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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낮 May 24. 2024

생의 에너지

너는 얼마나 아득바득하는가

최근에 아버지는 여든 넘어 난생처음 입원하고 수술을 받았다. 그 과정을 거치는 며칠 동안 나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아버지가 마치 병원 치료가 낯선 어린아이처럼 치료를 무서워하고, 의료진과 가족에게 화내고 짜증 내고 생떼를 부렸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처지고 슬퍼하는 유형의 환자가 아니다. "이런 거 안 해도 나는 충분히 나을 수 있다"라고 주장하는 환자다. 심지어 그게 아니라면 "병원에서 꼼짝 못 하고 시키는 대로 있느니 그냥 죽겠다"라고 하셨다. 인지 능력에 전혀 문제가 없는데 막무가내로 나오니 정말 답답했다. (자식들 누구도 아버지와 제대로 소통할 수 없었다. 어린이집 교사로 있는 언니가 그나마 아버지를 설득할 수 있었다.)


아직 입원해 치료받고 계신다. 다행히도 위험한 상황을 한 단계씩 잘 넘어가고 있다. 의사는 아버지가 왼쪽에 편마비가 와서 일부 기능이 온전하지 않다고 했다. 힘 세기가 다를 거라고. 의사가 나간 뒤 나는 아버지의 왼손을 꼭 붙잡고 아버지더러 세게 잡아보라고 했다. 그런데 아악 소리가 나올 만큼 힘이 셌다. 며칠 째 식사를 못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의료진에게 그토록 협조를 안 하고 단계마다 힘들게 하면서도 아버지가 나아지는 건 어쩌면 '생떼의 정신' 덕이 아닐까. 목숨 생각대로 하겠다며 아득바득 우기는 정신. 어쩌면 정신이 아버지를 회복하게 한 생의 에너지가 아닐까. 아버지는 실제로 니들 맘대로 하느따지느라 우울할 틈이 없었다. 


요 며칠 나는 우울했다. 아버지의 수술 때문에 마음을 졸였고, 입사지원한 곳에서는 불합격 연락을 받았다. 

늦어도 내년부터는 풀타임으로 일할 계획이다. 그러니 지금부터 적당한 곳을 찾고 도전해야 한다. 5월에 들어서 외주 일이 잠잠하니 지금이 적기다. 계획은 확실한데 마음은 좀 복잡했다. 일자리를 찾다 갑자기 진로를 고민하는 학생의 처지가 된 것이다. 지원은 자유니까 맥락 없이 여기저기 기웃거렸다. 출판사 판권 밖으로 나와 새 일을 찾은 편집자들 사례를 찾아보면서. 그러다 한 곳으로 방향을 정했다. 


경력과 관련이 있지만 조금은 새로운 업무에 도전했다. 서류 합격 연락을 받았다. 그러나 합격의 기쁨은 며칠뿐, 여지없이 면접 탈락의 씁쓸함이 찾아왔다. 평소 면접 울렁증이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별 이슈가 없었기 때문에 아마도 서류에서 간신히 붙었다가 결국은 떨어진 듯하다. 여기까지는 이성의 판단이다. 불합격 통보는 나를 움츠러들게 했다. 지난 경력을 살펴보니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이 정도로는 안 되겠지 싶고 자꾸 조급한 마음이 들었다. 결국 또 방향을 잃었다.



흘러가는 대로 두지 말고 아득바득해 보자. 

아득바득-하다:「동사」 몹시 고집을 부리거나 애를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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