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의 개신교 교회

by 히다이드

런던은 성공회가 국교인 나라여서 개신교 교회는 없는 줄 알았다. 그런데 인터넷에서 ‘evangelical church’로 검색해 보니 은근히 많은 개신교 교회가 있었다. 구글의 지도 서비스에 표시되는 수십 곳의 교회 중에서 어디를 가야 하나 고민하다 런던 중심부의 한 교회와, 찰스 스펄전이라는 유명한 개신교 목사가 담임했던 교회 두 곳을 방문하기로 했다. 오전에 방문했던 교회는 미국식의 자유분방한 분위기의 교회였다. 예배실 밖의 포스터에서 "I felt guilty but he showed me forgiveness"라는 문구를 보는데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



이 교회의 예배 형식은 한국의 젊은 층을 대상으로 하는 예배와 비슷했는데, 밴드가 주도하는 현대적 스타일의 찬양 시간이 제일 마음에 들었다. 한국에서 매주 예배를 드릴 때는 몰랐는데, 네덜란드와 독일에서 다소 건조한 느낌의 예배만 드리다 한 달 만에 처음으로 이런 형식의 예배를 드리니까 땡볕 아래서 시원한 물 한잔을 마시는 것 같았다. 목사님의 설교는 역시나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나마 영어라 가끔 아는 단어들이 나왔지만 내 영어 실력으로는 따라가는 게 힘들었다. 자리에 앉아 마음의 평안만 얻었다. 이 교회는 예배 후 순서까지 한국식이었다. 한국 교회처럼 공짜로 점심 식사를 제공했는데, 암스테르담이나 함부르크에서 방문한 교회들처럼 커피에 쿠키 몇 개를 먹으며 담소만 나누는 게 아니라 생선가스에 콩, 감자튀김, 후식으로 아이스크림까지 나오는 훌륭한 한 끼 식사였다.



교회에서 만난 한국인 부부가 생각난다. 예배를 마치자 어떤 외국분이 다가오셔서 이런저런 얘기를 같이 나눴는데, 이 분이 식사를 하고 가라며 근처에 있던 한국인 부부를 소개해 주셨다. 오랜만에 한국 사람들과 함께 얘기하며 밥을 먹는데 왠지 모르게 불편했다. 두 사람이 나를 거북하게 여기는 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남편 분과는 그래도 편하게 얘기할 수 있었는데, 자신들을 외교관이라고 소개한 아내 분은 얘기하는 게 많이 불편했다. 내 오해일 수도 있는데 나를 대하는 여자의 태도에서는 냉소와 차가움이 느껴졌다. 약간 슬펐다. 신이 나를 위해 준비하신 특별한 계획이라 생각하며 회사를 그만두고 1 년 동안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프로그램만 짜며 창업을 준비해 왔지만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냥 무직자였다. 20대 초반부터 가슴 터지게 열망하던 러시아를 가로질러 유럽으로 가는 여행을 실행하고 있었지만, 여자의 눈에는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 사람이 처량하게 혼자 여행을 다니며 자유로운 삶을 살고 있노라고 스스로 위안을 삼는 것으로 보였을지도 모른다. 한국에 돌아가면 죽기 살기로 맞닥뜨려야 할 문제들과 예상하지 못한 장소에서 마주치고 말았다. 식사를 마치고 두 사람은 아이와 함께 먼저 가고, 나는 교회에 좀 더 머물다 버킹엄 궁으로 향했다.


내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그날 오전에 버킹엄 궁에서 근위병 교대식이 있었다. 근위병 교대식을 갈 것이냐 교회를 갈 것이냐를 두고 고민했었는데, 이때가 아니면 런던 현지의 교회에서 예배드릴 일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 결국 교회를 선택했다. 근위병 교대식이 오전에 이미 끝났다는 걸 알고 있지만 런던을 떠나기 전에 버킹엄 궁에 한 번 더 가보고 싶었다. 오후인데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사람들이 궁전 앞에 모여 있었다. 파란 하늘 아래 푸근한 오후의 햇빛을 받으며 한참 동안 궁전을 바라보며 앉아있었다.



오후에 방문한 교회는 오전에 방문한 교회에 비해 약간 보수적인 분위기였다. 오전에 방문한 교회가 한국의 젊은 층을 대상으로 하는 예배와 비슷했다면 오후에 방문한 교회는 장년층을 대상으로 하는 예배 같았다. 정장을 입은 사람들도 눈에 많이 띄었고 전체적으로 엄숙한 분위기였지만 그래도 네덜란드나 독일 같은 분위기는 아니었다. 우선 파이프 오르간 연주가 없었고 목사님이 설교하시는 강대상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단상만 하나 놓여 있을 뿐이지 지붕이 덮여있지는 않았다. 예배를 드리는 내내 단상이 있는 높은 단의 양 옆 벽에 붙어있는 커다란 숫자들에 눈길이 갔다. 스코어보드 같은 것에 위에서부터 아래로 네 개의 숫자가 써져 있었는데 세 자리 아니면 두 자리의 숫자들이었다. 이게 뭘 의미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영어가 짧기도 하고 옆의 사람한테 물어보기도 부담스러워서 혼자 이런저런 상상만 해 볼 뿐이었다.


예배가 끝나고 홀에 전시돼 있는 각종 책자들을 구경했는데, 영어뿐 아니라 여러 나라의 언어로 만들어진 기독교 책자들이 있었다. 잠시 교회 안을 둘러보다 밖으로 나왔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다리 위에서 본 석양이 기억난다. 시티의 고층 건물들 사이로 해가 지고 있었는데 이건 무슨 영화에 나오는 장면이었다. 템즈강과 주변에 있는 건물들이 주황색으로 물들어 가는 모습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keyword
이전 16화런던 호스트와 그의 여자 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