학회장 : 호르당 박사도 요주의 인물로 잘 감시하게. 안 그래도 그 수잔이라는 학생 때문에 마음이 약해지고 있는 모양이야. 실험 대상자를 데려오는 일로 이미 지친 듯 보이더니. 실험이 실패를 거듭할수록 마음이 약해지고 있는 게 사실이야. 이번에 데려온 두 실험 대상자도 마지막이라고 하고 데려왔지. 그런데 막상 성공하니 더욱 나락으로 떨어지는군. 이제 정말 다 되었는데 말이야... 쯧쯧쯧..



E. 어둡고 신비로운 음악. 얼마간 흐르다 장면 전환 효과음



수잔 내레이션 : 그 애들이 사라진 지... 벌써 1년째.. 나는 연구소에 정식 연구원이 되지 않고 퇴학을 했지.. 그리고 지금까지 나는 혼자 그 연구를 계속해 나가고 있다. 의도치 않게 보관하고 있던 샘플 덕분에 나는 그 의문의 물질을 복구하는 데 성공했어. 하지만.. 이제.. 어떻게 한다... 이걸 다시 돌에 묻혀보면 어떨까.. 그러다 나도 사라지면.. 그 이후엔 누가 우리를 구하지? 그런데 만약.. 내가 시간이나 공간이동을 한다면.. 나는 그 애들과 같은 장소, 같은 시간으로 이동할 수는 있는 걸까? 그 애들은 정말.. 시공간을 이동한 걸까? 만약 그때 그 연구가 성공했던 것이라면.. (한숨)... 역시 중앙 데이터에 접근을 해야만 해. 누군가는 분명히 자료를 가지고 있을 거야. 실패를 한 경우나 만약 성공했을 경우에도 거기에 따른 자료가 분명히 기록되어 있을 거야.. 하지만.. 어떻게 그 자료를 볼 수 있을까.. 호르당 박사님.. 박사님은.. 그 자료를 볼 수 있는 권한이 있을까...?


E. 무건운 장면 효과음


호르당 박사 : 아니, 수잔.. 이 시간에 웬일인가?

수잔 : 박사님.. 도와주세요.

호르당 박사 : 자네.. 아직도 그 일에 매달리고 있는 건가?

수잔 : 물질을 복구하는 데 성공했어요.

호르당 박사 : 뭐라고?

수잔 : 샘플을 갖고 있었어요. 지난 1년.. 그걸 복구하는데 모든 걸 걸었었죠.

호르당 박사 : 세상에..

수잔 : 이젠.. 말해주세요 박사님. 그 연구가.. 성공한 거죠?

호르당 박사 :... (한숨)

수잔 : 그 애들.. 지금 시공간을 이동하고 있는 게 맞죠?

호르당 박사 :.. 미안하네 수잔.. 나는.. 아무것도 얘기해 줄 수가 없네..


잠시 정적.


수잔 : (결심한 듯) 안녕히 계세요, 박사님.

호르당 박사 : 수잔.

수잔 : 만약 제가 사라진다면.. 박사님이.. 저를 찾아주실 거라고.. 믿겠습니다. 그럼..

호르당 박사 : 수, 수잔! 그게 무슨 말인가, 수잔!



E. 빠른 음악. 장면 전환.


E. 달그락 거리는 소리


수잔 : 하..(무언가를 애쓰는 호흡. 잘 안돼서 실망하는 호흡) 아.. 씨.... 왜 안 사라지는 거지...? 그때와 마찬가지로 돌에 물질을 묻혔는데... 뭔가.. 뭔가 이상해...


E. 달그락 거리며 어수선한 소리. 곧이어 쨍그랑하고 깨지는 소리


수잔 : 앗, 내 충전기! (E. 신비로운 효과음) 어, 어어! (괴로운 듯 비명) 아, 꺄악!


E. 차분하고 몽환적인 음악


아드리앙 : (멀리서 들려오듯) 저.. 저기요, 정신 차려요! 저기요, 내 말 들려요? 저기요!

수잔 : (머릿속 생각) 어디서 많이 듣던.. 목소린데.. 여기... 가.. 어디지?

아드리앙 : 어, 눈 떴다. 저기요, 저기요, 저 보여요? 정신 차려 봐요.

수잔 : 아... (나지막한 신음)

아드리앙 : 정신이 좀 들어요? 길바닥에 쓰러져 있던 걸 제가 발견했어요.. 빈혈이 있으신가 봐요.. 걸을 수 있어요? 병원에 데려다 드릴게요.

수잔 : 아... (정신이 들고 화들짝 놀라며) 아, 아드리앙?

아드리앙 : 네? 아니.. 절.. 아세요?

수잔 : (아드리앙에게 와락 안기며) 아드리앙! (울먹인다) 너 괜찮은 거야? 살아있었구나... 그럼 피에르는? 피에르는 어딨어?

아드리앙 : 피에르? 그게 누구예요?

수잔 : 어? 피에르를.. 몰라?

아드리앙 : 몰라요.. 아니, 근데.. 아가씨는.. 나를 어떻게 알죠? 내 이름을.. 어떻게..?

수잔 : (당황하며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아니...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여기 어디야..?

아드리앙 : 여기요? 여긴 시스테론 광장이에요. 멀지 않은 곳에 인체 공학 연구소가 있는데, 그 안에 병원이 있어요. 마침 그 연구소에 가던 길이었는데.. 그 병원으로 데려다 줄게요. (힘주며) 자, 일어나 봐요.

수잔 : 시스테론이라고요? (부축을 받고 일어서는 호흡) (혼잣말) 시공간을 여행할 수 있게 해주는 물질에 대한 연구를 시작한 첫 번째 연구소가 있던 곳이야.. 3년 전 폐쇄되고 내가 다니던 대학 연구소로 옮겼었지. 그런데.. 왜 내가 여기에..

아드리앙 : 저기요..? 괜찮.. 아요?

수잔 : 지금이 몇 년도죠?

아드리앙 : 네?... 2042년이요.. 왜 그러세요? 혹시.. 기억.. 상실증? (혼잣말) 하.. 이거 어떡하지?

수잔 : (혼잣말) 2042년이라.. 난 2045년을 살고 있었는데.. 그렇다면 나는... (자기도 모르게 큰 소리로) 시간과 공간을 동시에 이동한 거야!

아드리앙 : (혼잣말) 이 여자.. 머리를.. 많이 다친 거 같아...




E. 장면 전환 호르당의 사무실


호르당 박사 : 이런... 수잔 마저 사라지다니.. 하지만 수잔에게는 위치 추적기와 바이탈 측정기가 주입되지 않았어.. 그건 실험 대상자들에게만 몰래 주입되었던 것들이라.. 아... 이젠 정말 어떻게 한다..



E. 장면 전환. 병원. 30년이 더 흘렀다.


기자 : 박사님.. 지금 말씀하시는 것이.. 언론에 공개되면.. 박사님이 그동안 이뤄내신 업적이.. 빛의 입자를 추출하여 물질화시킨 그 위대한 업적에.. 누를 입게 될 것입니다.

늙은 호르당 박사 : 상관없네.. 이제라도 밝힐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하네..

기자 :.. 알겠습니다. 그럼.. 계속해 주시죠. 녹취하고 있습니다.

호르당 박사 : 흐음.... 어디까지... 얘기했더라.. 응.. 그래.. 거기서부터 다시 얘기하지.. 처음 내가 시간과 공간을 이동할 수 있게 해주는 물질을 연구하는 것에 참가하게 되었을 때 말이야.. 그땐 나도 가슴이 뛰었다네. 무척 설레었지.. 처음 아인슈타인이 상대성 이론을 제시하며 시공의 왜곡을 직감했을 때, 모두 터무니없는 얘기라고 했었지. 하지만 결국 그의 말이 옳았다는 것이 그가 죽은 이후에 증명되었잖나.. 그 왜곡에서 우리는 시간과 거리의 차이에 따른 시각적 차이도 발견했네. 더불어 중력은 물질과 시공의 왜곡 그 자체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 하지만.. 아인슈타인은 양자역학을 신뢰하지 않았어.. 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 모두를 발견한 그가 말이야.. 그것은 양자역학이 가지고 있는 우연과 불확정성, 확률의 개념을 아인슈타인이 싫어했기 때문이지. 그 시대의 물리학으로는 양자의 위치와 운동량을 예측할 수 없었거든. 물론 아직까지도 그 입자의 움직임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 하지만 끊임없이 그것을 연구하던 우리는.. 결국 빛이 입자인 동시에 파동인걸 알아냈네. 비로소 빛의 움직임을 공식화할 수 있었던 거야. 아인슈타인도 신뢰하지 못한 그 양자역학을 확실하게 증명시킬 수 있는 날을 눈앞에 두고 있었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빛의 입자를 추출하는 데 성공했고.. 그렇게 마침내.. 그 물질을 만들어내고 만 거지.. 빛을.. 액체화 시킨 그 물질.. 우린 드디어 양자의 불확실성에서 벗어나 구체적인 움직임을 확인할 수 있을 거라 믿었어.. 그렇게만 되면.. 시간뿐만 아니라 공간, 즉 과거와 미래 어디든.. 우리는 이동할 수 있을 거라 믿었네!... (사이) 하지만 결국.. 결국 우린 실패했었어... 게다가.. 실험을 거듭하는 와중에.. 많은... 희생자가 생겨났지.. 우리는 비밀리에 실험 대상들을 모았고.. 그들은 모두... (힘겹게 울음을 터트린다) 실종되거나... 죽었지...

기자 : (무슨 영문인지 모른다) 세상에... 이게 도대체... 그러면 그동안 실종된 사람들이..!

호르당 박사 : 그 연구에 참여한 우리는... 모두..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었다네.. (감정이 격해져 운다.) 하지만 수잔은 아무것도 몰랐어.. 나는 그 아이에게 많은 것을 숨겼고.. 그건 그 아이를 지키기 위함이었어... 그런데 그 아이마저... 사라졌었지... (잠시 거친 숨을 고르고 감정을 추스른다.) 13번째 희생자가 발생했을 때 우린 단념했었네. 그 물질은 그저 빛을 액체화한 것일 뿐이었고 이미 그것만으로도 경이로운 발견이었지만.. 우리는 모두 실망을 금치 못했어.. 그런데 수잔이.. 내 애제자가... 그 물질을 실수로 돌에 떨어뜨렸고.. 그 돌은.. 왠지 모르지만 반응을 했어.. 실험 대상자 14호와 15호였던 아드리앙과 피에르가 예고치 않게 그 돌을 만지자마자 갑자기 눈앞에서 사라져 버린 거야.. 나는 그들이 어디론가 이동했다는 것을 직감했지. 중앙 연구소로 물질의 반응이 감지되었고, 우리는 그동안 준비했던 모든 것들을 작동시켰다네.. 실험 대상자들의 움직임과 바이탈을 살폈고.. 그들이 어디로 이동할지를 미리 정하고 그곳으로 보낼 수가 있었지..  하지만.. 우린 무엇 때문에 그 돌이 물질과 반응한 건지 알아내지 못했어.. 그리고 결국 자신들도 모르게 실험에 참가한 아드리앙과 피에르는 세 번째로 이동한 곳에서 생을 마감했어.. 1년 후.. 수잔이 실종되었고.. 지금까지도.. 수잔은... 돌아오지 않고 있다네... 그것을 끝으로 모든 연구가 결국.. 정말로 종결되었어..

기자 : 이 엄청난 사실을... 지금 발표하시는 이유가 뭡니까..?

호르당 박사 : (무언가에 홀린듯) 수잔이.. 수잔이 찾아왔기 때문이네..

기자 : 네? 방금 전에 그분은 지금까지 돌아오지 않았다고..

호르당 박사 : 수잔은 돌아오지 않았지.. 아니. 수잔의 육체는 돌아오지 않았지만... 나는.. 수잔이 남긴.. 메시지를 받았다네...

기자 : 뭐라고요?

호르당 박사 : (점점 정신을 놓는 듯이 흥분하며) 수잔은... 지금까지도 계속 시공간을 이동하고 있네. 내가 자네에게 증명을 하여 보여줄 수가 없다는 것이.. 안타깝지만.. 나는 알고 있네..

기자 : 뭘 말씀입니까 박사님?

호르당 박사 : 그 돌... 실종된 아드리앙과 피에르가 가지고 공간을 이동한 그 돌이.. 바로 이 돌이네.. (서랍을 달그락대며 여는 소리)

기자 : 그.. 돌이.. 그때 그 돌이라는 겁니까?

호르당 : 내가 이 요양병원에서 지내게 되었을 때 내가 가져온 소지품 중에 이런 건 없었네. 기록을 보면 알 수 있을거야. 그런데 며칠 전 이 돌이.. 내 침대 옆 탁자 위에 놓여있었지..

기자 : 에이.. 박사님.. (박사의 어의없는 행동을 안타까워하며) 이런 돌은.. 너무 흔하게 발견되는 돌이잖아요..?

호르당 박사 : (힘이 다 빠져서 지친 목소리로).. 믿거나 말거나.. 이제 나는 자네에게 모든 걸 이야기했으니.. 나머지는.. 당신의 몫일세..

기자 : (혼잣말) 이 노인.. 정신을 놓은 것이 아닐까.. 아니, 이런 말을... 누가 믿을 수가 있겠어..?





E. 장면 전환


수잔 : 저기.. 지금 어디로 간다고요? 시스테론 인체 공학 연구소요?

아드리앙 : 네.. 그런데요?

수잔 : 거길.. 왜 가는 거죠?

아드리앙 : 뇌과학 실험 지원자로 가는데요.

수잔 : 뇌과학 실험 지원자?

아드리앙 : 네. 새로 연구한 물질을 몸에 주입했을 때 뇌파의 움직임을 보는 실험이에요. 몸에는 전혀 유해한 물질도 아니고 실험에 참여하면 꽤 큰 보수를 지급한다고 해서 자원했죠... 마침 나이와 신체 조건이 딱 맞아서 다행이지 뭐예요.

수잔 : 하... (기가 막혀한다)

아드리앙 : 그런데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저기.. 아까 쓰러진 건 괜찮아요?

수잔 : 새로 연구한 물질이 어디에 쓰일지는 알아요?

아드리앙 : 아.. 정확히는 모르고.. 미래를 위해 중요한 거라는 건 알고 있어요. 인체 공학 연구소에서 자주 이런 실험을 하는데, 절대 위험한 건 아니에요. 다 알아보고 하는 거예요. 찾아봤는데 한 번도 그런 위험한 사례가 없었... O.L.

수잔 : O.L. 가지 마요.

아드리앙 :.. 네?

수잔 : 그거 하면.. 당신.. 죽어요.

아드리앙 : 네?

수잔 : 제발.. 제 말을 믿어주세요.

아드리앙 : 아니.. 저기..

수잔 : 저는 수잔이라고 해요. 수잔 폴캉.. 그리고 그쪽은.. 아드리앙 프라데 죠.

아드리앙 : 아니.. 아까부터 이상했는데.. 제 이름은 어떻게 알죠?

수잔 : (애써 태연하게) 어디 가서 얘기를 좀.. 해요. 커피 한잔 사주시면.. 다 얘기해 드릴게요.

아드리앙 : 아.. 지금, 약속시간이 다 됐는데..

수잔 : (다급하게) 거긴 가면 안된다니까요! (두리번거리다) 저기, 저기 보이는 커피숍으로 가요. 얼른요. (아드리앙을 잡아 끈다)

아드리앙 : (버티며) 아, 도대체.. 어떤 얘기를 하려고 그럽니까?

수잔 : (멈춰서 정색하며 비장한 말투로).. 당신이.. 절대로 믿을 수 없는... 이야기요.




E. 긴장되는 음악. 엔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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