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온 Mar 03. 2024

사람은 사람 덕분에 삶을 살아간다.

마늘 파종 봉사 후기

작년 가을날 썼던 글을 브런치에 담아본다.

이른 아침 따릉이를 타고 도림천을 지나가면 물기를 머금은 풀내음이 좋다. 계절이 바뀌는 내음이 기분 좋았다. 티 없이 맑은 하늘을 보니 영락없이 가을이었다.


렌트한 듯 보이는 유치원 봉고차에 "뿌리 깊은 나무"라는 문구를 보니 푸르른 잎새에 올라간 하얀색 깃털이 달린 "희망꼬리"라는 이름을 가진 새를 상상해 보게 된다.

(Mbti) St 그룹들 사이에서 n의 망상이랄까?

쫑알쫑알 이런저런 상상들을 이야기하니 특이한 상상을

하는 신기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봉사를 위해 토요일 아침부터 사람들이 부지런히 모였다.

어릴 때 농촌 봉사를 갔던 추억들이 새록새록 떠올라 차에

올라타는 것만으로 여행을 온 듯 설렘이 한가득이다.


급식 반찬의 지분을 책임져 줄 마늘들 흙 속에 깊숙이 잘 심어져 마늘들이 무사히 겨울을 보낼 수 있기를 마음속으로

기원한다.


"마늘아.  훗날 모진 겨울이 왔을 때 잘 이겨내고 잘 자라주렴. "


그렇게 마늘을 심으며 "마늘 쏙쏙~~"자체 플리 노동요를 불러본다.

꼼꼼히 파묻으려고 하다 보니 행동이 굼벵이처럼 영 굼뜨다.

마음은 후다닥 이미 일을 끝냈는데 손이 느려 시간이 영 오래 걸린다.


비닐 사이사이 구멍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두더지 잡기 게임'이 떠오른다. 자연은 영감의 원천인 건지 끊임없이 엉뚱한 드립이 나오고 이것저것 상상을 하게 만든다. 푸르른 풀을 보고 흙을 밟는 것 만으로 이 시간이 즐거워 힘들지만 웃음꽃이 끊이질 않는다.


마늘 파종을 하면서 느낀 건 쪼그려 앉고 땡볕에서 버티는 자세는 스쾃 100개 하는 것보다 힘들다는 것이다. 차라리 18km 둘레길 걷기를 하고 등산을 하고 무게를 치는 게 훨씬 쉽다. 정오에 뜨거운 태양을 마주하니 땡볕에 어르신들이 일하다 쓰러지시는 것이 이해가 된다.


서울 토박이인 나는 어릴 때 시골에 내려가서 농사를 짓고 미술 선생님이 되는 잔잔한 삶을 꿈꿨었는데..

일손이 모자란데 손이 느린 나를 보며 직업을 농부로 선택했다면 영 쉽지 않았겠다. 는 생각이 든다.


밭일을 하면 날씨의 변화를 예측할 수 없기에 농부들은 하늘에 일을 맡기는 듯하다. 그렇게 인간이 할 수 없는 영역의 한계를 깨닫고 어딘가 삶에 초연하고 유연한 자세를 갖게 되는 것 같다. 자연에 가까운 생활을 하다 보면 삶 속에 적용할 많은 지혜들을 배우게 된다.


마늘 파종을 하면서 마음과 몸이 따라주는 건 확실히 다름을 느낀다. 꼼꼼하게 천천히 지식을 배우고 전달하는 건 자신 있었는데 같은 자세로 단순 반복 노동을 빠르게 수행하는 건 어려웠다.


흙과 풀, 자연이 좋아 취미 텃밭은 가능하겠지만 직업을 농부로 가지는 건 좀 힘들겠다. 자연이 좋지만 필라테스 강사를 업으로 선택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농부들이 새삼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의 노고로 인해 일상 속에 밥을 먹고 또 삶을 살아갈 수 있으니 사람은 절대로 홀로 살 수 없음을 느낀다.

사람은 사람 덕분에 또 삶을 살아갈 수 있다.


더불어 사는 삶과 지속 가능한 삶은 무엇인가?

내가 일상 속 적용할 점들은 무엇일까?

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집에 가는 길 이런저런 사색에 잠기고 일상 속 밥 한 끼의

소중함을 느낀다. 낮에 공연 연습 때문에 끝난 후 같이 밥을 못 먹고 나왔다. 사실 2차가 더 궁금한데 스케줄이 있어서

함께 못한 게 아쉬움이 남는다.


예쁜 하트 백설기와 시원한 물, 포도 한 송이와 이색 체험,

함께 한 사람들 덕분에 할 때는 힘들지만 뿌듯함, 행복감을 충만하게 느끼고 간다.


내 직업으로 경험해 볼 수 없는 것을 해보는 것, 의미 있는 일을 통해 다른 직업을 체험해 볼 수 있는 것은 즐거움이다.

그래서 과거 연기를 전공하고 연기를 좋아했었구나. 를 다시금 느끼게 된다.


노부부 두 분이서 3~4일간 할 일을 여럿이서 모이니

하루 만에 끝낼 수 있었으니 함께 하는 힘은 정말 컸다.


자연을 볼 때마다 능력이 있다면 한적한 시골로 내려가 잔잔하고 평온한 삶을 살고 싶단 생각을 했었다.

돈을 벌고는 싶지만 큰 성공에는 욕심이 없고 성격 기질적인 측면으로는 자신을 성찰하고 지식과 본질을 탐구하고 깊게 사색하는 수도승이 적성에 잘 맞을 것 같단 생각이 든다.

하지만 절간, 수녀원에 들어가 통제하는 삶을 살기에는 역시 난 세상에 하고 싶고 배우고 싶은 게 너무 많았고 자유롭게 꿈을 꾸는 사람이었다.


난 착하진 않지만 선을 택하고 싶은 한 사람으로서 선을 실천하는 분들을 보면 삶의 의미를 느끼며 따스한 힘이 되곤 한다. 선을 택하는 사람들은 빛나고 멋있다. 그런 삶을 본받고 싶고 나도 그런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고 싶다.

이전 06화 그냥 내비치면 되는 거였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