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예배는 19세기 영국을 대표하는 개신교 목사가 담임했던 교회에서 드릴 예정이었다. 오전 예배 시간에 맞추어 도착하기 위해 아침 일찍 숙소를 나와, 킹스크로스 역에서 기차를 타고 1 시간 가량을 달려 방문할 교회가 있는 마을에 도착했다. 평온하고 한적한 마을이었다. 아무도 안 돌아다니는 텅 빈 거리를 지나 교회까지 천천히 걸어갔다. 작고 아담한 교회였다. 한 세기를 대표하는 설교자이자 200 백 년 가까이 흐른 지금까지도 추앙받는 사람이 담임했던 교회라고 하기엔 초라해 보일 정도였다. 하지만 그가 자신의 경력 초창기에 활동했던 이곳이야말로 누군가의 꿈이 시작된 곳이자 한 사람의 때 묻지 않은 혼이 깃들어 있는 곳이기에 존중받아야 마땅했다.
예배를 시작하기까지 시간이 많이 남아 있어서 먼저 교회에 들어가지 않고 사람들이 올 때까지 교회 앞 공터를 서성이며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다 예배 시간이 다 되어 사람들이 한 명, 두 명 교회에 들어가는 걸 지켜보다 나도 교회 안으로 들어섰다. 크기는 작지만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예배당이었다. 예배당을 감싸며 2층에 만들어진 나무 좌석층을 둘러보며 앳된 얼굴의 목사가 열정적으로 설교하는 모습을 내려다보는 사람들을 그려봤다. 그 당시에는 사람들이 예배당을 꽉 채우고 있었겠지만, 내가 방문한 오늘은 2층은커녕 1층도 다 채우지 못한 채 열댓 명의 사람들이 모여 예배를 시작하고 있었다.
기타를 멘 인도자가 앞에 나와 간단한 찬양 시간을 가진 후에 설교 말씀을 듣는, 한국의 작은 교회에서 하는 것과 유사한 형식의 예배였다. 앞에 나와 찬양을 인도하는 분의 밝은 표정과 익숙한 방식의 예배가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한국에 돌아온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만들었다. 매주 보는 사람들 속에 처음 보는 동양인이 추가되니 눈에 안 띌 수가 없었다. 다들 앞에 있는 찬양 인도자만 보고 있었지만, 예배당 안에는 호기심과 경계심이 뒤섞인 묘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찬양 시간 후에 설교를 맡으신 목사님도 역시 어색한 듯 나와는 의도적으로 시선을 안 마주쳤다. 예배를 마친 후에 목사님이 찬양을 인도했던 남자분과 함께 내게 다가오셨는데, 따뜻하고 밝은 미소로 어디서 왔고 어떻게 이 교회에 오게 됐는지를 물어보는 두 사람은 좋은 사람들 같았다. 예배 후 다과 시간을 소개하며 한 분이 커피라고 외치자, 다른 분이 익살스러운 표정과 함께 케이크라고 이어받아 외치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물론 나를 불편해하는 분도 계셨다. 두 남자분의 근처에서 다른 신도들과 함께 얘기를 나누던 어떤 여자분은 내가 교회에 온 목적을 얘기하면서 19 세기 영국을 대표하는 설교가 얘기를 꺼내자, 그 목사님의 이름을 지겹다는 듯이 두어 번 내뱉고는 다른 자리로 가 버리셨다. 그 여자분의 모습을 보며 내가 괜히 온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들은 비록 작지만 가족과 같이 소중한 교회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데, 200 년 전에 죽은 사람의 흔적을 보기 위해 낯선 이들이 자꾸 내 집에 들락날락거리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셈이었다. 교회 이곳저곳을 카메라로 찍어대는 것 역시 익명의 다수에게 노출될 거라는 생각에 거부감이 느껴졌을 것이다. 이 여자분이 쌀쌀맞게 생겼냐 하면 절대 아니었다. 그분 역시 따뜻하고 좋은 분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다만 자기 삶의 소중한 영역이 침해받고 있다고 느낀 것뿐이다.
내 생각이 짧았던 건지도 모르겠다. 교회를 나와 역으로 걸으며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 사람들의 삶을 헤집어 놓으려고 온 것은 아닌데, 의도했던 건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그런 셈이나 마찬가지였다. 당신들 교회는 너무 좋은 곳이라고 얘기해 주고 싶었다. 크기는 작고 사람들도 많진 않지만, 당신들이 보여준 따뜻하고 밝은 미소는 200년 전 당신들 교회의 강단에서 설교하던 사람 못지않게 훌륭하다는 걸, 200 년 전 당신들의 교회에서 위대한 목사를 통해 일하던 신은 지금도 당신들의 교회에서 일하고 계시고, 이렇게 따뜻하고 좋은 교회 공동체를 가꾸어 가는 당신들 역시 그 위대한 설교자 못지않게 대단한 사람들이라는 걸 말해주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