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에서의, 영국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기에 버킹엄 궁만 한 곳이 없었다. 버킹엄 궁 자체도 너무 좋았지만, 버킹엄 궁을 가기 위해 시내 중심부를 가로질러 걷다 보면 런던의 상징물들을 전부 볼 수 있었다. 아침 일찍 숙소를 나와 걷기 시작했다. 영국박물관을 지나 두 주전 런던에 머물 당시 아침마다 들르던 유명 커피숍에서 플랏 화이트 한 잔을 마신 후, 트라팔가 광장까지 걸어가자 멀리 다우닝가 10 번지가 있는 대로 끝에 빅벤이 서 있는 모습이 들어왔다. 오랜만이었다. 광장의 분수대와 내셔널 갤러리의 모습을 둘러보며 거대한 아치를 지나 가로수가 드리워진 길의 끝까지 걸어가자 마침내 버킹엄 궁전이 모습을 드러냈다. 왕실 근위병의 교대식은 못 볼 거라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궁 앞은 한산했다. 여전했다. 이 건물이 가진 기품이나 궁 앞 분수대에 설치된 황금 동상의 화려함, 어느 것 하나 변한 것이 없었다. 트라팔가 광장 쪽으로 다시 걸어 나오며 세인트 제임스 파크의 넓은 잔디밭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이들을 보자, 나도 잠시 쉬며 점심 무렵 토요일의 여유를 즐기고 싶어졌다. 트라팔가 광장 근처의 한 샌드위치 체인점에 들어가 이것저것 풍성하게 고른 후에, 광장을 내다볼 수 있는 자리에 앉아 밖을 보며 천천히 식사를 즐겼다. 생각해 보니 처음 영국에 도착했던 날도 날씨가 참 좋았다. 광장 근처 한 계단에 주저앉아 어딘가에서 들려오던 색소폰 연주를 듣던 게 생각났다.
점심을 먹은 후 영국 박물관을 방문했다. 두 주전 미처 보지 못했던 지역의 고대 유물들을 둘러보고 박물관을 나오자 해가 제법 기울어져 있었다. 타워 브리지를 방문하기 위해 템즈강 쪽으로 향했다. 타워 브리지는 처음 영국에서의 일정을 계획할 때부터 이때 방문하기로 정한 곳으로 두 주전 런던에서 머물 때는 일부러 그 근처도 가지 않고 아끼며 남겨둔 곳이었다. 시티 오브 런던을 지나 타워 브리지 앞에 이르자 런던탑을 둘러싸고 있는 거대한 중세의 성이 나타났다. 런던 시내 한 복판에 이렇게 거대한 성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석양을 받아 빛나는 타워 브리지는 아름다웠다. 사람들 속에 섞여 템즈강 건너편까지 가며 그 거대한 구조물을 밑에서 찬찬히 살펴봤다. 영화에 자주 나오던 바로 그 다리였지만, 막상 실제로 건너보니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상의 한 부분에 불과하다는 게 기분을 이상하게 만들었다. 다시 다리를 건너 런던탑으로 돌아와 숙소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가는 길에 시티 오브 런던의 중심부를 지나게 됐는데, 텅 빈 거리의 모습은 아침 출근 시간에 보던 것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