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 사이에 털 고르는 행위에 대한 고백

by nay

아내는 나보다 키가 작다. 늘 올려다보는 위치다. 그래서일까 항상 내 코털을 잘 본다. 아니, 관심이 많다. 원래 그런 성격인 것이다. 조금이라도 삐져나온 코털을 보면 참지 못한다. 직접 잘라주기 십상이다. 남들에 비하면 난 코털이 많이 안나온 것이라 말해도 소용 없다. 그녀 눈에 띄면 그 날로 바로 제거다. 예전에 코털 제거기를 선물로 받았었는데 이사하면서 어딘가 사라져 버렸다. 그 이후 아내가 가위를 가지고 덤빌 때면 나는 얌전히 코를 맡긴다.


그녀는 귀를 잘 판다. 어렸을 적부터 다른 사람 귀 파는 것을 좋아했다(고 들었다). 모든 집안 어른들이 어린이였던 아내에게 귀를 맡겼다고 한다. 그것으로 용돈 벌이까지 했는지 모르겠다. 남이 귀를 파주는 것은 참 묘한 행위이다. 귀 파기는 간혹 위험하기도 하다. 허나 아내의 귀 파기에 나는 편안함을 느낀다. 나는 그녀에게 혹여 잘못될 지도 모를 위험을 감수하고 기꺼이 몸을 맡긴다.

그녀의 자신감 만큼이나 귀를 참 잘 판다. 시원하기 그지없다. 티비를 보다가도, 잠자리에 누워 핸드폰을 보다가도 갑자기 그녀는 내 귀를 염탐하는 편이다. 하지만 대부분 실망한다. 내 귀 속에는 귀지가 별로 없다나? 가끔은 아내의 기쁨을 위해 일주일에 한 번은 귀지가 가득 차면 좋겠다는 엽기적인 상상도 해보았다.


나는 아내만큼 코털 제거나 귀 파기에 소질이 없다.

깔끔한 아내는 내 눈에 띄기도 전에 이미 코털은 잘 정리할 것이다. 게다가 눈이 좋지 않아서 특히 귓속을 아무리 들여다 보아도 귓밥을 찾지 못하겠다. 하지만 내가 딱 하나 해주는 것이 있다. 바로 흰머리 제거다. 아내는 출산 이후에 급격히 새치가 늘었다. 주변 동료들을 봐도 아이를 낳고 온 이후 부쩍 새치가 많은 것을 느낀다. 출산이란 참 여러가지로 사람의 몸을 변화 시키나 보다. 아이를 낳느라 생긴 흰머리를 보며 미안함과 안쓰러움을 느낀다.


생각해보니 어렸을 적 어머니의 흰머리를 무척 많이 뽑았다. 개당 10원씩 받아서 100개쯤 뽑아 용돈 벌이를 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어머니의 흰머리가 돈벌이 수단으로만 느꼈을 뿐, 늙어가는 어머니를 이해할 나이는 아니었다. 어린 나이였다고는 해도 이렇게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이었나. 어머니가 흰머리 뽑자 하면 그저 용돈에만 눈이 멀었었다. 불혹을 훌쩍 넘긴 이 나이를 먹어서야, 아내의 흰머리를 소재하면서 비로소 당신에게 죄송함을 느낀다.


이제는 아내의 그것이 새치인지 흰머리인지 구분이 안될 정도다. 아내의 나이가 아직 40대 초반이니 새치라고 믿고 싶다. 귀 파는 것을 잘 하던 사람이었듯 혼자서 흰머리 뽑기도 잘 한다. 거울을 보면서 스스로 머리카락을 뽑는 것이다. 혼자서 흰머리를 능숙하게 뽑는 아내의 기술은 그야말로 놀랍다. 하지만 가끔 나에게 맡긴다. 거울로 볼 수 없는 곳, 보더라도 직접 하기 어려운 위치에 있는 애들을 처리해 달라는 요청이다. 그러던 어느 날 뽑는 것이 더 안좋다는 말을 어디서 봤는지 이제는 가위로 짧게 잘라 달란다. 그 이후 나에게 머리를 더 많이 맡기게 되었다. 나도 이제 아내를 위해 해줄 수 있는 일이 하나 더 생긴 셈이다.


나는 이제 노안이 와서 안경을 쓰고는 짧은 흰머리를 쉽게 잘라내지 못한다. 안경을 쓴 채 가까이 다가가면 오히려 잘 안 보이기 때문이다. 안경을 벗고 맨눈을 그녀의 정수리로, 이마로 부지런히 움직이며 사냥감을 찾듯 머리카락을 뒤적인다. 짧게 잘린 적이 있던 흰머리가 조금 자라면 더 눈에 띄게 머리카락 사이로 툭 튀어 나온다. 더 볼썽사납다. 그런 녀석들을 자르는 것이 가장 난이도가 높다. 손에 한번에 탁 잡히질 않아 가위질 하기가 쉽지 않은 까닭이다.


어디가 제일 신경 쓰여?

가르마를 타는 곳에서 유독 눈에 띄는 흰머리가 싫어.

그녀의 마음이 상하지 않게, 행여 옆에 있는 검은 머리카락이 잘리지 않게 조심조심 짧은 흰머리를 잘라낸다. 누군가 이 광경을 본다면 실소를 터뜨릴지 모르겠다. 남편은 노안 때문에 침침한 눈으로, 아내는 머리카락 잘 보이도록 양손으로 머리카락을 가른 채 머리를 들이댄 모습이라니.


IMG_3937.jpeg 발리 여행 중 마주친 원숭이들


유인원 사이에 털을 고르는 행위는 친근감의 표현이라고 한다. 물론 털 속에 숨어 있는 벌레를 제거하는 1차원적인 목표가 있다. 아내가 내 코털을 잘라 주고, 내가 아내의 흰머리를 잘라 주는 것도 역시 1차원적이고 명확한 목표가 있다. 그런데 이런 행위를 하면 할수록 상대에 대한 애정이 더 쌓이는 느낌이다. 엄연히 이것은 일종의 스킨십이다. 연인 사이에 주고받는 은근하고 달콤한 그것은 아니다. 아무리 친한 연인 사이일지라도 코털을 깎아주거나 흰머리를 뽑아달라는 부탁은 쉽게 하지 않을 것이다. 13년을 함께 산 부부가 서로 정돈을 해주는 것은 나름대로 정겨움이 있다. 상대에 대한 배려와 관심의 표현이다. 내 배우자의 코털이 남한테 보이든 말든, 흰머리 때문에 속상하거나 말거나 내버려 두는 것은 상대에 대한 무관심이다.


서로 털을 골라주면서 상호 신뢰를 쌓는 침팬지 마냥, 나는 오늘 아침 아내의 흰머리를 골라 주었다.

어쩌면 이렇게 우리는 서로의 치부(?)를 보면서 함께 늙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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